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화;복숭아 꽃
2화:물 위에 뜬 구름

JK골든래빗
2019.04.19조회수 37
"여봐라. 마른 옷을 내어오거라."
정신이 완벽하게 돌아온 것은 아니였지만 뿌연 시야 속에서 백색 도포를 두른 사내가 보였다.
"이보게, 정신이 드는가? 친우는 어딨는가?"
아침 햇살에 증발해가는 안개가 잦아들듯 시야가 맑아져 갔지만 아직까지 그 사내를 알아볼 수 없었다. 그 사내의 낮은 목소리에 골이 울려 인상을 찌푸리고는 그의 입술에 검지 손가락을 대었다.
"머리가 울리니 그만 말해주시오..."
그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석진은 비틀거리며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젖은 모래를 털어내고 구겨진 흑립을 들어올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지민은 어디에 있는지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여기가 어디요?"
"나루터요. 기억이 없소?"
"아...배를 탄 곳으로 와버렸군. 미안하지만 나를 내리는 쪽 나루터로 데려다 주시겠소? 내 친우가 거깄소."
그 사내는 어의없는 듯 웃더니 호위무사에게 무언가 말 하더니 호위무사가 들고온 연보라색 철릭 한벌을 걸쳐주었다.
"모시라 그런지 다 비치오. 그거라도 덮으시오."
"고맙소..."
그를 따라 천천히 걷다 보니 지민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민은 뛰어도더니 석진을 안았다가 온 몸 구석구석을 살폈다.
"자네, 괜찮은가? 난 자네가 죽은줄만 알았네"
"괜찮네, 탱자. 저 분께서 구해주셨네. 친우를 만났으니 돌아가도 괜찮소. 고맙소."
그가 고개숙여 인사하자 석진과 지민은 돌아갈 채비를 했다.
"빨리 감세. 감기 들었다간 할아버님과 큰 어머님께서 크게 노할걸세."
"...알겠네."
-
집으로 들어간 석진은 목욕을 하고 나와 오른쪽 어깨에 피어나는 복숭아 꽃을 거울에 비쳐보았다.
"하...들키지 않았기를."
석진의 어깨를 타고 뿌리를 내려 해가 갈 수록 자라나고 있는 복숭아 나무는 곧 '개화'의 시기가 다가온다.
화인으로 살면 꼭 개화를 하게 되는데 그 때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시기가 지나자 마자 괴로워 하다 명을 다하게 된다.
"반가의 장손이 화인으로 사는건...쉬운 일이 아니구나."
"도련님, 탱자 도련님이 오셨는데요?"
"금방 나가겠다 일러주거라."
석진은 급하게 내의 위에 아까 받은 철릭을 걸쳐입고 문을 열었다.
"들어오게."
"그 옷의 주인이 누군지 알아냈네. 들어볼텐가?"
"됬네. 그것보다 중요한 일이 있으니."
석진이 급하게 안으로 들어가자 지민은 급하게 빠른 걸음으로 따라 들어갔다. 지민이 들어오자 마자 석진은 문을 걸어 잠갔다.
"무슨 일이길래 그리 성급하..."
석진의 표정은 괴로워 보였다. 슬픈 표정으로 지민에게 입을 맞추며 신음하는 그는 어느 때보다 간절한듯 지민의 소매를 놔주지 않았다.
"어쩐지...꽃 향이 진하다 싶었네."
"하아...하...미안하네. 지난번이 마지막이길 바랬는데."
석진이 옷고름을 풀어주자 지민은 그저 쳐다볼 뿐이었다. 쇄골쪽으로 가지를 뻗은 탐스러운 탱자나무가 그의 저고리 뒤로 꽃봉오리를 피워내고 있었다.
"자네도 개화가 얼마 남지 않았구만."
"..."
지민은 석진의 몸에 피어난 복숭아 꽃을 한층 더 피워냈다. 개화의 고통속에서 겨우 이겨냈더니 어느 덧 하늘이 검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잠깐,만...박지민..."
"왜 그러나...?"
"밤이 오고 있네."
"신경쓰지 마시게."
"집에 들어가는게 좋지 않겠나? 어머님이 찾으실텐데."
"자네 집이지 않은가.담만 넘으면 되네."
지민이 바지만 입은채로 하의에 저고리까지 걸친 석진을 안자 석진은 아까의 기억으로 얼굴을 붉혔다.
"...그....탱자."
"왜 부르는 겐가?"
"덜 풀린것 같은데 한번만 더 해주게..."
"나도 힘든데?"
"미안하네 딱 한번이면 되네."
석진이 적극적으로 행동해 보이자 지민은 한숨을 내쉬더니 창 밖을 내다보던 석진의 뒤에서 허리를 붇잡았다.
"알았네. 그 대신 앞으로도 내가 개화를 도와줄 수 있게 약속해주게."
지민의 간절한 눈빛에 석진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미소지었다. 석진의 고요하면서 진한 답변에 지민은 석진의 나무에 입을 맞추며 달빛을 들여보내려 열었던 활짝 열려있던 문을 굳게 걸어 잠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