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인킬러

몰랐으면 좋겠어








기묘한 그 사람과의 만남 후 일상으로 돌아간 나는 숲에서 있었던 일을 친구들에게 얘기했다. 뜻밖에도 친구들의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숲이라니? 어디 말하는건데?"

"우리 그런곳 간적 없잖아."


순간 등줄기에 소름이 끼쳤다. 친구들은 그 숲을 방문했다는 것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나를 제외하고. 설마 그가 숲 속에 들어온 사람들에게 저주라도 걸어놓은게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내가 미쳐버린 거겠지.


"한여슬 너 꿈이라도 꿨냐?"

"어.. 그런가보다! 워낙 꿈이 생생해서."


별다른 말을 찾지못해 일단 얼버무렸다. 얘기를 더 꺼내봤자 나만 이상한 사람 될테니까.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어느새 토요일이 성큼 다가왔다. 숲 속의 남자에 대한 궁금증으로 인해 거길 다시 가보고 싶어졌다. 기이한 일이 아닐수 없다. 그토록 무서워한 장소를 제발로 찾아가고 싶어하다니. 그렇지만 난 궁금한건 못참는 성격인지라 몸이 먼저 움직였다. 시간은 저녁 6시. 도착한다면 7시 가까이 될것 같다.





"막상 오니까 못가겠네."


숲의 입구까지 다다라놓고 걸음이 멈췄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돌아갈까? 독서실 간다고 거짓말하고 오는게 아니었는데.


'그래도 정체는 알아야지.'


주먹을 쥐며 깊게 심호흡했다. 날 집어삼킬 듯한 어두운 숲길로 발을 내딛는 그때,


"야!!"


우레와 같은 고함소리에 깜짝 놀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저 멀리 나무들 사이를 헤치고 걸어오는 사람이 보였다.
내 앞에 멈춰선 그는 노기서린 얼굴로 어깨를 잡았다.


"내가 여기 오지말라고 했어 안 했어?! 왜 온거야!"


불같이 화를 내고 있는데도 무섭긴커녕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오히려 불안을 감추려는 행동으로 보였다.


"그냥 네 정체가 궁금해서 와 봤어."

"뭐?"


그가 한쪽 눈을 찌푸렸다. 내 말이 믿기지 않는단 듯이. 곤혹스런 표정을 한 채 뒷목을 쓸어내렸다.


"꼭 알아야겠냐?"

"궁금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알아야지 그럼!"


내 말에 씩씩대던 모습은 어디가고 왜인지 서글프게 눈꼬리를 축 내렸다.


"모르는게 낫다니까."


포기하고 가주면 좋겠다며 애원하는 눈짓에도 난 완강히 고개를 돌렸다. 여기까지 온 이상 정체는 알아야겠어. 그는 끝내 항복자세를 취했다.


"알았어, 이름은 최연준이고. 난 일단.."


그 사람은 순식간에 나를 제 품속으로 끌어당겼다. 안긴 자세로 당황스러워 하다가 얼음처럼 차디찬 살갗에 놀라 몸을 떨었다. 사람의 체온이라곤 느껴지지 않았다.


"이미 죽었어."

"아니..... 말이 안되잖아."

"믿을지 안믿을지는 알아서 판단하고."


믿기지 않지만 처음 마주할 때부터 이상한건 맞았다. 푸석한 머리카락과 핏기없는 피부, 회색 눈, 간간이 보이던 검푸른 실핏줄까지. 인간이라기엔 의문투성이인 것 뿐이었는데 애써 외면하기만 했다.


"넌 집에 갈 생각이나 해. 시간이 몇신데.."

"물어볼게 더 남았어."

"그럼 계속 이 자세로 있을래?"


충격적인 얘기에 집중하다보니 내가 그에게 안긴 상태란 걸 잊어버렸다. 난 재빨리 몇 걸음 물러섰다.


"놀라기는. 됐고 이제 나 찾지마. 없는 사람이다 생각해."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면서 그 말을 곱씹었다. 아는체 말라는 뜻 같은데. 더 숨길 비밀이 있는 모양이다. 도무지 종잡을수 없는 사람이었다. 상식으론 그를 멀리해야 하는게 옳지만 마음은 반대로 가고 있었다. 비단 호기심 때문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