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 흑사(黑巳) 윤기 이야기 [下]
송월 가문만큼 오래된 가문의 경우, 그 집안에 내려오는 전설 같은 게 꼭 하나씩은 있기 마련이다.
윤기네 가문은 흑사 가문이었기 때문에 뱀과 관련된 전설이 대대로 전해져 내려왔다.
이 전설은 범접할 수 없는 무거운 느낌보다는 그저 옛날이야기 같은,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는 전래동화 같은 그런 전설이었다.
.
.
.
사실 윤기네 가문인 흑사 가문 말고도 호랑이 가문, 흑표범 가문 등 여러 가문이 많았지만 뱀과 관련된 가문은 제 가문인 송월 가문이 유일하였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뱀은 흑사 말고는 없는 것이었다.
아무리 다른 색 뱀이라고 해도, 몸에 검정색이 꼭 있는 것이 보통 뱀이었다.-그러니까 -어찌되었던 간에 흑사 가문의 피를 아주 조금이라도 받은 그런 뱀들이었다는 것이다.
사실 생태계에 다른 종 없이 한 종만 살아남기는 어려운 일이다.
지금의 상황, 그러니까 흑사 가문의 종밖에 없는 상황을 설명하자면 우리 인간을 예로 들어야 한다.
우리 인간은 사실 오스트랄로 피테쿠스 아파렌시스-호모 하빌리스-호모 에렉투스-네안데르탈인-호모 사피엔스 이렇게 직계적으로 내려온 것이 아닌, 공존하던 시기가 있었다.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하였는가?
바로 지금 21세기에는 호모 사피엔스만이 생존하여 인간 문명의 대를 이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바로 호모 사피엔스가 다른 종을 대학살하였기 때문이라고밖에 설명하지 못한다.
송월 가문, 그러니까 흑사 가문도 마찬가지로 다른 뱀 종을 모두 학살하고 살아남은 유일한 종이었다.
이 전설은 거기에서부터 시작된다.
.
.
.
옛날 옛적에, 아주 크고 늠름한 흑사 한 마리와, 아주 날렵하고 민첩한 홍사 한 마리가 살았단다.
그 둘의 나라는 각각 동쪽에, 서쪽에 나뉘어져 살았고, 그 둘의 관계는 좋지 않았어. 그렇게 국가 간 관계를 이어갔단다.
-"하. 저기 어디가 부끄러운지 새빨간 모습을 하고 지나가는 홍사 좀 보게!"
- "거무튀튀하여 천해 보이는 흑사는 또 어떻고?"
- "뭐? 지금 무슨 말을 지껄이는 게야!"
사람들간의 싸움도 끊이지 않았어. 오죽하면 흑사국에서는, "홍사국한테는 사방치기도 이겨야 한다."라고 말하고,
홍사국에게서는 "흑사국으로는 눈도 돌리면 안 된다" 라 말할 정도였으니까.

-"역시 홍사국은 사방치기도 못한다니까? 하하하하!!"
-"흑사국은 사방치기 말고 잘하는 것도 없으면서, 쳇!"
그렇지만 흑사국과 홍사국에서 각각 늠름한 청년 한 명과, 아리따운 처녀 한 명이 서로를 사랑하는 그런 일도 벌어졌단다.
그 늠름한 청년과 아리따운 처녀는 서로를 열렬히도 사랑하였고, 서로에게 해와 달 같은 그런 존재였어.청년의 이름은 찬솔, 처녀의 이름은 다솜이었어.
그렇게 사람들 눈을 요리조리 피해 서로를 사랑하던 어느 날
찬솔은 홍사국의 영토의 가장자리 부분으로 가는 일이 잦아졌고, 이를 마을 사람들은 고이하여 사람을 몰래 붙였어.
그중에는 찬솔과 제일가는 친구이던 자도 있었지.
그렇게 두 사람이 오늘도 흑사국과 홍사국의 경계선에서 밀담(密談)을 하던 와중,
찬솔의 친구가 그 광경을 보고 말았어.
하지만 찬솔의 친구는 그 사실을 함구(緘口) 하였고, 둘은 다행히 들키지 않고 넘어갈 수 있었지.
한 고비가 지나갔을까, 이제 평화로울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던 둘은 또 다른 난관에 부딪혀.

바로, 두 나라간의 전쟁이야.
- "가소로운 홍사국을 멸망시키자!!"
- "우리를 무시하던 흑사국에게 본때를 보여주자!"
워낙 사이가 좋지 않던 두 나라이다 보니 전쟁은 매우 치열하고, 잔혹했어.
어른, 아이, 여자, 남자 가림 없이 서로를 죽이기 바빴지.
길거리에는 붉은 머리칼을 가진 사람, 검은 머리칼을 가진 사람의 시체 가림없이 모두 참담하게 널브러져 있었어.
두 사람이 이별해야 할 때가 온 걸까?
그 날은 암묵적인 약속으로 두 나라간의 전쟁이 잠깐 멈춘 몇 없는 날이었어.
그날은 비가 매우 많이 내리던 날이었어
언제나 만나던 경계선에 가서 두 사람은 사랑을 나누었지.
너무 방심했던 탓일까?
뒤에 홍사국의 패두(牌頭)가 있다는 걸 청년은 알아채지 못했어.
-"네놈은 어디 홍사 가문의 처녀를!"
