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후, 수능날이었다. 벌써 도로는 꽉 찼고, 교통혼잡이 예상된다. 뭐, 항상 그랬으니 놀랄 것도 없다.
“어디서 수능 쳐? 호옥시 나랑 겹치는 사람 있나~”
“순영이 형이랑 난 같애. 요 앞에 서울고.”
“아… 꼼짝없이 혼자 치러 가야 하나…”
혼자는 익숙했는데, 어느새 이질감이 느껴진다. 내가 맞는지 괴리감이 들 정도다. 혼자 있는 게 더 어색하고 무섭다. 내 옆에 이렇게 소중한 사람이 13명이나 있었고, 그들에게도 나는 소중했으니.
“장여주, 너는 어디서 치는데?”
“중앙고…”
민규 오빠의 말에 힘없이 고등학교 이름을 뱉는다. 민규 오빠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설레는 말을 뱉는다.
“나도 거기야. 걱정하지 마”
“아싸! 혼자 안 가도 된다!”
“그렇게 좋아?”
안 좋을리가. 혼자는 싫으니까 민규 오빠가 같이 가서 너무 좋은데. 아, 잠만. 왜 민규 오빠라서 좋은 거지. 순영이 오빠나 승관이 오빠었다면 이렇게까진 아니었을 건데.
“오늘은… 못 데려다 줄 거 같아.
정한이나 승철이나 다…미안해, 여주야”
슈아 오빠의 말에 약간 속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오빠는 슈아 오빠였으니까.
“아냐, 괜찮아. 민규랑 가면 되지”
하지만 딱 그 정도였다.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과 잠깐 떨어져있을 때 드는 서운함. 하지만 딱히 큰 감정은 아니다. 근데 이와중에 또 오빠 뺐네.
“…”
그리고 민규 오빠는 왜 아무 말도 안 하고 침묵을 지키는 거지.
“음… 버스 타고 가야하나? 택시 타도 되긴 한데”
“택시 타면… 교통 혼잡 장난 아닐걸?”
민규 오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다들 버스만 탔다면 교통 혼잡은 지금보다 덜할 텐데.
“무슨 버스 타?”
“142번~”
“알아봤어?”
“나도 수능은 쳐야해서. 하루빨리 면허를 따던가 해야지.”
속으로 조용히 동의한다. 면허 없으니까 불편한 게 한 두 개가 아니더라. 민규 오빠는 손목의 비싸보이는 시계를 한 번 보더니 말한다.
“6분 남았다. 여유롭게 하는 게 낫지?”
“응. 내려가자, 오빠.”
내려가려는데 승철이 형이 우리를 잡고 도시락을 하나씩 들려주었다.
“빼먹으면 곤란하다~”
“고마워, 승철이 오빠. 나 잘 치고 올게!”
승철이 형은 마음이의 말에 행복해보인다. 그건 나를 포함한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어느새 너의 행복이 우리의 행복이 되었으니.
“가자, 민규 오빠!”
“응”
그 말을 끝으로 교복을 입은 그녀의 손을 조심스레 잡고 밖으로 나왔다. 마음이는 뭐가 그리 좋은지 날 보고 웃었다. 웃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미소를 띄웠다. 빠져도 제대로 빠진 모양이었다. 정한이 형의 말에 따르면 마음이는 다정한 사람이 좋다고 했는데. 하라면 할 수는 있지만 너무 쑥스럽단 말이지. 원래 성격이 그게 아니니까.
“민규야! 지금 무슨 생각해?”
어느새 민규 오빠보다 민규가 익숙해진 그녀가 날 불렀다. 그녀가 어떤 호칭으로 불러도 날 불러준다는 사실이 좋았다.
“아무 생각도”
“누가 봐도 무슨 생각하고 있는데. 무슨 고민 있어요?”
푸핫, 내가 반존대에 설렐 줄이야. 반존대에 설렌 게 아니라, 마음이라서 설렌 거겠지.
“아니야, 그런 거”
고민의 이유가 너인데, 너에게 어떤 일을 해줘야 네가 좋아할까, 하는 건데 어떻게 너한테 말할 수 있을까.
“음… 알았어. 대신 진짜 고민 있으면 말하기?”
그녀는 새끼 손가락을 보인다. 난 웃음을 감출 수도, 그럴 생각도 없다. 난 그녀의 작은 손가락에 내 손가락을 건다. 손 크기 차이가 큰지 내 손가락이 그녀의 손가락보다 2배는 커보인다.
“대신 마음이도 말해주기.”
