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인킬러
들어오면 안돼

붉은어항
2024.03.28조회수 12
한치 앞도 보이지않는 칠흑같은 어둠, 난 지금 그 속에서 헤메고 있다. 이딴 담력체험 같은거 안했어야 했는데. 내가 살던 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숲에는 6월 10일 자정마다 붉은 달이 뜨며 그곳에 의문스러운 누군가가 산다는 괴소문이 돌았다. 무서운 걸 좋아하는 내 친구들이 이걸 놓칠리 없었다. 담력체험을 해보자 제안했고, 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합류했었다. 그 결과 넓지도 않은 숲속을 헤메게 되었다.
"아씨.. 여기 어디야?"
어째서인지 친구들 모두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몇시간이나 걸었는데 숲 바깥풍경조차 안보인다. 이러다 영영 이곳에 갇히는 건 아니겠지. 휴대폰으로 구조신호라도 보내려 해봤지만 휴대폰 제한구역인지 전화, 문자 발신이 불가능했다. 망망대해에 남겨진 거나 다름없다.
'저기 뭐가 있어!'
그때 내 눈에 들어온 오두막 하나. 누가 살았던 집인가? 거기로 곧장 달려갔다. 허술하게 지어놓은 울타리 너머의 정원에 검은 장미들이 피어있었다. 일단 울타리를 넘어 집을 관찰하는 와중 현관문이 덜컥거렸다.
'누가 살고있나? 그러기에는 집이 낡았는데..'
이런 곳에 사람이 산다는건 말도 안된다. 설마 범죄자의 은신처는 아닐까? 두려운 마음을 애써 숨기며 현관문이 열리는 걸 지켜보았다. 무언가가 달빛 아래로 걸어왔다.
"너 여기 왜 들어왔어."
앳된 외모의 남자. 남색 머리카락에 회색 눈, 창백한 피부까지 합쳐지니 귀신같은 느낌이 든다. 난 아무 말도 못한채 얼어붙었다.
"귀신..!"
"지금 뭐라했냐."
아차. 속마음이 입밖으로 튀어나갔다. 남자가 눈을 부릅뜨고 날 째려본다. 나 집에 못돌아가는거 아냐?
"저기, 그.. 혼잣말인데."
"그림자 있는 귀신이 어딨어."
남자 뒤에 그림자가 늘어져있다. 사람이었구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안심할게 아니지. 이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데 경계를 풀순 없다. 내가 뒷걸음 칠 준비를 하자 남자는 입꼬리만 올려 웃었다.
"무서워?"
"....."
"주거침입 한 쪽은 너잖아."
그게..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런 상황인데 겁을 안먹을 수는 없다고. 그가 천천히 다가왔다. 표정이 너무 섬뜩해서 순간 팔을 들어올려 방어자세를 취했다.
"야, 누가보면 내가 나쁜 짓 하는줄 알겠다."
"아님 뭐야?"
"네 뺨."
내가 손가락으로 뺨을 건드렸다. 어라. 왜 아픈거지? 휴대폰 화면에 얼굴을 비춰봤더니 왼쪽 뺨에 멍이 들어있었다. 아픈줄도 몰랐었다. 몇분 전 넘어졌는데 그것 때문이었나 보다.
"너 그대로 있어봐."
그가 멍이 든 부분을 꾹 눌렀다. 찰나에 아팠다가 통증이 씻기듯 사라졌다.
"이제 안아프지?"
뺨을 꼬집어봐도 아프지 않았다. 얼굴을 살펴보니 멍은 감쪽같이 없어져있었다.
"어떻게 된거야?!"
내 물음에도 남자는 그냥 머리만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알아서 뭐하게. 나았으면 된거지.. 어쨌든 다신 여기 발 들여놓지마라. 위험하니까."
알수 없는 말을 늘어놓은 그가 검지를 튕겼고 나는 정신을 잃었다. 깨어났을 때는 숲으로 들어가는 입구 앞에 있었다. 기묘한 꿈을 꾸고 일어난 기분이었다. 누구였을까. 그 사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