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코 소굴

너라도 있어서 다행이야

지금 인질 신세인것도 억울한데 왜 설상가상으로 
이런일까지 겹치는지. 그 여자애 (이름이 신은지였다)
를 밀쳤던 날 이후로
신은지 일진무리들에게 찍혀버린 것이다. 
그리고 오늘도 어김없이 시비털려서 방과후에
불려갔다. 

"오늘은 제대로 반성했어?" 

"으응..." 

"와~ 이거 반응 봐라. 네가 은지 밀쳐서  
 손바닥 다친건데." 

참나. 조금 까진걸로 더럽게 생색내기는. 
그냥 나 괴롭힐 명분 하나 잡은거면서. 

"미안해." 

"존나 성의 없네. 야 그냥 정신 차릴때까지 
 패는게 낫겠다." 

"오 좋다!" 

그 말에 일제히 날 에워싸고 몸을 풀기 시작했다. 
설마, 진짜 때릴건가? 그래도 지금까지 
때린적은 없었는데. 망했다. 
그들은 곧장 나를 바닥에 내팽겨친 후 무자비하게 
짓밟기 시작했다. 비명이라도 지르고싶지만 
아파서 목소리가 나오지않는다. 

"임여주 꼴이 왜그래?" 

신은지. 이 모든일의 장본인. 
맵시있게 차려입은 교복에서 희미한 담배냄새가 
풍겨왔다. 

"그러게 그냥 가만히 있지 왜 나대고 그랬어." 

"내가 잘못했어. 이제 그만하면 안될까..?" 

"싫은데?" 

은지가 내 머리위로 쓰레기를 쏟아부었다. 
그순간 모멸감보다는 공포가 더 강하게 몰려왔다. 
나를 오래도록 놔주지 않을 집념. 
오싹해져 몸을 떨었다. 

"너같은 애들은 못 기어오르게 해야돼." 

옆에서 키득거리고 웃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라도 좀 왔으면 좋겠는데.. 

"임여주." 

"!"

익숙한 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가 이렇게 반가울줄이야. 

"한참 찾았잖아." 

범규는 평소처럼 무감정한 표정이었으나 어딘가 
달라보였다.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야 최범규 여긴 왜왔어..?" 

"그러는 넌 여기서 뭐해." 

서늘해진 분위기에 은지는 약간 당황했는지 
우물쭈물거린다. 나한테 취하던 거만한 태도는 
온데간데 없는 모습이었다. 

"새끼가 괜히 껴들지말고 니 갈길이나 처 가지?" 

"여주 데리고 가야되니까 비켜." 

"x발 너나 꺼져."

심기불편해진 남자애 한명이 나서서 욕을 쏟아낸다. 
그리고 범규는.. 그 남자애 머리채를 능숙하게 
잡아 바닥에 내리꽂아버렸다. 심지어 웃으면서! 
아니 쟤 지금 이마에 피나고 있다고.

"커억..큽," 

"내 말이 이해가 안돼? 데려간다고." 

애들이 큰 충격에 휩싸여 얼어붙은 그때를 틈타 그는 
나를 일으켜세워주었다. 

"걸을수 있겠어?" 

"그, 노력은 해볼게." 

"그냥 업고가는게 빠르겠다." 

그러더니 날 훌쩍 업고서 유유히 골목을 빠져나왔다. 
덕분에 더 맞지않고 돌아갈수 있게되서 다행이었지만
방금 저 행동은 역시 소름끼치긴 하다. 

"고마워." 

"뭐가." 

"도와줬으니까." 

"..?그래." 

그 말 한마디로 파악할수 있었다. 
범규는 타인의 감정을 잘 알아차리기 
어려운 사람이라는 걸. 그래서 저런 비정상적인 짓도 
할수 있는거겠지. 

"나는 솔직히 너 좀 무서웠어. 
 가까이가기도 싫고." 

"......"

"근데 지금 너라도 있어서 다행이야." 

아직도 날 이해 못한 눈짓이지만 입꼬리는 살짝 
호선을 그렸다. 

"됐으니까 똑바로 업혀." 

그는 업힌 나를 다시 제대로 들쳐메고 걸음을 옮겼다. 
더 밀착돼버려서 나도 모르게 긴장하게 됐지만
어쨌든 몸은 편한 상태로 집에 도착했다. 

"..2층까지 데려다줄까." 

"아냐 고생했어. 무거웠지?" 

"뭐래 밥이나 잘먹어. 뼈밖에 없던데." 

범규는 무미건조한 투로 대꾸했다. 그 애가 
달리 걱정하거나 특별히 신경써서 하는 말이 
아니란걸 안다. 그냥 별생각 없이 말한거겠지. 
그런데도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인질로 잡혀있다는 사실을 망각할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