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코 소굴

한밤에 둘이서

내가 이 재벌집에서 인질 생활 한지도 벌써 한달째다. 
전에는 도망가지 못하게 여럿이 감시를 했었지만
이젠 도망을 갈 염려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감시 인원을 대폭 줄였다. 

사실 내 부모님에 관한 안좋은 얘기들을 자주
듣게되면서, 우리집으로 돌아가고픈 
마음이 사라졌으니까. 처음엔 부모님이 
보고싶었는데 말이지. 

그리고 감시가 느슨해졌을때 그 사건이 터졌다. 

어느 늦은 밤 갈증이 나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제 물 마시러 갈때 누구 허락조차 안받으니까 
편하구만. 얼른 물을 꺼내마시고 내 방으로
돌아가려는데 저 멀리 검은 실루엣이 보인다. 
누구지? 키가 꽤 큰걸보니 남자인데. 
그사람은 매우 천천히 걸어나왔다. 

"......"

새하얀 달빛이 비친 창가에 모습이 드러났다. 
그 의문의 정체는 다름아닌 수빈이다. 
그런데 어쩐지 상태가 이상했다. 더 창백한 
안색과 붉은 눈밑, 비틀거리는 걸음걸이. 
어디가 아픈가? 

"...!!"

그러다 나를 마주한 수빈은 화색이 도는 얼굴로 
뛰어와 품에 안겼다. 

"?!선배 왜그래요 갑자기?" 

"너.." 

갑작스런 상황에 당혹스러웠다. 왜 이런거야 도대체. 
혹시 술이라도 마셨나 했지만 술냄새라곤 전혀 
나지않는다. 
고요한 집안에서 그 울먹이는 목소리만 들려왔다. 

"위험한데 어디갔었어. 걱정했잖아." 

"아니, 저기 지금 사람을 착각한 거 같.." 

"가자." 

가긴 어딜간다고 그러는데요. 당황해서 
우왕좌왕 하는 사이 벌써 수빈의 방 앞에 와있었다. 
딱히 말이 통하는 상태도 아닌것 같고. 
아까부터 왜 이러는거지? 

'아' 

그러다 불현듯이 떠오른 생각. 

'혹시 몽유병 이런건가?' 

차라리 그거면은 말의 아귀가 맞는군. 
설마 몽유병 증상이었을 줄이야. 
자꾸 돌아다니기 전에 빨리 눕혀서 재우는게 낫겠다. 
이러다 사고라도 나면 큰일이니까. 

"거기 있어?" 

"예. 있어요." 

어차피 말 안통하는거 알지만 일단 대답은 했다. 
무슨 이런 병에 걸려서 고생이래. 
일단 잘수있도록 베개를 정돈하고 이불을 덮어줬다. 
이제 내 방으로 가려고 뒤를 돈 순간, 

"가지마." 

"?!"

수빈이 내 손을 잡아끌었고 뿌리칠겨를 없이 
나는 침대 위로 쓰러졌다. 

"아 저, 가야되는데.." 

"여기 있어. 옆에." 

결국 단단히 잡힌 손을 못빼고 침대에
누워있는 상태다. 얼굴 가까이 마주 보고있는 
터라 민망하지만 나갈수가 없다. 

'으으.. 불편해.' 

"...이러고 있으니까 좋다." 

"네??" 

저런 낯부끄러운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다니 
제정신이 아닌건 확실하네. 
내가 얼굴을 붉히고 있는걸 모른채 수빈은 
계속 말을 꺼냈다. 

"혹시 기억나? 왜, 너 12살때 크게 
 다친적 있었잖아. 내가 업고 병원까지 
 뛰어갔었고." 

"......"

"병실에 누운 네 손을 계속 잡고있었어,  
 지금처럼." 

오래전 기억을 더듬어가는 그가 푸스스 웃었다. 
지금 얘기하는 그 인물은 대체 누구일까. 

"그때 내가 너 좋아했는데. 몰랐지?" 

분명 나를 의식하고 하는 말이 아니다. 그래, 
알고있는데.. 이상하게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제 나 두고가지마." 

그 새하얀 눈웃음을 끝으로 수빈은 깊은 잠에 빠져 
얌전해졌다. 나는 혼란스러워 밤을 다 새버렸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