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

13화 # 운명

“ 그게 무슨 말이야? “

“ 육체를 바꾸면 된다고 ”

“ ..? 네? ”

“ 인간의 죽음은 육체의 죽음이야, 그 혼이 다시 여기로 와서 새로운 육체를 받아 내려가는 게 환생이고 ”

“ 아.. “

” 이 곳에서 태어난 존재의 죽음은 혼의 죽음이기도 해서 불가능하지만 넌 아니니까 “

” 그럼 대체 누구랑 육체를 바꿔요? “

” 그건 당연히.. “

"..?"

“ 너와 붉은 실로 이어진 존재겠지 “

” ..!! 그 말은.. “

” 그래, 저 형과 너의 육체를 바꾸는 거야 “

” 그게 무슨..! “

” 방법은 이거 하나야. 참고로 저 형과 육체를 바꾸게 되면 “

"..?"

” 바뀐 육체로 인해 저 형은 죽게되고 이 세계의 존재인 저 형은 완전한 소멸을 맞게 돼 “

“..!!”


정말 슬픈 운명이 아닐 수 없었다. 둘 중 하나는 무조건 죽는 그런 운명, 내가 살려면 내 연인을 죽어야 하는 운명이었다.


“ 육체를 바꾸는 방법은 저 형도 알고 있을거고 ”

“ .. 알고 있지 ”

“ 그래도 어떻게.. ”

“ 뭐 선택은 둘의 몪이야.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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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잠깐 자리 좀 비켜줘 ”

“ 신께서 마음이 뒤숭숭하시다니 친히 비켜드려야지, 얼른 결정하는 게 좋을거야. ”

“ … ”

“ 운명이라는 게 누군가를 기다려줄만큼 배려심 깊은 존재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잖아? “

“ … ”


그 말을 뒤로 휴닝카이씨는 다시 사라졌고 나와 최연준씨 사이엔 침묵만이 맴돌았다.

이 선택에 의해 나 아니면 저 사람은 죽는다. 저 사람이 죽게되면 정말 완전한 이별이다. 그러나 내가 죽으면 언젠간 다시 만날지 모르는거니까

결국,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 이대로 죽는 게 맞을 것 같아요 “

” 뭐? “

” 난 영원한 소멸은 아니니까요. 분명 다시 환생할 수 있을 거에..ㅇ ”

“ 환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얼마인 줄 알고 “

“ … ”

“ 니가 지금까지 봐온 인간들, 그저 길거리에서 스쳐지나간 인간들, 아니 이 세상 모든 인간들의 3프로야. ”

“ … ”

“ 아무리 너와 내가 실로 연결되어있다고 한들, 니가 환생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거라고 ”

“ 그럼요..? ”

“ 뭐? ”

” 그럼 최연준씨가 죽겠다고요? 날 살리고? ”

“ .. 가능하다잖아. 그럼 그래야..ㅈ ”

“ 진짜.. 신들은 왜 그렇게 이기적이에요? ”

“ … “

” 나랑 육체를 바꾸면 최연준씬 진짜 끝이에요 “

” … “

“ 그렇게 바뀐 몸으로 내가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

“ … “

” 죽는 것보다 못한 삶을 살 바엔 차라리 죽을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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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선 쉬어. 몸 상하겠다 ”

“ … ”


그 말을 뒤로 최연준씨는 병실을 나갔고 난 애써 나오려는 눈물을 참으며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참 이기적일 수 밖에 없었다. 분명 나를 위해 한 생각이었음에도 난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내 선택도 그에겐 이기적이라고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영생을 살지도 모를 그를 혼자 두는 것이니까

우리 운명이 더 슬픈 운명이라고 생각되는 날이었다.

그렇게 한달이 흘렀고 여전히 결정하지 못해 난감해하고 있었다.


똑똑,


” 네~ “


드르륵,


“ 결정은 했어? ”

“ .. 아니요 ”

“ 내가 신기한 거 하나 들고 왔는데 “

"..?"


스윽,


“ 시계..? ”

“ 시계 위에 적힌 날짜, 무슨 날인지 알겠어? ”


휴닝씨가 들고 온 시계는 금색 테두리의 옛날 시계였다. 시침과 초침이 일정하게 돌아가고 있었는데 뭔가 위태로워보였다.


” 10월.. 3일? 이거.. “


휴닝씨가 말한 날짜는 다름 아닌 내 생일이었다.