찬솔의 목에 칼을 들이대던 그 순간
-"한 마디만... 딱 한 마디만 하게 해 주시오."
이때부터 다솜의 눈에는 깊은 슬픔의 비가 차올라 넘쳐 흐르기 시작했어.
지금 하늘이 내리는 비보다 아마 몇 배는 더 깊은 슬픔, 아마 몇 배는 더 깊은 마음.
아마도 하늘의 슬픔은 보슬비라면, 홍사의 슬픔은 우레비일 것이야
-"다솜아, 내 너를 이대로 영결(永訣)한다 하니 흉장(胸牆)이 붕렬(崩裂)하는지라. 연이 닿는다면 다음생에 만나 내 너에게 못 해준 것을 다 해주겠다.
이윽도록 사랑하고 싶었으나 먼저 떠나는 것을 부디 용서하여라."
찬솔은 전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했어.
홍사국의 패두가 찬솔에게 칼을 던졌거든
바로 죽지는 않을 거야. 이건 고의거든
끝까지 아픔을 느끼라는 잔인한 의도.
찬솔의 손에는 여태껏 가난해 비녀 한번 못 가진 다솜을 위한 아주 아리따운 비녀 하나가 들려 있었어.
찬솔은 손으로 여러 모양을 만들어 다솜에게 보여주었어.
아. 아아. 그건 둘의 군호(軍號)야.
찬솔이 전한 말은,
- '마지막까지, 억겁(億劫)의 생을 돌고 돌아도 그 마지막까지 널 사랑할게'
사람이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감각은 바로 청각이라는 말이 있지
찬솔은 너무 빨리 숨이 멈춰 다솜의 마지막 사랑한다는 말을 듣지 못했어.
그저 사무치게 내리는 빗소리와, 다솜의 울음소리만 들었을 뿐이야.
그렇게 두 사람의 사랑은 마치 신의 잔혹함으로 만든 연인의 사랑이었어.
아프게 사랑하고, 아프게 이별하여라.
_
옛적에, 홍사가 한 마리 살았는데
뱀의 모습일 적에는 피부는 태양과 같이 붉고 눈은 달과 같이 반짝인다 하더라
사람의 모습일 적에는 피부는 언제 붉었다는 듯이 새하얗고 눈과 머리칼이 태양의 기를 받은 듯 그리 붉었으니 그 미모가 준할 데가 없다 하여, 그 뱀을 갖게 되면 필히 엄청난 부와 무량억겁(無量億劫)의 시간의 열쇠를 찾을 것이다 -
_
당연히 송월 가문의 어린 가주 윤기도 어릴 적부터 이 전설을 듣고 자랐고,
있을지도 모르는 홍사를 찾아다니는 건 시간낭비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윤기는 그냥 그렇게 옛이야기로 넘겨버렸다.
하지만 둘의 손목에 묶여진 홍사는, 절대로 끊길 일이 없는 운명의 끈은
생각보다 더 단단하고, 생각보다 더 붉었다.
_
*단어풀이
-고이하여: 이상하게 생각하여.
-밀담: 남몰래 이야기함. 또는 그렇게 하는 이야기.
-함구하다: 입을 다문다는 뜻으로, 말하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
-패두: 패의 우두머리.
-영결: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이)영원히 해어짐.
-흉장이 붕렬하는지라: 가슴이 무너지고 찢어지는지라.
-군호: 서로 눈짓이나 말 따위로 서로 연락하는 신호. (이 작품에서는 눈짓으로 전달하기 어렵다 생각하여 손짓으로 군호를 정하였다 하였습니다 :> )
-억겁: 무한하게 오랜 시간.
-무량억겁: 헤아릴 수 없이 긴 시간.
-보슬비: 소리 없이 조용히 내리는 가랑비
-우레비: 천둥과 함께 요란하게 내리는 비
_
작가의 말
여러분 진짜 저 오랜만에 왔죠 ㅜㅡㅜ 현생에 바빠 글을 많이 못 써 죄송합니다ㅠㅜ
전 글을 쓰는 데 시간도 오래 걸리고 그 글을 꽤 오래 수정 및 정독하기 때문에 글 내는 텀이 길더라고요
그래서 이미 낸 글을 수정하여 재업하기도 할 거에요ㅎㅎ
최선을 다해서 부지런히 써 보겠습니다
중간에 나온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가 공존했다는 이야기는 유발 하라리 작가님의 인류학 책인 <사피엔스> 에 나온 주장입니다
그 책에서는 '호모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에게 공격을 가해 네안데르탈인이 멸종하였다' 라는 가설과'둘이 화합하여 교류하며 공존하며 살았다' 가 나왔던 걸로 기억해요(더 정확하게 아시는 분이 계신다면 댓글로 알려주세요)
이 이야기에서는 전자를 기반으로 하여 작성하였습니다!ㅎㅎ
또한 제가 블로그를 만들었어요..!
블로그에 오시면 제 글을 보다 빠르게 만나보실 수 있답니다
https://m.blog.naver.com/kmjsmile8078/222471671263
많이 찾아와주세요💖
흑사 윤기의 이야기는 이 편에서 끝났고(여주의 이야기도 끝나면 이제 둘이 번갈아서 나오거나 같이 나올 거에요 :> ) 다음부터는 홍사 여주의 이야기가 상편, 하편으로 진행 될 예정이에요!
우리 홍사 여주도 많이 많이 사랑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안온한 하루 보내세요 >_<
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