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빠른 사랑Written by in시민
02.
“ 저번에 빌려준 책 다 읽었어! 시간 가는 줄 모르겠더라고 ”
“ 아 그래? 다행이네 “
원채영이 책을 빌렸다. 웃기는 소리네, 옆에서 작은 웃음소리가 난 걸 보니 최수빈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한 모양이다. 고등학교 3년간 같이 도서부 활동을 하며 원채영이 책을 읽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나와 최수빈이 책을 읽을 때 혼자 옆에서 간식이나 까먹던게 원채영 이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건 원채영이 최범규에게 책을 빌렸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원채영이 ‘ 최범규 ‘ 에게 책을 빌렸다.
원채영은 최범규를 좋아한다. 그것도 꽤 오랫동안 좋아했다. 물론 기를 쓰고 숨기려고 애쓰는 원채영 덕분에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나와 어제 술자리에서 얘기를 전해들은 최수빈 정도밖에 없다.
물론 원채영은 나에게도 본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아는것을 극도록 꺼릴것이다. 나는 항상 원채영의 옆에, 아니 밑에 있어야 하기 때문에, 내가 항상 원채영을 빛내줘야 하기 때문에. 그렇기에 원채영은 내가 본인의 약점을 아는 것을 싫어 할 것이다. 물론, 나는 전혀 상관없지만
여기서 드는 두 번째 의문, 설여주는 어떻게 알고있는가? 이번에도 답은 나에게 있다.
나는 눈치가 존나게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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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여주는 눈치가 존나게
빠르다.
여기서 존나게의 차이는 말 그대로 존나게 차이 난다.
나는오렸을 때 부터 원채영의 해온 모든 노력과 영악한 짓들을 알고있었다. 원채영이 나를 이용해 상황을 모면할때도, 나를 이용해 이득 볼 때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가만히 있었다. 단지 이유는 귀찮아서.
만사가 귀찮은 나는 줏대있게 A를 고집해왔다. 만약 상대방에 맞추어 B라 답한다면 계속 그런 불편한 상황속에서 헤메야하지만, A라 답하면 그냥 눈치없는 애라는 핀잔만 듣고 불편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눈치가 존나 빠르지만 눈치가 없는 사람이 되었다.
나에게는 약 20년간을 살아오며 만들어낸 눈치의 법칙이 있다.
01. 눈치가 빠른 사람은 눈치가 빠른 사람을 알아본다.
02. 눈치가 진짜 좋은 사람은 눈치가 없는 척 한다. 그렇기에 원채영은 나에게 어설프게 눈치가 좋은 사람이다. 걔는 본인이 눈치가 좋은 사람이란 걸 티 내고 싶어서 안달이 났으니까. 최수빈도 눈치가 좋은 편 이지만 본인이 알아차리지 못하니 패스, 그리고 이 법칙에 들어맞는 사람을 나는 딱 한명밖에 보지 못했다.
사랑에 빠진 원채영을 신기한 눈으로 구경하니 둘의 대화가 마무리되기 직전이다. 그 때 나재민이 의도인지 실수인지 어퍼컷을 날렸다.

“ 이 그러면 혹시 거기에 나오는 주인공 엄마 있잖아, 나달린의 선택이 어쩔 수 없는 선택라고 생각해? “
”..어? “
완벽한 최범규의 승리였다. 하얀 것은 종이, 검은 색은 글씨이니라 하면서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았을 원채영이다. 아니, 어쩌면 하얀 종이를 보면서 최범규를 생각했을지도 모르지.
“ 내가 그 주제로 레포트를 썼거든, 좀 흥미로운 주제라. 너무 갑자기 물어봐서 당황스럽나? 미안- ”
“ 아.. 그게 ”
그럼 책은 수업 끝나고 돌려줘- 최범규는 싱긋 웃는 얼굴로 고개를 앞으로 돌려 옆자리인 최연준과 대화를 시작했다.
눈에 띄게 당황한 얼굴을 한 원채영은 금새 표정을 갈무리하고 강의실을 나섰다. 자존심이 꽤나 타격을 입었을거다. 항상 사람들을 주무르기만 했던 저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한 방 먹어버리니, 상대는 의도하지 않았을지라도
“ 최범규 쟤 일부러 저러는거야 뭐야, 원채영이 지 좋아하는거 모르나? ”
그런 원채영을 보며 킥킥대던 최수빈이 내게 작게 속삭여왔다. 강의 자료를 정리하던 나는 어이없다는 듯이 허- 하고 웃고 작게 속삭였다.
“ 그럴리가 ”
그러니까 내 말은.. 이건 법칙이다. 이 법칙에 들어맞는 사람을 딱 한명밖에 보지 못했지만.

최범규도 눈치가 더럽게 좋은데
법칙 1. 눈치가 빠른 사람은 눈치가 빠른 사람을 알아본다.
최범규는 눈치가 존나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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