그렇게 나는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고
지민이와 얘기를 나누던 중 알바얘기가 나왔고
나는 굳이 태형이의 존재를 언급하지 않았다
그렇게 몇 주가 흘렀고
태형이와 나는 서로에 대한 어색한 기류가 점차 사그라들었고 우리는 다시 친구 사이로 지내기로 약속했다
허나 그와 내가 한 카톡은 꼭 썸타는 사람들과도 같았다
-집 잘 들어갔지?
-응 너도?
-응 오늘 수고했어
-너도..! 고생 많았어
-내일 일찍 출근해야 하니까 얼른 자
-어..! 너도 빨리 자
-그래 잘자 여주야
-응 너도 태형아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렀고
생각보다 정리가 늦게 끝나 태형이와 함께 서둘러 퇴근 준비를 하던 중
일기예보에도 없는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우산 안가져왔는데”

“내꺼 같이 쓰고 가 어차피 같은 방향이잖아”
“너꺼 보니까 우산 엄청 작던데...? 같이 쓸 수 있겠나?”
“뭐...안 쓰는것보단 낫겠지”
그렇게 나는 태형이와 함께 우산을 쓰고 갔고
미안한 마음에 우산을 그의 쪽으로 기울여줬지만
그는 계속해서 우산을 내쪽으로 기울여줬고
그의 어깨가 이미 빗물로 흠뻑 젖은게 보였다
그렇게 한참을 안절부절하며 걸어가고 있을 때
저 멀리서 누군가가 비틀거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저거 박지민 아니야?”
”어...? 지민이 오늘 회식 있다고 늦는다고...“
그렇게 본 그의 모습은
정말 술에 잔뜩 취한채로
우산을 들고 있었지만 빗물에 다 젖은채로
슬프디 슬픈 눈을 하며 나와 태형이를 쳐다보고 있었다

“...김태형
너는...왜 그렇게 다 가져가야하냐..?
나는 널 위해서 좋아하는 사람 포기하고
못되게 굴기까지 했는데
결국엔 여주 나한테 왔잖아...
근데 왜 다시 나한테서 데려가려고 하냐고!!
이제야...이제야 품에 한 번 안아봤는데
나도...나도 여주랑 같이 살고
그 흔하디 흔한 데이트 해보고
같이 행복한 시간 보내보겠다는데
왜 자꾸 눈 앞에 나타나냐고!!
제발 좀 내버려두면 안되냐...
겨우 행복해졌는데
나 좀 행복하게 놔둘 순 없는거냐..?”
지민이는 태형이의 앞에 서서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애쓰며
그를 붙잡고 말했다
나는 그의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여주야...여주야
나는 있잖아
너 행복하게 해주려고
너랑 같이 행복하게 살려고
그 개같은 이사 밑에서
진짜 이 꽉 물고 참았는데...
내가...진짜 부질 없는 짓을 한거냐...?
나는!!! 이제서라도 너한테 너무 미안한게 많아서
그거에 몇 배는 더 노력하려고 했는데
너는 결국에 끝까지 내가 아니었던거야..?
그런거야 여주야?”
그는 결국 끝내 눈물을 보이며
어린아이처럼 주저앉아 통곡을 했다
나도 끝내 참고 있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내가 내 손으로 모든걸 망가트린 것 같아서
내가 박지민이라는 사람을 이 모양 이 꼴로 만들어서
내가 끝까지 그를 책임질 수 없어서...
“일단 내가 얘 업을테니까 너는 우산 좀 챙겨ㅈ”
“먼저가 태형아
지민이는 내가 데려갈게”
“괜찮겠어...?”
“응 연락할게”
그렇게 나는 우산도 챙기지 않은채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지민이를 부축해서
집으로 들어갔다
“지민아 씻고 자 응?”
“…”
휙-
그렇게 지민이를 침대에 내버려두고 가려던 찰나
그는 내 손목을 잡아끌어 그의 품 속으로 가뒀다
그는 나를 품 안에 넣은채 다시 잠들었다
이마저도 내쳐버리면 너에게 너무나도 미안한 감정밖에 안 들 것 같아서..
지민)
알고 있었다
얼마 전 새벽에 온 카톡에
여주의 휴대폰을 우연히 보게되었고
여주가 한다는 그 알바는 김태형과 같이 하는것이었다
처음엔 여주씨
그 이후로는 여주야
바뀐 호칭에서부터 나는 알 수 있었다
여주는
더 이상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것을
내가 아닌 김태형에게 마음을 품고 있다는 것을
처음엔 부정하고 싶었다
인정하기 싫었다
거짓말하지말라고
여주한텐 나밖에 없다고
하지만 이건 언제까지나 나의 바람일 뿐이었다
여주야
이제 내가 너를 놓아줄 때가 된걸까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나는 결국 안되는걸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