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기 시점입니다. *
* 지문 폭탄 주의 *

07ㅣ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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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슬이 가져간 저 낡은 다이어리, 내가 글을 알고 나서부터 쓴 아주 어릴 때부터 있었던 내 일기장. 나는 어릴 때 책만 읽으며 자랐기 때문에 어휘력이 또래보다 좋았고, 지능이 좋았다.
하지만 그 일기 속에는 내 과거가 많이 담겨있었다. 남들에게 전혀 들켜서는 안 될 그런 과거. 나는 도망가는 윤슬을 충분히 잡을 수 있었지만 점점 속도를 늦추었다. 한 명이라도 내 과거를 알고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었을까, 일기장을 가져간 윤슬만큼은 내 마음을 이해해주고 나를 배신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내 과거는 꽤나 잔인하고 참혹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자란 거겠지. 일단 나는 태어날 때부터 사랑 받지 못할 팔자였다. 나는 친엄마와 불륜남 사이에서 태어난 패륜아였고, 모든 가족의 미움을 내가 샀다.
사업이 성공해 돈이 많던 아버지는 내가 불륜남 아들이라는 이유로, 나를 낳아준 엄마는 나 때문에 아버지의 미움을 받는다는 이유로, 형은 그냥 나를 미워했다.
나는 그렇게 집 안에 있는 캄캄하고 축축한 창고 안에 혼자 방치 되었고, 학교는 물론 출생 신고도 안 된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형은 매일 나에게 상하거나 이상한 음식들은 가져다 주었지만 나는 죽지 않기 위해, 살기 위해 악착같이 노력했다.
집에 아무도 없을 때. 어머니와 아버지는 회사에 가고 형은 학교를 갔을 때 나는 몰래 배를 채우고 형 방으로 가 그 곳에 있는 모든 책들을 하나하나 읽었다. 책장에 꽂혀있는 그 수많은 책들을 모조리 다 읽고 또 읽었다.
그게 내 일상이었다. 여름에는 덥게, 겨울에는 춥게. 친구는 무슨 가족도 내 편이 아니었고,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사람이었다. 어쩔 때는 아버지와 형의 화풀이 대상이 되어 죽기 직전까지 맞았다.
우리 형은 아버지를 닮아 사이코패스 성향 81%에 달하는 사이코패스였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나를 괴롭혔다. 이미 모든 걸 독차지하고 있던 형이 왜 그랬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나와 거의 똑같이 생겨서는 나를 때리는 모습이 너무 싫었지만, 버틸 수밖에 없었다. 이 세상에 내 편은 나 하나 뿐이니까. 내가 못 버티면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난 적도, 죽은 적도 없는 존재니까. 나는 내 존재를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
그러다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들어와 엄마를 때려 죽였고, 시체를 어딘가에 유기했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집을 치우고 증거를 인멸한 뒤 영영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사이코패스였던 우리 형은 그런 아버지를 보고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고, 나는 어린 나이에 그 장면을 보고 절대 잊을 수 없는 충격적인 기억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엄마가 죽고 2년 후, 형이 학교에서 돌아온 뒤 안 좋은 일이 있었는지 발소리를 크게 내며 방으로 들어왔다. 하필 나는 형 방 침대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고, 시간이 많이 지난 줄 모르고 책에 빠져 있었다.
형은 나를 보자마자 눈이 돌아간 듯 했고, 바로 가방을 들고 나에게 달려들었다. 나는 그렇게 그 날 형에게 죽기 직전까지 맞았고, 또 맞았다.
그러다 형이 옆에 있던 가위를 들었고, 나는 형에게 하지 말라고 소리 쳤지만 형은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어쩌면 형은 정신이 나가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형이 휘두르는 가위를 손으로 막았고, 내 손목에서 피가 철철 흘렀다. 나는 그 손목을 붙잡고는 형을 세게 밀쳤고, 형은 뒤에 있던 책상에 머리를 세게 부딪힌 후 쓰러졌다.
나는 형을 신경 쓰지 않은 채 내 손목을 보았고, 피는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다행히 동맥은 건들지 않은 모양이었고, 빨리 지혈을 한 후 다시 형 방에 들어가보니 형은 축 처져있었다.
나는 재빨리 형에게 다가가 숨을 쉬는지, 맥박을 뛰는지 측정해봤지만 형은 이미 숨진 상태였다. 내가 형을 죽였다. 나를 그렇게 괴롭히던 형을, 모든 사람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형을.
그렇게 나는 형의 인생을 살게 되었다. 출생 신고도 하지 않은 내가 혼자 죽은 듯 사는 것 보다는, 형 인생을 대신 사는 게 훨씬 낫다는 나의 판단 하에 내 가짜 인생은 시작 되었다.
사이코패스 형을 따라는 나, 그런 나는 점점 진짜 사이코패스가 되어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나는, 사이코패스가 아니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