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

12화 # 민들레

그날 이후 난 계속해서 이곳 병원에서 간호를 받았다. 그나마 이곳에서 지내야 시간이 30분정도 느리게 흐른다나

날이 갈 수록 몸은 점점 여위어갔다. 몸무게는 점점 줄어들고 몸에 힘도 잘 들어가지 않았다.

점점 죽음에 가까워지는 것이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거울을 볼 수가 없었다. 거울 속 내가 너무 싫어서


“ .. 몸무게가 또 줄었네요 “

” 옛날엔 별명이 짱구였는데 볼살 없는 얼굴은 저도 처음 봐요 “

” .. 신께선 낮에 잠깐 들르셨어요 “

” 아 잠 잘때 왔다갔나요? ”

“ 신께서 그리 지독히 아끼시는 인간은 그쪽이 처음이에요 ”

“ .. 그런가요 “

” 네? “

” 우린 이미 너무 서로를 사랑하고 있어서 그래요 “

” … “

” 그 속도가 물론 놀랄만큼 빨랐지만 “

” … “

” 그만큼 식는 속도도 빠르기를 바래요, 난 “


진심이 아니었다, 아니 너무 진심이었다. 내 머리가 원하고 있는 진심이었다. 나를 금방 잊고 다시 웃으며 살아가기를, 다시 누군가를 사랑하며 행복하기를

하지만 애속하게도 내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날 더 오래 기억해주기를, 나 말고 다른 사람에겐 사랑이란 감정을 느끼지 말기를

오로지 평생 나만을 사랑해주기를 바랬다.

이기적인 감정이란 것을 알아도 내 마음은 자꾸만 그의 사랑을 갈망했고 독점하기를 원했다.


그때,

드르륵,


” 여주~! 나 왔어 “

” 아까도 왔다면서 또 왔어요? “

”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사람이잖아. 그런 사람을 안 보고 있으면 얼마나 보고 싶어지는지 알아? “

” ㅎ.. 진짜 “

“ 저는 이만 가볼게요, 필요한 거 있으면 부르세요 ”

“ 네. 감사해요 ”

” 아 밥은 먹었어? “

” 방금 일어나서 좀 이따가 먹으려고요 “

“ .. 점점 갈 수록 더 말라가는 것 같네 “

“ 기분 탓이에요, 기분 탓 “

“ 요즘 기분도 울적해보이던데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

“ .. 난 진짜 괜찮아요. ㅎ ”


사실 괜찮지도 않았다. 매일 밤 먹은 것들이 올라와 잠을 이루지 못하도록 계속 방해했다. 이상하게 아무것도 소화가 되지 않았고 중간에서 탁 막히는 기분이었다.

어쩌면 점점 말라가는 이유가 이것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매일 밤 똑같은 꿈을 꾼다.

죽음이란 운명이 내게 닥쳐오는 꿈, 마지막 인사도 못한 채 그 사람을 떠나는 꿈이었다.

매일 꿔도 악몽 같고 슬프기만한 꿈이었다.


“ 이건 선물이야, 너 꽃 좋아했잖아 “

” 민들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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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엄청 바쁜데도 인간계에 직접 가서 사온거야~ 잘했지? “

” 예쁘다.. 진짜 “

” 이거 보고 조금이나마 괜찮아졌으면 좋겠어 “

” 이미 충분히 괜찮아졌어요. 진짜 고마워 “


노란색 민들레가 잔뜩 묶여있었다. 길거리에서 봤을 땐 예쁜 줄 몰랐는데 이렇게 보니 또 색달라 보였다.


” 근데 민들레는 꽃말이 뭘까요? “

” 아 그거 아까 들었는데.. “

"..?"

” 내 사랑을 그대에게 드려요 “

” … “

” 딱 듣자마자 마음에 와닿더라고 “

“ … ”

“ 내가 늘 하고 있는 거니까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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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생엔 너한테만 준다고 했잖아. “

” .. 그건 “

“ 속마음, 그거 내가 들을 수 있는 거 알지? ”

“ … ”

“ 내 후사가 없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랑 또 다시 혼인하진 않아 ”

“ … ”

“ 그러니까 이번 생엔 내 마음은 니가 다 가져 ”

“ .. 최연준씨 “


민들레가 갖고 있는 가장 대중적인 의미는 ‘일편단심’이었다. 최연준씨와 참 잘 어울리는 단어였다.

사실 아주 걱정했다. 난 후사가 없다면 언제 쫒겨나도 이상하지 않을 사람일지도 모르고 최연준씨에게도 큰 문제라는 것은 확실했으니까

당연히 난 다른 사람과 혼인을 하게 될 것이라 생각했고 나 또한 자연스럽게 당연히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렇게 말해주는 최연준씨 덕분에 잠시라도 안심이 되었다. 이 마음조차 이기적일지 몰라도 그냥 속 없이 좋았다.

이 사람이라면 진짜 평생을 나만 사랑해줄 수 있을 것 같아서

한 송이의 민들레처럼


“ 넌 그래도 되는 사람이야 ”

“ 어째서.. ”

“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인간이니까 ”

“ … ”

“ 나도 내가 이렇게 인간을 사랑하게 될 줄은 몰랐어 ”

“ … ”


그때,

드르륵,


“ 그러게, 나도 형이 그렇게 인간을 사랑하게 될 줄은 몰랐다 “

” 누구..? “

” 기억 못 하는거야? 그날 기억도 지웠냐? ”

“ 내가 좀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편이라 ”

“ ..? 아 ”


그때 봤을 땐 분명 여자였는데 오늘은 또 남자다. 이게 본 모습인가..? 근데 좀 잘생겼네..?


” 하하 내가 좀 잘생기긴 했지? “

” .. 나 이러면 서운해 진짜 ”

“ ㅇ..아니 그게 아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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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이름은 ’휴닝카이‘ 라고 해. 편하게 휴닝 이라고 불러 “

“ 아.. 네 ”

“ 그나저나 점점 더 쇠약해지고 있네, 기운도 몸도 ”

“ … ”

“ 그때 내가 준 가위로 잘라버렸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텐데 “

” 이게 진짜..! “

” 난 괜찮아요. 틀린 말도 아닌데요 “

” 하지만.. “

” 난 내 선택에 대한 후회는 없어요 “


이 말은 진심이었다. 끝까지 사랑하겠다고 한 선택에 대한 후회는 정말 없었다. 비록 앞으로의 걱정 뿐이었지


“ 그 꽃은 뭐야? 민들레? ”

“ 내가 준거다, 뭐 ”

“ 넌 참.. 생각보다 더 센스가 없냐 “

“ 뭐? ”

” 대체 이 놈 뭐가 좋아서 그래? 나 진짜 궁금해 “

“ 하하.. ”

“ 그래서 대체 여긴 왜 온거냐고 “

” 내가 또 좀 자비로워? 당신의 아가씨를 살릴 방법이 생각나서 왔지 “

” ㅈ.. 진짜요? “

” 그게 진짜야?! “


일말의 희망이었다. 마치 오늘 최연준씨가 내게 건넨 민들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