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3_13명의 가족과 함께인 고아, 장마음입니다

#49_그녀에게 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주고 싶었다

“컷, 오케이! 수고했어요, 마음 양”



감독님의 그 말 하나가 긴 대장정의 막을 내려주는 것 같아 안도의 한숨이 터져나왔다.


고작 나 하나 때문에 몇 백 명의 사람들에게 더 폐를 끼치지 않아도 되어서 조금은 기분이 나아졌다.




“아니에요… 저 때문에 진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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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열 감독님은 여전히 얼굴에 웃음을 잃지 않으며 내게 다가왔다.




“연기 한 번도 배워본 적 없죠”




“네… 그래서인지 오늘 NG도 많이 내고…”



“아니, 꾸짖으려는 게 아니라
오디션, 왜 마음 양 뽑았는지 알려주고 싶어서요”




궁금했던 일이었다. 나 말고도 대단한 배우님들도 많이 계셨고, 굳이 가수 출신 배우가 아니더래도 시청률 나이대를 낮출 수 있는 사람도 많았다.


왜 굳이 나여야했는지, 피해만 끼치는데 뭐가 좋았는지.




“뭔지 여쭤보고 싶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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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연기력이 그렇게 뛰어난 게 아니었어요.”




예상했던 일이었다. 아무리 연습해도 사흘은 처음 해보는 이에게 부족한 시간이었고, 나조차도 그저 참가에 의의를 뒀으니까.




“하지만… 열정이 있었고, 잠재력도 있었죠.
그리고, 노력한 게 보였어요.
연기라곤 한 번도 배워보지 않았다는
방 PD님의 말에 사실 기대, 거의 없었는데
생각보다 되게 잘하시더라고요”




무슨 말씀을 하고 싶어하시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어차피 신인을 위해 만들어진 배역. 연기 실력보다는 열정과 초심, 노력하는 누군가에게 주고 싶으셨던 거겠지.




“처음인데다 사흘밖에 안 됐는데도
한 달은 연습한 것 같았고,
게다가 너무 하고 싶어하는 눈이었어요.
그런 눈이, 쉽게 잊힐리가 없죠”




게다가 연기까지 그리 못하는 편이 아니었으니, 감독님으로서는 괜찮은 사람이라 생각하셨던 모양이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정말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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왈칵 눈물이 새어나왔다. 연기 실력이 바닥이라 뽑아주신 것만으로도 죄스러웠는데, 기준이 그게 아니었다는 말에 자책이 사라졌다. 그것이 내겐 너무 감사한 일이었다.





“아, 제작진한테도 미안해하는 것 같던데,
그것도 걱정 마요. 다들 직감했었어”




“네…”



우는 와중 겨우 대답했고, 감독님은 후후하고 웃으며 그런 나를 지켜보았다. 아니, 무언가 신호를 보내는 것 같긴 하던데.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장마음. 생일 축하합니다~”



익숙한 노랫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배우분들 뿐만 아니라 제작진 분들까지 한 마음으로 노래를 부르고 계셨다.


세븐틴만큼이나 감동적인 생일축하노래였다. 심지어 주연 배우이신 박서준 선배님은 케이크까지 들고 계셨다.




“그, 이게…”



“생일 축하해요, 마음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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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냥하기 그지 없는 송하윤 선배님의 말에 다시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생일 축하해주는 이가 세븐틴만 있어도 충분할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이리 많은 사람이 축하해주니 몸 둘 바를 몰랐다.


내가 태어난 것을 축하해주는 사람이 없었는데. 그들은 큰 뜻이 없었겠지만 내게는 아주 큰 감동이었다.




“마음이 눈물이 너무 많아. 이리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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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지원이 언니가 팔을 벌리자 망설임없이 그녀에게 안겨들었고, 언니는 천천히 다독여주었다.




“다음에 볼 땐, 우리 울지 않기로 해요”




만화 속에서나 볼 법한 송하윤 선배님의 말에 눈꼬리까지 웃었다.

눈물은 여전히 흐르고 있어 처연하고 가련한 여자주인공처럼 보였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그 장면 하나하나가 너무 소중했다.




“뭐야, 지원이한테 언니라고 부르는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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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하윤 선배님이 밉지 않게 눈을 흘기며 물었다. 나는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지원이 언니가 그러라고 해서요, 하윤이 언니.”



송하윤 선배님은 1886년생이라 13살이나 차이 나지만 별 상관 없었다.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한대다 언니라는 호칭이 이상한 건 아니니까.




“언니라는 호칭은 안 이상한데,
오빠는 좀 이상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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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준 선배님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물으셨고, 나는 살짝 놀랬다. 세븐틴만큼이나 호칭에 집착하시는 분들이 있다니.




“어차피 극중 친오빠인데, 오빠라고 불러도 되죠?”



“그럼!”



