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잠을 자지 못했다.
정국이 내게 말했던 그 한마디 한마디가 계속 머릿속에 머물렀다.
‘그깟 욕심, 한 번만 부려볼게.’
솔직히 말하면 나도 그가 너무 좋았다.
하지만 그와 난 이미 각자의 길을 너무 멀리 왔다.
해결책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그 해결책을 지금 펼지지 못한다는 것이 억울한 것이다.
사실 처음 봤을 때 정국을 알아봤다.
첫사랑의 얘기를 할 때도 그 대상이 나였다는 걸 알았다.
눈물이 고인 것 같았고, 손은 부르르 떨렸다.
그래서 커피를 엎지른 것이다.
커피를 엎지른 직후엔 정국이 걱정해줄 것이 이미 머리에 그려져 내심 기분이 좋았다.
어쩌고보면 정국보다 내가 더 그를 사랑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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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일이 없어 자리에 앉아 볼펜을 돌렸다.
어제 밤, 잠이 안 와 일찍 출근 해 업무를 다 봤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몰골이 엉망이진 않았다.
다만 조금 피곤해보일 뿐.
그리고 그 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이사님, 들어가도 되나요?”
- ... 들어오세요.
사실 단번에 알아차렸다.
목소리의 주인이 정국이라는 걸.
- 어쩐 일이야.
“밥 같이 먹자. 점심 시간이야.”
-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말 돌리지 말고. 뭐 먹고 싶어?”
- 나 갑자기 초밥 땡긴다. 먹으러 갈래?
“뭐야, 거절할 줄 알았는데.”
- 이제 내 마음 가는 대로 살아보려고.

“... 그 말, 내가 생각하는 뜻 맞아?”
- 음-, 아마 맞지 않을까?
정국은 잠시 얼이 빠진 얼굴을 짓다가 환하게 웃으며 여주의 손을 잡았다.
까칠하게 구는 여주의 볼은 토마토 뺨치게 붉어졌다.
“너 얼굴, 김치 같아.”
- 놀리지 마라. 더워서 그래.
“너 추위 많이 타잖아.”
- ... 나에 대해서 뭘 그리 많이 알아.

“사랑하는 사람이 했던 말인데, 모르는 게 이상하지-.”
전정국이 많이 했었던 말이었지만 왠지 오늘따라 그의 말이 다르게 느껴졌다.
진심으로 느껴졌다고 해야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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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맛있다. 어떻게 알았어?
“네가 초밥 좋아하는 거 알고 미리 좀 알아왔어.
- 내가 안 먹는다고 하면 어쩌려고 그랬어.
”무슨 일이 있어도 같이 밥 먹으러 가려고 했었지. 근데 의외로 바로 좋다고 하더라?“
- 좋다고는 안 했어. 나 원래 점심 안 먹어-.
”점심은 먹어야지. 네가 많은 사람들 상사인데, 밥 안 먹어서 기운 못 차리면 퍽이나 네 말 잘 듣겠다.“
- 애들 다 나 무서워하던데.
”그건 그렇더라. 뭐만 하면 해고한다고 그러는데 안 무서운 사람이 있어? 그것도 진심으로 말하던데.“
- 아, 몰라. 점심시간 다 끝나가니까 빨리 가자.
”응, 자기야.“
- 왜 이래, 사람들이 다 우리 연인으로 보면 어쩌려ㄱ,

”여주, 지금 우리가 커플로 보여?“
- ...
”히익, 반응이 없네.“
- 내가 언제 그랬어!
길가를 거닐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소리를 빽 지르는 여주를 쳐다봤다.
정국은 애써 웃음을 참다가 말할 때 마다 웃음이 피실피실 나왔다.
”여, 여주야... 사람들이 다 ㄴ, 너 쳐다본다...“
- ... 알아 나도... 쪽팔리니까 빨리 따라와...
이 기분이 싫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난 이 감정을 오랫동안 그리워했었을 거다.
아니,
어쩌면 그리워했던 것이 상대일 수도 있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