속으로 마음이라고 생각하니 아무 생각 없이 마음이라고 해버렸다. 하지만 마음이는 기분 나빠하는 기색이 없다. 다행이다. 스스로를 받아들일 준비가 끝난 것 같아서.
“알았어. 버스 온다. 오빠, 타자!”
오히려 웃어보이네. 웃는 게 역시 더 예쁜 것 같아.
“응, 탈게”
마음이가 먼저 올라타고 난 그 뒤를 따랐다.
[삑- 잔액이 부족합니다]
이와중에 또 잔액이 부족하단다. 아무렇지 않게 뒤에서 말한다.
“학생 한 명, 성인 한 명이요”
마음이는 이제 19살을 앞두고 있는 18살 학생이고, 난 20살, 성인이니 당연한 주문이었다.
“누가 학생이야?”
“저요, 18살이에요”
“흐음… 무슨 고등학교 다니는데?”
“신…도림고.”
검정고시 친 학교에 대한 애착이 심한 모양이다. 다니지도 않았는데 말하는 걸 보면.
“아닌 거 같은데.”
이렇게 시비를 거는 운전사도 처음이다. 대충 넘어가던데. 일반 돈을 내라고 하면 낼 수 있다. 지금 여기서 문제는 돈이 아니다. 어쩔 줄 몰라하는 마음이의 모습이 보기 싫을 뿐이다. 속으로 욕을 뱉었다.
‘하 씨… 오늘 수능인데…’
이게 욕이라고 할 수 있다면 말이지.
“저 진짜 학생 맞는데…”
마음 같아선 조금 더 따지고 싶지만 공부한 것도 다 까먹을까 들어가자고 말한다.
“아, 오늘 수능이구나.”
“네…”
“재수생 아니고?”
웬만하면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이렇게까지 나오니 도자히 참을 수가 없었다. 문자대로 화가 머리 끝까지 올랐다.
“저기요.”
웃고 있는 내 얼굴에 미소가 사라진 것을 느낀다. 내 정색, 생각보다 무섭던데. 심지어 화가 났을 땐 훨씬 더 무섭고.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재수생 아니냐고. 그 말이 그렇게 심한 말이야?
얘는 화 안 내고 가만히 있는데 왜 네가 나서?
남친이라도 돼?”
원래 이런 상황에서는 아니라고 하는 게 맞았다. 연예인이고, 공인으로서 조심해야 하는 거니까. 그게 맞았다. 그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근데 그거랑 별개로 나한테 소중한 사람을 지켜야할 것 같았다. 지금 내가 여기서 그러지 않으면 평생을 후회할 거 같아서.
“어, 남친인데? 근데 뭘 어쩌죠.
안 그래도 오늘 수능이라 예민한데
굳이 시비를 털어야겠어요?”
화를 이렇게 많이 내는 건 데뷔 이래 처음이다. 조금만 화를 내도 거짓이 섞이고 부풀려져 욕 먹기 일쑤였으니까.
“저도 화 낼 줄 몰라서 가만히 있는 게 아니에요.”
마음이도 나만큼이나 무서웠다. 이 곳에 들어오고 나서 웃음 말고 지은 표정이라고는 오디션 때 그 날 뿐이었다. 그래서 정색은 처음 보는데…
“ㅈ,죄송합니다… 그냥 들어가세요”
이렇게 빨리 꼬리를 내릴 거였으면서 왜 시비를 걸었던 거지. 무료로 태워주겠다는 말에도 그냥 학생 한 명, 성인 한 명의 값을 내고 버스 안으로 들어왔다. 그나저나 마음이는 어떠려나. 사과가 나를 향한 게 아니라 마음이를 향한 것이었기에 그것을 받는 것도 마음이었다. 그녀는 나를 향해 웃으며 입모양으로 말한다.
‘나 괜찮아’
다행의 한숨을 내뱉는다. 내가 상처 받는 것보다 그녀가 아파하는 게 싫었다. 내가 아파서 그녀가 아프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좋겠다. 평생을 옆에서 아프지 않게 지켜주고 싶으니까.
“오빠, 나 걱정했어?”
“됐거든요~”
“걱정했는지 물었거든요~
보통 이 질문에 대답은 됐거든~ 이 아닌데~”
그저 싱긋 웃어보인다. 속의 생각은 응 나 너 많이 걱정했어, 이지만. 이 마음을 꺼내기는 조금 겁이 난다. 그녀가 날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
[한동안 글 못 올려서 죄스러운 마음에 분량 폭탄 떨구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