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복도 좀 걷고 올게요“
“어, 그럴래? 엄마는 이불 좀 털고 있을게“
걸을 수는 있는 거에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나는 심장이 안 좋다. 태어났을 때부터 그랬다. 태어났을 때는 그래도 조금씩 뛸 수는 있었다. 하지만 어렸을 때 짓궂은 남자애들이 돌아가신 할머니가 주신 머리핀을 훔쳐갔다. 머리핀 든 손을 하수구 구멍 위에 올려서 여기까지 안 뛰어오면 머리핀을 구멍으로 떨어트린다는 애들에 나는 숨을 크게 쉬었다가 전속력으로 달렸다. 꽤 멀리 있던 애들에 나는 점점 숨이 차오르고 심장이 쿵쿵 뛰었는데도 꾹 참고 뛰었다. 애들은 내가 가까워지자 저 멀리로 도망쳤다. 나는 계속 애들을 쫓아갔다.
갑자기 턱 막히는 숨과 심장에 무리가 온 걸 느끼고 뛰다가 넘어지듯 쓰러졌다.
눈을 떴을 땐 병실이었고 나는 평생을 병원에서 지내야했다.
내가 평생 병원 신세를 져야 된다해서 그때 짓궂었던 남자애들을 원망하지는 않는다. 뛴 건 나였고 이렇게나 약한 몸을 가진 것도 내 탓이었으니까.
나는 8살 때부터 10년 동안 병원 앞 정원 말고는 밖을 돌아다녀본 적이 없다. 현재 18살인 나는 학교도 가보지 못하고 엄마가 날 생각해서 선생님을 구해서 공부를 배우게 했지만 혼자 공부를 하니 기운이 빠져서 그만 뒀다. 나도 친구들을 사귀어서 맛있는 것도 먹고 놀러도 가고 소소하게 행복한 추억을 쌓고 싶었다.
“여주야 늦었네?”
“한 바퀴 더 돌고 오느라 늦었어요”
”여주 너한테 좋은 소식이 생겼어“
”뭔데요?“
뭐 그래봤자 조금 나아졌다는 얘기겠지. 항상 똑같은 것 같지만
”우리 여주한테 새로운 친구가 생길 거 같아“
”.. 네? 그게 무슨,“
”옆 병실에 여주 또래 애가 새로 들어왔대“
”진짜요?“
여태 병원에 있으면서 내 또래를 만난 건 처음이었다. 그것도 내 옆 병실이라니 지금 당장 가서 인사를 나눠보고 싶었다. 옆 병실에서 의사와 부모님 같이 보이는 사람이 나와서 의사가 뭐라 얘기하더니 둘은 그 자리를 떠났다. 집에 간 것 같아서 나는 좀 뜸을 들이다가 병실 문을 두드리려다가 말았다. 혹시나 나랑 친구가 되는 걸 원치 않을 수도 있으니까.
자연스럽게 다가가기로 했다.
다음 날 아침이 되고 나는 산책을 할 겸 병실 문을 열고 나왔다. 근데 옆 병실에서도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서 고개를 돌려서 쳐다봤다. 링거를 들고 나오는 남자애가 보였다. 내가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계속 자신을 쳐다보니 시선이 느껴졌는데 그 애도 나를 쳐다봤다. 나는 멍하니 서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그 애에게 말 없이 손만 흔들었다. 반갑다는 의미로
그 남자애도 똑같이 손을 흔들었고 나는 또래를 이렇게 마주하며 인사하는 게 오랜만이라 부끄러워서 서둘러 발을 옮겼다.
그 애와 만난 시간 AM 09:00
오랜만에 병원 앞 정원까지 나가보았다. 정원을 관리하시는 분이 계절마다 예쁜 꽃을 가꾸어서 매 계절마다 몇 번씩 나와서 눈호강을 했다.
“음료수 마실래?“
”.. 어?”
“안녕”
아까 옆 병실에서 나오던 남자애였다. 그 애는 꽃을 구경하던 내 옆으로 오더니 이온 음료를 건냈다. 그 애를 멍하니 바라보며 음료수를 받았고 그 애는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이름이 뭐야?”
“어? 나.. 김여주”
“나는 전정국“
”정국..?“
”응, 난 18살 너는?“
”나도!“
얼떨결에 통성명을 하게 됐고 그 애는 나에게 활짝 웃어주었다.

“우리 퇴원할 때까지 친하게 지내자”
나도 따라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게 그 애와 첫만남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