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
도용시 사과문 3000자
다음날. 학연 선배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는 나는 강의실에 아주 조용히 들어가 구석에 앉았다.
"아직 안 오셨구나. 휴..."
쪽팔린 우리 오빠들 때문에 내 수명이 갈기갈기 찢겨 나가는 기분이다. 제발 저 또라이 기질을 밖에서까지 내보이지 말란 말이야...
"아, 근데 수정이 이 년은 언제 오는 거야..."
친구는 도대체 어디로 갔는지, 곧 강의가 시작할 텐데도 불구하고 보이지 않았다.
[수정]
수정
야야야
나 오늘 못 감
뭔 개소리야
수정
가족끼리 급하게 약속 잡혀서^^
옘병...
오늘은 강의를 같이 듣는 애가 얘뿐인데, 하필 안 오고 난리야...
어쩔 수 없이 오늘 학식은 혼자 먹게 생겼다. 그나저나 교수님은 언제 오시냐. 이왕이면 안 오길 바람...^^
드르륵
뭐지. 분명 다른 자리도 많은데, 내 옆에 굳이 앉으려는 이 사람은 도대체 왜...

"어젠 잘 들어갔어요?"
오 마이 갓 뎀

"아, 네. 선배님은요?"
애국가라도 불러야 되나 싶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애국가 가사마저도 떠오르지 않았다.
"잘 들어갔죠. 그런데 오빠가 많으신가 봐요?"
"네... 부끄러운 오빠들이라ㅎ"
"에이~ 다 잘생기고 인기 엄청 많아 보이던데요? 그리고 여동생을 정말 챙기는 것 같구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네ㅠㅠ 그쪽은 혹시 천사?
"아, 그리고 이거."
"...?"
"음료수를 뽑았는데, 2개가 나오지 뭐예요. 여주씨 주라고 2개 나온 거 같아서."
"헐... 감사해요..."

천사가 맞잖아
말도 얼마나 이쁘게 하는지. 집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학연 선배 덕분에 다 해소하는 것만 같다.
때마침 교수님이 들어오셨을까. 강의를 듣는 내내 집중을 하지 못했다는 건 비밀이다.
"다음 강의도 있어요?"
"아뇨. 학식만 먹고 가려고요."
"그럼 같이 먹을래요?"
"네에?"

"강요하는 건 아니에요."
"아, 저야 너무 좋죠!"
"그 정도까지예요?"
당장 가자면서 짐을 후다닥 챙기는 날 보고는 예쁘게도 웃는다. 이 선배... 웃는 거 진짜 세상에서 제일 이쁜 것 같아...
"가요...!"
"그래요ㅋㅋ"
.
.
.
.
떨리는 마음으로 선배와 마주 보고 앉아서 학식을 먹고 있었을까. 이상하게 모든 학생들의 시선이 우리 쪽으로 향해 있는 거 같다.
"저 혹시 얼굴에 뭐 묻었나요."
"응? 아니?"
"근데 왜 모두 이쪽을 쳐다보는 기분이죠..."
"어... 그러게?"
안 그래도 먹다 체할 거 같은데,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에 더 죽을 맛인 것 같다.
"그런데 선배."
"응?"
"말 놓으셨네요?"
"아...!"
편해지면 놓는다고 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내가 편해졌는지 자연스레 말을 놓은 선배다.
"신기하다."
"뭐가요?"
"이렇게 빨리 누군가와 말을 놓아 본 적이 없거든."
"너라서 그런 건가."
뭐야. 이 선배... 저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네. 내 심장은 지금 죽어나가는데...^^
꾸역꾸역 밥을 먹었을까. 선배는 과제하러 모일 때, 그때 보자며 다음 수업을 준비하러 가야 된다고 했다.
"수업 파이팅 해요!"
두 주먹을 꽉 지고 힘내라고 했을까,

"고마워."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뚝딱 거리는 날 보고서는 같이 두 주먹을 꽉 지어 주신다.

두고 보세요. 조만간 그대와 결혼하러 달려갈 거니까.
.
.
.
.
[김태바리]
김태바리
집 오는 길에 과자 좀
나 이제 기사님이 데려다주잖아
멍청아
김태바리
아, 사다 줘!!!
사용인 시켜 미친넘아
김태바리
미안하잖아^-^

"진짜 죽일까."
.
.
.
.
말을 저렇게 해도 대학로 근처 편의점에 들러 과자를 사고 있었을까. 왜인지 익숙한 실루엣이 나를 지나쳐 갔다.
난 계산 후 그 사람을 힐끗 쳐다 봤다가 밖으로 나왔을까. 모자를 푹 눌러 쓴 남자도 곧이어 나오더니 엄청나게 울리는 휴대폰을 주머니 속에 찔러 넣는다.
"최연준!! 거기 안 서!?"
저 멀리서 누군가 내 근처에 있는 그 남자를 가리키며 소리를 지른다.
잠깐만. 최연준?
"아씨..."
"최연... 준?"

"...김여주?"
네가... 왜 거기서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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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1 보신 분들은 기억하실까요. 연준이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