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해주세요, 남편님

1화 - 「이혼해주세요, 남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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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해주세요, 남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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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올 것 같았다. 어디선가 흐려진 공기와 낮게 깔린 구름이 말했다.


사각 -


서류가 책상 위로 미끄러지듯 놓였다.


“서류는 준비됐어요.”


생각보다 담담한 목소리였다. 내가 이렇게까지 차분할 줄 몰랐다.


“…”


수빈은 조용히 앉아 있었다. 늘 그렇듯, 감정 없는 표정이었다.


“이혼 서류예요, 확인하고… 서명만 해주세요.”


나는 조용히 그를 바라봤다. 늘 말이 없고, 늘 무심했던 사람.


“…”


오늘도 내 말에 아무 반응이 없었다. 오히려 그게 더 아팠다.


“…”


그래서, 더 이상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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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해주세요, 남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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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빈을 처음 만난 날, 그의 차가웠던 눈빛이 떠올랐다. 그때 나는 몰랐다. 그 눈빛이 앞으로 내 마음을 얼마나 깊이 아프게 할지.


“만나서 반갑습니다, 김여주입니다.”


내 말에 그는 고개만 끄덕였을 뿐,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게 차가운 게 아니라, 그저 낯가림이 심한 사람이라고 믿고 싶었다.


“…”


그의 침묵, 그의 무관심, 그의 일정한 거리감. 그 모든 걸 애써 이해하려고 한 나날들이 떠올랐다. 사랑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기대하지 않겠다고.


“…”


수백 번 마음을 다잡았던 그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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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시 현재, 눈앞의 그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무표정한 얼굴, 아무 감정 없는 눈빛.


“…“


나는 속으로 조용히 되뇌었다.


‘그래, 이 사람은 끝까지 이렇게 나를 안 봤지…‘


나는 시계를 한 번 흘긋 봤다. 침묵은 길었고, 그만큼 내 마음도 차갑게 식었다.


“더는 기다리지 않을게요.”


나는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났다. 수빈의 눈동자가 아주 잠깐 흔들렸다. 하지만 그조차도 지금은 아무 의미 없었다.


“검토해보시고, 자료는 비서에게 전달해 주세요. 전, 당분간은 별장에서 지낼 생각이에요.”


한참을 말없이 바라보는 그 시선을 뒤로한 채, 나는 문을 열고 나왔다.


“…”


이제 다 됐어. 기다리는 거, 바라보는 거, 사랑받기를 기대하는 거. 전부 다, 그만할래.


“…”


복도에 나섰을 때, 창밖엔 정말로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제 다 끝났어, 끝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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