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코 소굴

그들의 방식

얼마전 골목에서 범규가 한 일진의 머리를 
피떡으로 만든 일 때문에 신은지 무리는 
한동안 내 옆에 얼씬도 하지못했다. 

게다가 범규는 학교 선생들과 모종의 관계가 있는
제 아버지가 돈을 먹이는 수고를 한 덕분에  
징계도 피할수 있었다. 새삼 학교 내 비리가 
꽤 넓게 퍼져있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그렇지만 반성없이 똑같은 짓을 반복하는게
악인들 불변의 특징 아니겠나. 
신은지는 무력이 통하지 않자 다른 방식으로
교묘하게 나를 괴롭혔다. 

"쟤 전 학교에서 원조교제 했었다는데?" 

"헐; 진짜??" 

"들켜가지고 전학간거래." 

"와 어쩐지 눈빛이 좀 싸하더라
 x발 개소름돋아." 

신은지가 벌써 며칠만에 헛소문을 
동네방네 퍼뜨려서 지금은 1학년 전체가
그 내용을 전부 꿰고있을 정도다. 이미 걷잡을수 없이 
번진 탓에 해명도 소용이 없었다. 

"지 혼자 학교에 똥물붓고 다니네." 

"아~ 왜 하필 여기 전학와가지고." 

나를 향한 조롱과 날선 반응도 쳐낼 방법이 
없다. 이미 다들 굳게 믿고있지 않은가.
심해로 가라앉아 죽는다면 아마 이런 느낌일거다. 

"입 닥쳐 개새끼들아." 

"?"

그때 나서준건 뜻밖에도 범규였다. 
신경질난 표정을 목격한 아이들이 너나 할것 
없이 모두 입을 다물었다. 
단 한마디로 반 분위기를 전환시킬 정도면 
평소에 얼마나 매서운지 짐작이 간다. 

"증거나 갖고와서 말을 해.
 아니면 가만히 짜져있던가." 

"......"

"넌 일어나." 

범규는 나를 조용히 복도로 데리고 나갔다. 

"등신이야? 왜 듣고만 있어." 

"반박할 힘도 없다고." 

"아니면 아니라고 말은 해야지." 

맞는 말인데 어쩐지 수긍하고 싶지 않다. 
어차피 이미 원조교제로 낙인찍힌 판국에
어쩌란 말인가. 

"내가 말하면 뭐가 달라져?" 

"그치. 달라지진 않겠네." 

범규가 고민끝에 얘기를 꺼냈다. 

"그냥 걔네하고 연락을 해볼까." 

"응?누구?" 

"넌 몰라도 돼." 





화려한 대리석 장식이 두드러지는 긴 복도를 지난  
수빈은 사람들 발길이 닿지않는 창고로 향했다. 
그들 가족을 제외하면 누구도 알지 못하는 
공간이자 동시에 가장 흉악스러운 장소로. 
매캐한 먼지냄새와 비릿한 쇠냄새가 공존하는
콘크리트 벽들을 지나 자그마한 쪽방에  
멈춰서자 창살 틈 너머 절박한 목소리가 
들린다. 

"죄송해요.. 제가 잘못했어요." 

여기 끌려와서야 잘못했다는 말을 꺼내는건 
참 간사하기 그지없군. 창백한 얼굴로 벌벌 떠는 
꼴이 볼만하긴 하지만 지금은 그걸 느긋하게 
감상할 때가 아니다. 

"뭘 잘못했는데?" 

"임여주 그 소문 내가 퍼뜨린거예요. 
 친구들 데려와서 때린것도 잘못했고, 그러니까..." 

"어쨌든 내보내 달라는거잖아." 

벌써부터 힘들다 앓는 소리를 하는걸 보고있으려니
속이 끓었다. 수빈이 제 성질에 못이겨 
앞머리를 세차게 쓸어넘겼다. 

"내가 너같이 간사한 새끼들 
 제일 싫어하거든?" 

"......"

"지금 보내줄 생각 없으니까
 처박혀서 반성이나 하라고." 

신은지는 끝내 울먹이기 시작한다. 또다시 마주한 
그 지긋지긋한 동정심 유발 레파토리에 신물이 
날 지경이다. 수빈의 인내심이 바닥날때쯤 
담배를 입에 문 연준이 느릿하게 걸어왔다. 

"또 그 애 잡도리하고있네.
 뭘 그렇게까지 하냐." 

"형은 여기서 담배나 피지마. 환기도 못하는데." 

수빈의 말을 가볍게 무시한 연준은 
불붙은 담배 끝을 잘근거렸다. 

"네가 여주 괴롭혔다는 친구구나." 

"그게.." 

"아, 근데 어떻게 하필 우리한테 걸렸대
 재수없게." 

연준이 재밌다는 듯 큭큭 웃었다. 심상치 
않다는 걸 절감한 은지가 슬슬 뒷걸음질 쳤다. 

"잘 왔어. 당분간 고생 좀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