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붉은 달
w. 평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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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_ 새벽 2시. 외롭지만 위로해줄 이 하나 없는 시간. 비가 한 두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하는 와중에도, 누군가의 어깨를 치더라도 텅 비어있는 걸음을 멈추지 않는 앳된 얼굴의 남자가 단연 눈에 띄었지.
아무것도 담기지 못한 채 텅 비어있는 탁하고도 짙은 검은 색 눈동자를 가진 그 남자의 멈추지 않던 걸음을 멈추게 만든 것은 어두운 거리를 붉게 물들이는 ‘Red moon’이라는 네온 사인 간판이었다. 붉은 달… 마치 자신이 위로해주겠다는 듯이 정신을 몽롱하게 만드는 그 오묘하게 빛나는 검붉은 색에 이끌려 가게 안으로 발을 들였다.
딸랑_
달빛조차 새어들어오지 않아 칠흑같이 어두운 내부에 정신을 차린 남자가 다시 밖을 향해 몸을 돌리려 하자 켜지는 주황빛 전등. 옅은 불빛이 가게 내부를 비췄다. 하지만 여전히 어두운 내부에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지.

뒤이어 또각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가게를 나가려는 남자의 등 뒤에서 멈춰섰다. 그리고 귓 속을 파고드는 낮은 톤의 여자 목소리.
“어서오세요, ‘붉은 달’입니다.”
“…”
천천히 여자를 향해 몸을 돌린 남자는 멍하니 여자를 바라봤다. 검은 색의 칼 단발, 하얗다 못해 투명한 피부, 작은 얼굴에 오목조목 자리하고 있는 눈코입, 붉은 눈동자와 매혹적인 입술. 이보다 완벽한 외모를 가진 사람이 있을까 생각하게 만드는 얼굴이었다. 허나 남자는 붉어진 두 볼로 허탈하게 웃으며 고개를 푹 숙였지. 꼴에 남자라고… 자신을 비난하는 듯한 말도 읇조리며.
“어떤 것을 원하세요?”

“… 저는, 돈이 없어요. 원하는 것도 없고.”
이어 아무 맥락없이 원하는 게 있냐고 물어보는 질문에 삶의 의욕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무미건조한 대답 들이 남자의 입에서 툭툭 끊어져 떨궈졌지. 돈도 없고 원하는 것도 없다는 무책임한 말. 자신의 삶을 버린거나 마찬가지였다. 그에 여자는 다시 한 번 잘 생각해보라며 남자의 입가에 위치한 상처를 엄지 손가락으로 살살 쓸었다.
뭐든지 다 말해보라는 것 같은 손길에 멍을 때리다 따가운지 미간을 찌푸리며 여자의 손목을 잡아챈 남자의 손. 차가울 것만 같은 외모에 한기 서린 아우라를 풍기던 남자의 손은 보기보다 따뜻했다. 여자는 싱긋 미소지으며 한 번 더 물었지. 정말 원하는 게 없느냐고.
“…”
남자는 두번째로 받은 질문엔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눈시울이 벌게지기 시작했지. 서로를 바라보던 탓에 진득하게 얽히는 시선이 부담스러울 법도 했지만 시선을 피하는 이는 없었다.
울음을 참는지 입술을 깨물면서도 여자의 시선을 피하지 않던 남자는 제 손에 붙잡혀있는 여자의 손목을 아프지 않게 그러쥐었다. 한결 편해진 손목에 여자가 시선을 손목으로 돌리려 할까, 남자는 다짜고짜 제 이름을 내뱉었다.
“… 전정국.”
“그래, 정국아.”
“이름…”
“설여주.”
용케도 울음섞인 발음을 알아듣고 이름을 불러주는 여자. 이어 제 이름까지 말해주었다. 아, 설여주… 조용히 읇조린 정국. 정말 아무 맥락없는 말들이 오고 가도 뭐라 할 사람도 없었지. 정국이라는 남자는 여주라는 여자의 말투가 차가웠음에도 불구하고 눈물을 툭 떨어트리며 주저앉았다.
붙잡고 있는 손목이 금동아줄이라도 되는 마냥 절대 놔주지 않던 정국. 자신의 손에 잡힌 손목이 아닌 반대 손으로 푸석한 제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는 여주에 왈칵 울음을 터트리며 입을 열었다.

