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 오후 2시 55분.
여주는 오늘도 정해진 위치에 서 있었다.
프론트 데스크.
카운터 위엔 단정하게 정돈된 체크인 서류, 호텔 쿠폰, 그리고 객실 카드키 세트가 놓여 있었다.
하나하나 완벽하게 맞춰진 배열. 그 속에서 여주는 정확히 두 번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익숙한 이름 하나를 발견했다.
“최민호 님, 오늘 오후 3시 체크인 예정.”
흔한 이름이지만, 이 호텔에서 ‘그 이름’은 단 한 사람을 의미했다.
최민호.
그는 실제로는 최연준이었다.
그 이름을 처음 본 건 반년 전, 시스템 정리하다가 실수로 열어본 내부 정보창에서였다.
VIP 고객이라 우대받는 줄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연예인이었다.
그쪽 세계에 관심 없던 여주도 아는, 꽤 유명한 사람.
요란하지 않게 활동하면서도 얼굴은 많이 알려진 아이돌 출신.
지금은 예능 프로그램에 가끔 나오고, 광고도 찍고, 팬도 많은 사람.
하지만 이 호텔에서는…
그는 그런 걸 다 벗어놓은 채 나타났다.
모자 눌러쓰고, 말수 적고, 예의 바른.
매번 조용히 와서 조용히 머물다 갔다.
단 한 번도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고, 불편하다는 말도 안 했다.
딱 필요한 말만, 필요한 만큼만 하는 사람.
그리고 그가 묵는 방은 항상 1205호였다.
요청사항에도 그 문구만 적혀 있었다.
“가능하면 같은 방으로 부탁드립니다.”
그런 그가 오늘도, 예정된 시간에 맞춰 호텔 문을 열고 들어왔다.
검은 모자, 후디, 운동화. 손에 들린 건 커피 한 잔과 핸드폰.
여주는 손에 들고 있던 펜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었다.
둘의 시선이 정확히 마주쳤다.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그는 조용히 웃었다.
반가움도, 피곤함도 느껴지지 않는 아주 담담한 얼굴.
여주는 서류를 확인하며 말했다.
“체크인 도와드릴게요. 객실은 1205호입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하시네요.”
“같은 시간, 같은 방, 같은 요청사항. 외우기 쉽죠.”
“그렇죠.” 연준은 웃었다. “그래서 이 호텔 좋아해요. 달라지는 게 없어서.”
여주는 카드키를 건네며 말했다.
“체크아웃은 이틀 뒤 오전 11시입니다. 불편하신 점 있으시면 언제든…”
“말 걸어도 돼요?”
갑자기 나온 말이었다.
여주는 멈칫했다.
“…네?”
“아니, 그냥. 여기 오면 늘 당신이 있잖아요.”
“…”
“근데, 항상 같은 말만 하니까. 가끔은 다른 말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여주는 마음속으로 심호흡을 했다.
직업상, 고객과 거리 두는 건 기본 중 기본이다.
특히나 상대가 ‘그 사람’이라면 더더욱.
“저희, 규정상… 너무 친근하게 응대하면 안 돼서요.”
“그렇겠죠.”
연준은 조용히 웃었다.
“근데 난… 고객으로서 말 거는 거니까.”
그는 손에 든 커피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다음엔 이거 하나 더 사올게요. 혹시 커피 좋아하세요?”
여주는 잠시 말이 막혔다.
“좋아하지만… 커피보다 고객과 일정한 거리 두는 걸 더 좋아합니다.”
“알겠습니다.”
연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오늘도 딱 그만큼의 거리, 유지할게요.”
그는 카드키를 받아들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돌아섰다.
여주는 그가 멀어지는 걸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딱 그만큼의 거리.
애초에 그게 시작이었고, 끝이기도 해야 하니까.
그날 저녁, 야간 근무에 들어간 여주는 잠깐 틈을 내어 다시 시스템을 열었다.
그리고 VIP 고객 리스트에서 그의 이름을 클릭했다.
이제는 익숙한 페이지.
1205호. 정기 방문 고객. 가명 사용. 특별 요청사항.
그 밑, 관리자 메모가 눈에 들어왔다.
며칠 전 새로 업데이트된 내용이었다.
[주의사항: 본 고객은 프라이버시 보호 요청 강함. 응대 시 정중한 태도 유지.]
[예외: 직원 ‘여주’는 고객 요청으로 응대 담당 유지.]
여주는 화면을 가만히 바라봤다.
누군가의 설정, 누군가의 의도.
그리고 그 안에 자신이 포함됐다는 사실.
커피보다, 훨씬 더 뜨거운 무언가가 목구멍을 훑고 내려갔다.
그건 경고 같기도 하고, 신호 같기도 했다.
“다음엔 이거 하나 더 사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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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화의 계속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