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컷, 오케이! 수고했어요, 마음 양”
고작 나 하나 때문에 몇 백 명의 사람들에게 더 폐를 끼치지 않아도 되어서 조금은 기분이 나아졌다.
“아니에요… 저 때문에 진짜 죄송합니다”

“연기 한 번도 배워본 적 없죠”
“네… 그래서인지 오늘 NG도 많이 내고…”
“아니, 꾸짖으려는 게 아니라
오디션, 왜 마음 양 뽑았는지 알려주고 싶어서요”
왜 굳이 나여야했는지, 피해만 끼치는데 뭐가 좋았는지.
“뭔지 여쭤보고 싶었는데…”

“물론 연기력이 그렇게 뛰어난 게 아니었어요.”
“하지만… 열정이 있었고, 잠재력도 있었죠.
그리고, 노력한 게 보였어요.
연기라곤 한 번도 배워보지 않았다는
방 PD님의 말에 사실 기대, 거의 없었는데
생각보다 되게 잘하시더라고요”
어차피 신인을 위해 만들어진 배역. 연기 실력보다는 열정과 초심, 노력하는 누군가에게 주고 싶으셨던 거겠지.
“처음인데다 사흘밖에 안 됐는데도
한 달은 연습한 것 같았고,
게다가 너무 하고 싶어하는 눈이었어요.
그런 눈이, 쉽게 잊힐리가 없죠”
“감사합니다. 정말… 정말 감사해요”

“아, 제작진한테도 미안해하는 것 같던데,
그것도 걱정 마요. 다들 직감했었어”
“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장마음. 생일 축하합니다~”
세븐틴만큼이나 감동적인 생일축하노래였다. 심지어 주연 배우이신 박서준 선배님은 케이크까지 들고 계셨다.
“그, 이게…”
“생일 축하해요, 마음 양”

생일 축하해주는 이가 세븐틴만 있어도 충분할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이리 많은 사람이 축하해주니 몸 둘 바를 몰랐다.
내가 태어난 것을 축하해주는 사람이 없었는데. 그들은 큰 뜻이 없었겠지만 내게는 아주 큰 감동이었다.
“마음이 눈물이 너무 많아. 이리 와”

“언니…”
“다음에 볼 땐, 우리 울지 않기로 해요”
눈물은 여전히 흐르고 있어 처연하고 가련한 여자주인공처럼 보였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그 장면 하나하나가 너무 소중했다.
“뭐야, 지원이한테 언니라고 부르는 거에요?”

“지원이 언니가 그러라고 해서요, 하윤이 언니.”
“언니라는 호칭은 안 이상한데,
오빠는 좀 이상하겠죠?”

“어차피 극중 친오빠인데, 오빠라고 불러도 되죠?”
“그럼!”
“ㅎ,하윤이랑 나랑 동갑인데…”
“아, 재홍이 오빠라고 부를게요!”

“원래 미성년자는 10시 되면 퇴근인데, 미안해…”
“제가 못해서 그런거잖아요. 괜찮습니다.
아, 그럼 먼저 가봐도 될까요?”
그리고 집에 돌아갈 수 있도록 석우 오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응, 마음아”

“오빠 잤어? 목소리가 잠겨있어.”
“잠깐 졸았어. 금방 갈게. 잠시만 기다리고 있어.”
“나 혼자 갈게. 오빠 더 자”
“나 대표님한테 혼나”

“내가 부탁했다고 할게.
매니저가 나 기다리는 게 처음이라 적응이 안 돼.”
“하… 그럼 오늘만이야?
난 널 기다리는 게 직업이야. 알겠지?”
“그럼 내일 보자, 마음아”

“응, 쉬어”
택시 타고 가면 되겠지만, 택시가 오는 큰 대로나 택시 승강장까지는 나가야했다.
거기까지 가는 데 우산을 빌려줄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이미 촬영장을 나온 상태고, 제일 가까운 편의점도 가까운 편이 아니었다.
“…그냥 뛰어가야겠다.”

“…뭐지?”

“오빠!”
갑자기 안겨온 마음이 때문에 조금 당황했지만 곧 우산을 들지 않은 왼팔로 그녀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마음아…”

“김석우 씨한테 들었어. 왜 오지 말라고 했어…
걱정돼서 왔어. 괜찮아?”
“미안해서 그랬지. 난 완전 괜찮으니까”
이때까지 기댈 곳 없었던 그녀에게 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주고 싶었다. 인간 대 인간이 아니라 남자 대 여자로.
가만히 작은 마음이를 바라보았다. 밤하늘의 달빛에 반짝이는 그녀의 눈동자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부담스럽지도 않은지 눈을 절대 피하지 않았다.
“…일단 우산 좀 들어볼래?”

“응? 아, 응”
“오, 센스”
“비 맞았잖아. 안 추웠어?”

“추운 감이 좀 있긴 했는데…”
“너 추위 엄청 타는데다가
감기도 거의 달고 살아서 몸을 따뜻하게 해줘야 돼.”
“추우면 가디건 안에 팔 넣어도 돼.”

“엄청 크지 않을까?”
키 차이도 많이 나는데다 체격 차이도 많이 나는 편이라 더욱 그런 것 같았다.
그녀는 제 손을 지나서 남은 소매가 신기했는지 살짝 퍼덕여보였다. 큰 옷에 푹 묻혀 있어서 꼭 아빠 옷을 꺼내 입은 아이 같았다.
“오빠 옷 진짜 크다…”
“덕분에 우리 마음이는 더 쪼그매 보이네요, 꼬맹아"

“나 꼬맹이 아니거든요…”
“나보다 작으시잖아요?”
“아니… 그걸 오빠랑 비교하면 안 되지.
남녀 평균 키가 다른데.”
피식 웃은 뒤에 그녀의 손에 들려있던 우산을 부드럽게 다시 쥐었다.
그러는 순간, 마음이와 내 손이 살짝 스쳤다. 그러자 그저 행복한 아이의 얼굴을 유지하고 있던 마음이의 얼굴이 화르륵 불타올랐다.
“뭐야, 마음아. 너 얼굴 엄청 빨개졌어.”

괜한 희망고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연애는 단순 유희가 아닌 자신이 성장하는 발판이 되거나, 혹은 평생 함께할 누군가를 찾아다니는 일이었으니까.
“아무것도 아니야…”
“…응, 빨리 집에 가자”
그리 멀리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동안 좁은 우산 때문에 어깨에 비를 맞을 그녀가 걱정됐다.
나도 모르는 새에 어떠한 감정도 없이, 어떤 사심도 없이 그녀의 어깨를 잡아 안쪽, 그러니까 내쪽으로 끌어당겼다.
솔직히 말하면 나조차도 놀랐다. 좋아하는 감정과 별개로 그녀가 비 맞는 게 싫다는 사실로 보아 이성으로 보기 이전 그저 사람 장마음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 같아서.
마음이의 얼굴을 역시나 붉어졌다. 그녀가 연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 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녀는 이제 막 19살이 된 소녀였다.
연애 감정과 별개로 그저 자신에게 잘해주거나 다정하게 해주는 행동 하나하나에 설레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감정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그대로 얼굴에 다 들어났고.
“우산이… 하나였어?”
“혹시 불편해, 마음아?”

“아, 아니. 그런 건 아닌데… 기분이 좀 몽글몽글하다”
“몽글몽글하다는 말은, 설렜다는 말인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