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프론트 데스크에 익숙한 리듬이 흘렀다.
여주는 습관처럼 손끝으로 카드키를 돌리며 예약 명단을 확인하고 있었다.
"객실 1205 – 최민호 – 체크아웃 예정: 내일 오전 11시"
늘 그랬다.
이틀 머무르고 나가고, 몇 주 지나서 다시 들어오고.
마치 정해진 패턴처럼.
여주는 무표정하게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오늘도 그냥 지나가겠지.’
하지만 그런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오후 1시 47분.
엘리베이터에서 연준이 내려왔다.
편안한 민트색 셔츠, 검은 슬랙스.
어디론가 갈 준비가 된 사람처럼,
단정했고, 정중했고, 평소보다 조금 더 ‘멀어져 있는’ 얼굴이었다.
그는 프론트로 조용히 걸어왔다.
여주는 반사적으로 몸을 정돈했다.
“무슨 일 있으세요?”
“체크아웃 하려고요.”
“…내일 아니셨어요?”
“급한 스케줄이 생겨서요.”
여주는 말을 잇지 못하고 카드키를 확인했다.
그의 손가락은 여전히 말랐고, 손등에 붉은 펜 자국이 흐릿하게 남아 있었다.
“체크아웃 처리 도와드릴게요.”
짧고 정제된 말. 늘 해오던 문장.
근데 오늘은 입에서 나오는 게 이상하게 느껴졌다.
연준은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좀 놀라셨죠?”
“…네?”
“내일 나간다고 했는데, 갑자기 오늘이라서.”
“아니요. 고객 사정은… 존중합니다.”
연준은 짧게 웃었다.
그 웃음이, 이상하게 오늘은 기분 나쁘게 다정했다.
“그럼… 다음에 또 뵙죠.”
그는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이번엔 커피 못 사드렸네요.”
“…저 그 얘기 안 했는데요.”
“하지만 기다렸잖아요.”
여주는 순간 아무 말도 못 했다.
마치, 마음속 어딘가를 들킨 기분이었다.
연준은 그렇게 말을 남기고
검은 캐리어를 끌며 로비를 걸어 나갔다.
그가 사라진 뒤에도 여주는 한참 동안 자리에 앉지 못했다.
모든 게 평소처럼 흘러가는데,
이상하게도 무언가 끝나버린 느낌이었다.
그는 오늘, 그냥 체크아웃만 한 건데.
왜 이렇게 허전하지?
“미쳤나…ㅎ”
작게 중얼이며 여주는 컵을 다시 들었다.
커피는 이미 미지근해져 있었다.
그날 밤, 여주는 퇴근하면서 자동적으로 핸드폰을 들었다.
그리고 결국, 그의 이름을 검색창에 쳤다.
[최연준 스케줄]
정말 바빴다.
촬영, 인터뷰, 광고, 본업, 본업, 또 본업.
쉴 틈 없이 돌아가는 스케줄 속에,
이 호텔은 그가 잠깐 멈추는 유일한 공간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멈춤을, 여주가 만들어주고 있었던 걸지도.
그 순간, 문자 하나가 도착했다.
[발신인: 모르는 번호]
"오늘 체크아웃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원래는 커피 주고 가려고 했는데, 그냥 남기고 가요.
연준"
그 아래에 위치 공유가 하나 떠 있었다.
🗺️ 위치: [호텔 바로 앞 편의점]
여주는 그 문자를 멍하니 보다,
무의식중에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아직 안 갔네…”
다음 화에 계속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