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치 빠른 사랑
Written by in시민
인간은 욕심에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이 말에 절실하게 공감하는 월요일 오전 8시 48분
저번 학기에 진짜 끔찍하다 못한 월요일을 경험하고
다시는 월요일에 오전 수업을 듣지 않기로 다짐했는데,
내 몸은 이 시간에 강의실로 발걸음을 옮기는 나였다.
월요일이랑 오전 수업을 섞어버리니 진짜 기분이
개같다. 이 모든게 금공강 시간표를 만들자고
미인스킬로 꼬셔버린 최수빈 때문인데, 아 쟤는 왜
잘생겨서 이런 실수를 저질르는지 4년 넘게 봤는데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밀려오는 졸음에서 벗어나고자 학교 앞 카페에서 산1500원 짜리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별 소용이 없었다.
사실 이 컨디션은 월요일 아침에 대한 객기가 아닌
어젯 밤에 개빡쳐서 책상 날린 뒤에 상처투성이로 최수빈과 개강 기념으로 가진 술자리 때문인 걸 당연하게도 알고있었다. 계속 들고있기는 귀찮으니 최수빈 한테 짬처리 해야지. 하는 시덥잖은 생각을 하며 강의실 문을 열었다.
하나, 둘.. 저기 한 가운데 쯤에 앉아있는 최수빈과 원채영이 보였다. 원채영을 달가워 하지 않는 최수빈 덕에
나는 가뿐히 그 둘의 가운데 자리는 항상 내 자리였다.
한 층 가벼운 몸으로 -털썩 앉자 그 둘의 시선이
나에게 맞닿는다.

“ 왔어? ”
“ 응 ”
자연스럽게 내 손에 있던 아메리카노를 넘기며
대답했다. 또 짬처리냐며 웅앵거리는 최수빈에 어깨를
으쓱였다. 해장엔 아메리카노라며
” 네가 언제부터 나를 그렇게 신경썼다고 “
킹받게 불평하면서도 빨때를 입에 무는 최수빈이 웃겨
작게 웃자 자기를 비웃는거냐며 한대 치는
최수빈을 말렸다. -워 -워. 우리가 조금 소란스러워지자
다른 동기들과 대화하던 원채영이 시무룩하게 말을
걸었다.
“ 뭐야- 어제 둘이 술 마셨어? ”
” 응 “
“ 나도 불러주지.. 니는 왜 나만 빼고 놀아 ”
“ 내가 둘이서 놀자고 불렀어. 이제는 설여주랑만 놀고
싶더라고- ”
은근히 나를 탓하는 원채영의 말에 최수빈이 한 쪽
눈썹을 올리며 대답했다.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에 마치
레이저가 나가는 것 처럼 눈이 반짝였다. 최수빈은
원채영을 좋아하지 않는다. 보다 정확하게는 싫어한다.
그리고 원채영은 그 사실을 알고있다. 원채영은 눈치가
빠르다.
“ 그건 좀 서운 한 말인데- 가끔 수빈이 너는 나를 싫어하는 것 같아 ”
원채영이 생긋 웃는다. 서로를 싫어하는 남녀 한쌍, 그리고 그 사이에 낑겨있는 어딘가 맹한 여자 하나. 이 묘한 관계는 고등학생 때 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
고등학교 친구인 서로의 부모님 때문에 나와 원채영은
기억의 시작부터 함께였다. 어릴 적 부터 눈치가 빨랐던 원채영은 주변 어른들에게 사근사근 굴며 예쁨을
독차지했다. 원채영이 칭찬을 받을 때, 나는 핀잔을
들었으며, 원채영이 사탕 두개 받을 때, 나는 하나 받았다. 뭐, 딱히 억울하지는 않았다. 그건 원채영이 행한 노력의 결과였으므로.
우리는 항상 비교되어왔다. 진짜 한 15년 전에는 어른들이, 청소년기에는 또래 친구들이 나와 원채영을 비교하며 원채영을 치켜세웠다. 물론 그럼에도 나는 억울해 하지 않았다. 수고스럽게 상대방의 비위를 맞춰주는 원채영이 대단하다고 생각 할 뿐 이였다.
원채영은 곧 송예빈에게 가서 말을 걸었다.
“ 예빈아.. 혹시 도서부 말고 다른 동아리로 옮겨 줄 수 있을까..? 여주 자리가 없어서.. “
부탁할게! 원채영은 두 손을 겹쳐 꽤나 정중하게
부탁했다. 물론 부탁의 원인으로 본인이 아니라 나를 들이먹이는걸 잊지 않은 채로 말이다. 반 아이들의 시선이
그들에게로 쏠렸다. 송예빈은 머뭇거리며 쉽게 입을 떼지 못했다. 당연하다. 반에서 주도권을 쥐고있는 친구의
말을 거절하는 것은 고등학생에게는 꽤나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여기서 문제는 송예빈의 뒷자리가 윤지우 였다는 것.
“ 야 웬만하면 그냥 좀 바꿔줘라, 동아리 뭐 얼마나 중요하다고 ”
그리고 윤지우가 원채영에게 호감이 있었다는 것.
“ 아 응.. 바꿔줄게. ”
그런 윤지우를 송예빈이 좋아하고 있었다는 것. 송예빈이 자리를 박차고 교실을 나서는 소리, 원채영과 윤지우가 떠드는 소리, 아무 데나 들어가지 왜 원채영을 수고스럽게 만드냐며 나를 나무라는 반 아이들 소리 중 무엇도 신경쓰이지 않았다. 난 그저 이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이용한 원채영의 겁 없는 행동과 영악함에 놀라워 하고 있을 뿐 이다. 귀찮지도 않나, 원채영의 영악한 행동들에 대한 나의 한 줄 평이였다.
그렇게 들어간 도서부에서 최수빈을 만났다. 같이 당번을 하게 된 나와 최수빈은 의외로 쿵짝이 잘 맞았고, 셋이서 함께하는 시간들이 많아졌다. 그때도 최수빈은 원채영을 싫어했고 원채영도 그런 최수빈을 싫어했다.