” 맞아. 니가 태어난 날, 즉 이 시곈 너의 시계야 “

” … “

” 니가 죽으면 이 시계는 멈추는 게 되는거야 “

” 이걸.. 왜 ”

“ 분침과 초침이 조금 이상하지 않아? “

” 글쎄요.. “

” 넌 모르겠지만 다른 시계들이랑 비교했을 때 살짝씩 밀리고 있어 “

” … “

” 너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 없다는 말이야 “

” .. 얼른 결정하라는 말이네요 “

” 비록 너와 신이 슬픈 운명이고 아픈 운명이지만.. “

” … “

” 그렇기에 운명이고 늦출 수도, 당길 수도 없는거야 “

” … “

” 정확히 이 시계는 예정된 시간에 딱 멈출테니까 ”

“ 지금이라도 나와 그 사람의 인연을 끊는 건.. ”

“ 내가 그때 깜빡하고 말 못해줬나 “

“ 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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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중에 후회하면 늦는다고. 뭐 지금 그 후회가 늦었다는 건 알겠네 “

“ … ”


차가웠다. 다정하고 웃음끼 가득하던 표정이 단숨에 쌀쌀하고 차갑게 바뀌었다. 순간 내 몸엔 한기가 돌았고 그 분위기에 압도되어 몸은 굳어버렸다.


” 이곳 상사화는 100년에 한 번씩 자라. 니가 그때 갖다버린 상사화가 마지막이었고 “

” … “

” 가엾은 나의 아가, 너의 선택을 책임져야지 “


그때,

드르륵,


“ 뭐야.. ”

“ 어? 이제 온거야? 비련의 남주인공? ”

“ .. 너 ”

“ 니가 정한 운명인데 왜 자꾸 내게 성질을 부릴까? ”

“ 닥쳐. “

“ .. 여주의 시계가 슬슬 밀리고 있어. 얼른 결정해 “

” … “


최연준씨는 바닥만 바라보며 아무말도 하지 않았고 휴닝카이씨는 어서 정하라고 재촉하며 혀만 끌끌 찼다.

결국,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 그냥.. 이대로 있을게요 ”

“ 너..!! ”

“ 그냥 죽기로 정한거야? ”

“ .. 네 ”

” 아니야.. 아직 안 정했어.. 안 정했다고!! ”

“ 운명이잖아요. 거스를 수 없는 거니까 ”

“ 뭐.. 좋아! 그럼 이 주문서는 태울게 ”


휴닝씨 손에 나타난 주문서는 한 번에 화르륵 타며 사라졌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바닥에 주저앉은 최연준씨에게 다가갔다.

꼬옥,

그리고 아무말 없이 그를 안았다.


“ 원래 우리가 정한대로 해요.. ”

“ 흐.. 너 없이 내가 어떻게 살아.. ”

“ .. 조금만, 정말 조금만 기다려줘요 “

“ … ”

“ 그땐 내가 먼저 찾아올게.. 응? 그러니까.. ”

“ … ”

“ 조금만.. 아주 잠깐만 기다려요 ”


스윽,


” 당신은 신이잖아. 내가 환생하면 가장 먼저 볼 사람이야 “

” 하지만.. “

” 바람으로, 눈으로, 비로.. 아니면 나비로 뭐가 되든 다시 찾아올게 “

” … “

” 많이 슬퍼하지 말고 자책하지도 말고.. “

” … “

” 무엇보다.. 나 잊지 말고 “

“ … ”

“ 겨울잠 한 번만 자고 일어나요, 우리 “

” … “

”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거야 “


그때,

쿵,


“..!!”

“ 뭐야.. 여주야 왜 그래? 어? “

” 시계가.. 이게.. 대체 “


운명이란 그랬다. 예측할 수 없었고 그렇다고 늦추거나 당길 수도 없었다.


” 흐윽.. 하.. “

” 간호사 불러올게..!! “

” 여주야.. 나 봐봐 응? “


순간적으로 숨이 탁 막혔고 아무리 숨을 쉬려 노력해봐도 쉬어지지 않았다.

정신이 아득해져오며 처음 느끼는 죽음에 나도 모르게 자꾸만 겁이 났다.


“ 최..연준씨 ”

“ 어.. 나, 나 여기있어.. “

“ 나..무서워요.. 이게 죽는 건가봐 “

“ 흐.. 여주야.. 안돼 조금만.. 정말 조금만 “

” 나.. 잊지 말고 “

” 제발.. 정신 좀 차려봐.. 여주야 “

” 진짜 조금만.. 기다려요 ”

“ 여주야.. 제발.. ”

“ 금방 올게 ”


툭,

드르륵,


“ 시계가..!! “

” 흐.. 여주야.. 안돼.. 안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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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멈췄구나 “


그렇게 난 최연준씨의 품 속에서 눈을 감았다. 내가 눈을 감음과 동시에 병실에 울리던 시계의 초침과 분침,시침 소리가 모두 멈췄다.

운명이란 정말 그랬다.

감히 거스를 수 없는 것이었다.

예측할 수 없는 것이었다.

늦추거나, 당길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의 시계는 완전히 멈추어버리고 말았다.

그게 나의 운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