“살고, 살고 싶어요. 저 정말 죽기 싫어요..”
간절함이 담긴 울음이 가게 안을 가득 채웠다. 어쩌면 마음 한 구석엔 항상 살고 싶다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지않았을까. 그 텅 빈 눈동자로 세상을 바라본 이유는 어느 누구라도 자신의 눈을 보고 텅 빈 제 마음을 채워주길 바란게 아니였을까. 살고 싶다고, 너무 살고 싶다고 부르짖는 자신을 애써 감추며 살아온 자신에게 잘 참아왔다고,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줄 사람을 찾아온 것은 아닐까.
여주보다 한참 큰 정국이었지만 작은 여주의 품에 파고들어 어린애처럼 울어대기 바빴다. 그런 정국의 등을 쓸어주는 여주의 입가엔 비릿한 미소가 가득했지.
“내가, 살려줄까?”
“흐… 네, 네…”
“나는 네가 가장 사랑하는 것을 가져갈거야. 그래도 들어주길 바래?”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살려주세요… 저 좀 도와주세요, 제발…”
눈물에 흠뻑 젖은 정국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가장 사랑하는 것. 정국이 가장 사랑하는 것은 다름아닌 제 자신이었다. 태어나자마자 저를 버리고 가버린 기억에도 없는 부모,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하고 개보다 못한 취급을 받으며 가축처럼 일만 하다 19살까지 살고 나온 보육원, 번번이 떨어졌다고만 하는 면접 불합격 문자들… 이 세상 어느것도 사랑할 수 없었다.
보육원에서 나와 간신히 얻은 좁은 고시원에서도 쫒겨나 갈 곳 없는 정국이 할 수 있는 것은 죽는 것 밖에 없었기에. 주머니에 꼬깃꼬깃 접혀 들어있던 전 재산은 고작 7천원이었다. 그런 정국의 발걸음을 멈춘 ‘Red moon’이라는 간판, 그리고 살게 해주겠다는 여주의 말을 무시할 수 없었다. 누구보다 삶에 대한 욕망이 강했던 정국이었으니까. 지옥보다 더 지옥이었던 보육원에서 살아남은 독종 중에 독종이었으니 말 다했지.
“아파도 조금만 참아.”
“아프다고요…? 많이 아ㅍ, 아…”
콰득_ 자신의 목 부근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숨에 놀란 것도 잠시, 살을 관통하는 아픔에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숨만 참아대는 정국. 하지만 숨을 참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정국은 목이 점점 아려오는 느낌에 여주를 밀어내려하지만 뒤이어 발 끝에서부터 머리 끝까지 훅 올라오는 한기에 눈을 크게 떴다.

“허억…”
정국의 반응에 이만하면 됐다는 듯이 물러난 여주였지만 무언가 아쉬운 듯 입맛만 다셨다. 달달하지만 물리지 않는 맛이랄까. 놀란 정국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도 못한 채 여전히 저가 붙잡고 있던 여주의 손목을 힘없이 놓치더니 여주의 입술이 닿았던 제 목을 더듬었다.

“뱀… 파이어…”
애써 손으로 막아보지만 자신의 목에서 멈추지않고 흘러나와 바닥에 후두둑 떨어지는 혈흔을 보며 겁에 질린 표정을 내비치는 정국. 그런 정국을 보는 여주의 표정은 이런 반응에 익숙하다는 얼굴이었다.
두려움에 젖어 여주와 거리를 두면서도 목에서부터 퍼져나가는 불에 데인 듯한 느낌이 감당하기 버거운지 도리질치는 정국이 여태껏 봐왔던 사람들의 반응과 똑같아서인지 무미건조하던 여주의 표정. 허나 그 표정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살고, 싶어요… 살, 게 해주세요”
바로 자신의 쪽으로 다가온 정국의 행동 덕분에. 정국은 자신이 다가가 가까워진 거리였지만 너무 가까운 거리에 탄식을 내뱉으며 한 발자국 멀어졌다. 띵한 머리를 부여잡으며 숨을 들이키자 훅 하고 밀려들어오는 아찔한 향수 냄새. 그 사이로 섞여들어오는 묘한 향에 저절로 뒷걸음질이 쳐졌지만 금세 등에 닿아오는 벽에 이도저도 못하고 바르르 떠는 정국.
아아… 아윽… 아파요, 너무 아파… 머리를 쥐어짜다가, 목을 죄다가.온 몸을 바르작거리며 한 순간에 저를 잠식한 고통을 참는 정국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여주는 얼굴을 가까이하며 속삭였다.

“물어.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여주의 말이 정국의 고통스러운 신음의 흐름을 끊어트리는 그 순간, 이유없는 갈증으로 타오를 듯한 목을 부여잡으며 숨을 헐떡이던 정국의 눈은 붉은 핏빛으로 물들었고, 곧 제 앞에 있는 여주의 목에 고개를 파묻었다. 여주는 매번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느낌에 한숨만 내쉬었지.
“…”
“뭐해, 안 물고.”

“… 물면… 어떻게 돼요?”
“내가 널 가질거야.”
평온한 얼굴의 여주와는 다르게 정국의 표정은 불안정해보였다. 붉게 물들었던 눈동자는 다시 검게 변해있었지. 자신을 가질거라는 여주의 대답을 듣자 마음이 놓인건지 어둠이 잔잔하게 내려앉은 눈동자에 붉은 파도가 일렁였다. 눈 앞에 위치한 새하얀 목으로 천천히 입을 가까이 하던 정국은 제 어깨 위에 올려진 여주의 손을 끌어내려 맞잡았다.

“나, 버리지 마세요…”
“안 버려.”
“… 나한텐 이제 그쪽 밖에 없는거야.”
“알겠, 윽…”
그때부터 였지, 아마. 정국의 일방적인 구애로 인해 시작된 질기고도 짙은 인연에 마침표가 사라진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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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맘대로질러놓고언제이어서쓸지모름
아이고 숭하다 숭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