“ 넌 왜 쟤랑 같이 다니냐? 몇 달 안본 나도 꼴 보기 싫어 죽겠는데 ”
거기에 내가 뭐라고 답했더라, 그냥, 재밌잖아 라고 답 한 것 같다. 상황을 이용해서 당번을 바꾸고 사람을 주물러서 책 정리에서 빠져나와 선배들과 하하호호 떠들던, 내가 신기하게 생각했던 원채영의 모습들이 최수빈은 아니꼬웠나보다.
여기서 드는 의문 하나. 그럼 이 셋은 왜 같이 다니는 걸까? 그에 대한 답은 나에게 있었다. 최수빈은 본인과 쿵짝이 잘 맞는 나를 놓치기 싫었고, 원채영은 본인의 우월함을 과시하기 위해 내가 필요했다. 나는 그냥 이들을 떨쳐내기에는 모든 게 귀찮았을 뿐이고.
우리 셋만 아는 묘한 신경전을 벌이는 둘을 바라보며 상념에 빠져있을 때, 갑자기 소란스러워진 강의실 분위기에 정신차렸다. 최수빈과 원채영도 휴전을 택했나보다. 그들을 따라 뒷문으로 시선을 옮기자,

“ 좋은 아침- “
최범규가 들어오고 있었다.
—————————————————————————
최범규가 누구인가. 만사가 귀찮은 탓에 주변에 동기라고 하는 최수빈, 원채영밖에 없는 나조차도 하루에 한번씩은 꼭 그의 이름을 듣는다. 새내기들의 설렘으로 가득 찼던 3월 개강 날 웅성거리던 강의실 분위기와 상반되게 그 날 에브리타임은 유난히 소란스러웠다. 공대 1 건물로 들어가던 흑발에 장발 한 남성분 대체 누구신가요?
장발 걔로 유명해진 최범규는 머리 색을 꽤나 휘황찬란하게 바꿔댔다. 흑발에서 핑크색으로, 핑크색에서 또 탈색하고, 탈색모에서 또 파랑으로 정신없이 바뀌는 최범규의 머리 색에 맞춰 에브리타임 글도 변화해갔다.
예를들어 핑크머리 그분 애인 있나요?, 공대 파란머 월공강인가요? 수강정정 하게요. 처럼 학교의 정보를 생생하게 전해주던 에브리타임이 최범규 염색 알림어플로 바뀌는 순간이였다.
잘생긴 놈은 얼굴 값 한다는 엄마의 말과 다르게 최범규는 모난 구석이 없어보였다. 남녀 가리지 않고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는 그야말로 인싸의 표본이였다. 심지어는 교수님 마음까지 사로잡아버렸는데, 최범규가 체크 셔츠를 입고 온 어느 날 깐깐하기로 소문난 백 교수가 이런 발언을 했다.
“ 학생들 사이에서 공대 놈들이 체크셔츠만 입고 다닌다고 뭐라 한다며? 근데 최범규가 입으니까 까르띠에 같네- 이게 요즘 애들 말로 그런건가 패완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