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그가 카페 문을 열었을 때, 나는 괜히 시선을 피했다. 아무렇지 않게 커피를 내리고 있었지만, 심장은 제멋대로 속도를 올리고 있었다.
정국은 카운터 앞에서 잠시 멈춰 나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오늘도 추천 하나 해줘요. 어제처럼.”
“그냥… 원래 드시던 거 드시면 되잖아요.”
“어제도 좋았는데요. 그게, 당신이 골라준 거라서.”
그 말에 나는 눈을 크게 떴다가, 얼른 시선을 컵으로 내렸다. 정국은 대답을 재촉하지 않고, 여유롭게 손목시계를 만지작거렸다. 그 행동 하나하나가 묘하게 시간을 끄는 것 같았다.
결국 나는 아이스 바닐라라떼를 추천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주세요. 오늘은 단 거 많이 필요하니까.”
바닐라라떼를 준비하는 동안, 정국은 카운터에 기대서 기다렸다. 늘 창가 자리로 바로 갔던 사람이라, 이렇게 가까이 서 있는 게 낯설었다. 컵에 얼음을 넣는 내 손이 조금 떨렸다.
“혹시, 저 기억하는 거 맞죠?”
그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말인지.. 그냥 손님이세요 저한테는. 가끔은 다른 손님이랑 헷갈릴 때도 있을만큼."
나는 일부러 무심하게 대답했다. 정국은 잠시 웃더니, 컵을 받아들며 말했다.
“난 안 헷갈려요. 당신을 처음 본 순간부터, 한 번도.”
그는 창가로 가서 앉았지만, 시선은 자주 카운터 쪽을 향했다. 그 시선을 피하고 싶은데, 이상하게 등줄기가 자꾸 뜨거워졌다.
—
퇴근 시간이 가까워졌을 무렵, 정국은 카운터 앞에 다시 나타났다. 손에 브라우니가 든 작은 종이봉투를 들고 있었다.
“이거, 드세요.”
“손님이 드셔야죠.”
“원래 드리려고 산 거예요.”
거절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그는 먼저 말을 덧붙였다.
“그때 무대에서 먹었던 거 기억나요? 공연 끝나고, 뒷골목에서.
브라우니를 먹으면서, 그게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고 했었잖아요.”
나는 그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기억을, 그 장면을, 나보다 더 선명하게 붙잡고 있는 사람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그만하세요.”
내 목소리는 작았지만, 단호했다.
“그런 얘기… 이제 의미 없어요.”
정국은 눈을 가늘게 뜨며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천천히, 하지만 또렷하게 말했다.
“당신한테만 없죠. 나한텐 아직 그대로니까.”
그는 봉투를 카운터 위에 내려놓고, 아무 말 없이 나갔다.
문이 닫히고, 문종이 멀어지는 소리가 한참이나 귀에 남았다.
나는 봉투를 들여다보았다.
작고 단단한 브라우니 하나.
한 입 베어물면, 그 시절의 온도와 냄새, 그리고 그와 나의 웃음이 함께 밀려올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끝내 먹지 못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