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은 힘을 잃고 지구조차 숨죽이고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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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소원목록





***




" ... 규야. "
" 범규야. "


" 어? "


" 범규야. 내 목소리 들려? "
" 나야, 김행복. "


" 어, 행복아. "


  분명 들린다. 그 아이의 이름 세 글자. 김행복. 아, 또 깨어나면 까먹는 거 아냐? 어떡해. 


" 넌 매번 내 이름 까먹더라. "


" 미안. "


   네가 장난스레 웃으며 나에게 오라고 손짓했다. 나도 너에게 웃어보였다. 너는 웃는 모습이 가장 예쁘다. 이런 예쁜 널 또 다시 잊을까 두렵다. 하지만 두려워하기엔 지금 이 상황을 너무나도 즐기고 싶다. 


" 가까이 가도 돼? "


" 당연하지. 안 될게 뭐 있어. 얼른 와. "


" 거기서 기다려. "


  네가 있는 곳으로 가볍게 달려갔다. 바람이 코 끝을 간지럽혔다. 행복했다. 이래서 네 이름이 행복인 걸까? 너는 나에게 행복을 줬다. 네 존재 자체로도 나에겐 행복이였다. 벚꽃잎은 휘날렸고, 네 머리는 바람에 나부꼈다. 내 시야 속에서 네가 점점 커졌고 가까워졌다. 마침내 나는 네 바로 옆에 왔다. 우리 사이 거리는 이십 센티미터도 채 되지 않았다.


" 범규야, 보고 싶었어. "


" 나도. "


  우리는 서로를 향해 미소를 띄었다. 오늘은 꼭 너에게 좋아한다고 말할 거다. 널 처음 봤을 때부터 좋아했다고. 네가 나에게 가장 큰 행복이라고. 너 없인 평생 행복하지 않을 것 같다고.


" 행복아. 있잖아. "


" 응? "


  네가 내 말에 주의를 기울였다. 너의 다리 위에 살포시 놓여져 있는 너의 손을 잡으려 손을 뻗었다. 그 순간, 나는 꿈에서 깨어났다. 나는 또 너를 잃었다.



***



  꿈을 꿨다. 요즈음 매일 그 아이가 나온다. 누굴까. 누구길래 한 달 동안 나를 괴롭히는 걸까. 이름이 뭐였더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지금 기억이라도 적으려 공책을 꺼내 펼쳤다. 다 낡은 연필 한 자루를 집고 그 아이에 대해 정리를 했다.


· 여자 아이.
· 벚꽃나무.
· 이름 :


" 이름이 뭐였더라... "
" 김... 김... 김 뭐였는데... 김... "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 머리 아파. 왜지. 왜 하필 나한테 나타나는 거야. 괴로웠다. 알아내면 뭐라도 할 수 있을 텐데. 일단 지금 더 하다간 머리가 터질 것 같으니 노트를 덮었다.


" 엄청 예뻤는데. 너. "
" 아... 모르겠다. "



***



" 범규야. "


  벚꽃나무 아래에 서있던 한 여자애가 말을 걸어왔다.


" 너... 누구였더라? "


" 너무하네. 나도 못 알아봐? 김행복. 행복이잖아. "


" 어...! 맞아. 행복아. 미안. "


" 됐어. "


" 아 미안... 한 번만 봐주라. 응? "


" 프, 알았어. 얼른 와. "


  나는 또 너에게 달려간다. 그리고 이번엔 말했다.


" 행복아, 좋아해. "
" 처음 볼 때부터 지금까지 쭉 좋아했어. "


  너는 내 행복이야. 나랑 만나줄래?
너의 손을 잡으려 손을 뻗었다. 그리고 또 나는 이 악몽에서 깨어났다.



***



  일어나보니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 휴대폰을 가지러 책상으로 갔는데 처음 보는 노트가 있었다. 펴 보았더니-


" 이게 다 뭐야? 여자아이? 벚꽃나무? "


  온통 이상한 단어들로 가득했다. 난 이런 걸 적은 기억이 없는데? 이게 다 뭐지. 내 글씨는 맞는데. 형이 쓴 건가? 내가 잠결에 썼나? 뭐지.



***



  그리고 나는 또 끝나지 않는 이 악몽을 꾼다.


" 범규야. "


" 누구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