왜인지 기분이 엄청나게 좋아보이는 터라 굳이 더는 말하지 않고 그의 모습을 빤히 지켜보았다.



“ㅎ,하윤이랑 나랑 동갑인데…”



안재홍 선배님의 말에 놀라 뒤를 돌아보니 얼굴이 터질 듯 붉어져있어 깜짝 놀랐다. 피시식 웃으며 말했다.



“아, 재홍이 오빠라고 부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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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서야 상황이 일단락되었고, 아주 늦은 시간이라 서준이 오빠가 급히 내보내려고 했다.



“원래 미성년자는 10시 되면 퇴근인데, 미안해…”



“제가 못해서 그런거잖아요. 괜찮습니다.
아, 그럼 먼저 가봐도 될까요?”


내 말에 그러라는 말이 쏟아졌고, 감사하다는 인사로 촬영장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집에 돌아갈 수 있도록 석우 오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응, 마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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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잤어? 목소리가 잠겨있어.”



“잠깐 졸았어. 금방 갈게. 잠시만 기다리고 있어.”



끝까지 민폐인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나 혼자 갈게. 오빠 더 자”



“나 대표님한테 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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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여자인데다 키도 작고 어려서 PD님이 워낙 애지중지하고 귀여워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내가 부탁했다고 할게.
매니저가 나 기다리는 게 처음이라 적응이 안 돼.”



“하… 그럼 오늘만이야?
난 널 기다리는 게 직업이야. 알겠지?”



그의 신신당부에 알겠다고 대답했다. 사실 나 혼자 내버려두는 게 더 마음이 쓰일 지도 모르겠으나, 완전 애도 아니고 이제 곧 19살 될건데, 너무 감싸돌 필요도 없었다.



“그럼 내일 보자, 마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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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쉬어”



전화를 끊고 나서 보니 이미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것도 억세같이 강하게.


택시 타고 가면 되겠지만, 택시가 오는 큰 대로나 택시 승강장까지는 나가야했다.

거기까지 가는 데 우산을 빌려줄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이미 촬영장을 나온 상태고, 제일 가까운 편의점도 가까운 편이 아니었다.



“…그냥 뛰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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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디의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벗겨지지 않도록 리본까지 꽉 묶었다. 고달픈 인생사, 비는 참 많이 맞았고,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렇게 가능한 한 빨리 달리는데, 갑자기 비가 멎었다.




“…뭐지?”




뒤에서 따뜻한 사람의 인기척이 느껴져 고개를 돌려보니 지수 오빠가 가장 사랑스러운 무언가를 보듯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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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왜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녀가 지쳤기 때문일까, 아니면 강한 그녀가 누군가가 필요할 정도로 힘들어서일까.


갑자기 안겨온 마음이 때문에 조금 당황했지만 곧 우산을 들지 않은 왼팔로 그녀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마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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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를 부르는 내 감정은 아련하고, 애틋했다.



“김석우 씨한테 들었어. 왜 오지 말라고 했어…
걱정돼서 왔어. 괜찮아?”



“미안해서 그랬지. 난 완전 괜찮으니까”



괜찮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마음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한테만큼은 힘들다고, 안아달라고 칭얼거려도 되는데. 꼭 그래줬으면 하는데.


이때까지 기댈 곳 없었던 그녀에게 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주고 싶었다. 인간 대 인간이 아니라 남자 대 여자로.


가만히 작은 마음이를 바라보았다. 밤하늘의 달빛에 반짝이는 그녀의 눈동자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부담스럽지도 않은지 눈을 절대 피하지 않았다.



“…일단 우산 좀 들어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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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아, 응”



그녀에게 우산을 들렸다. 그러자 마음이는 내 키에 맞춘다고 발뒤꿈치까지 들어가며 내게 우산을 씌워주려고 안달이었다. 피식 웃으며 급하게 허리를 숙여 그녀에게 맞춰주었다.



“오, 센스”



여전히 내려오지 않는 입꼬리를 주체하지도 못한 채 가디건을 벗어 그녀에게 둘러주었다. 꼼꼼하게 둘러준 다음에서야 만족하고 그녀에게 물었다.



“비 맞았잖아. 안 추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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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감이 좀 있긴 했는데…”



“너 추위 엄청 타는데다가
감기도 거의 달고 살아서 몸을 따뜻하게 해줘야 돼.”



가디건이 겨울용이라 조금 두꺼운 편이긴 했지만 그래도 그녀에게 부족했는지 그녀는 조금 떨고 있었다.



“추우면 가디건 안에 팔 넣어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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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 크지 않을까?”



피식 웃으며 그렇게 말했지만 결국 그녀는 내 가디건 안에 팔을 넣었다. 확실히 눈에 띄게 크긴 했다.


키 차이도 많이 나는데다 체격 차이도 많이 나는 편이라 더욱 그런 것 같았다.

그녀는 제 손을 지나서 남은 소매가 신기했는지 살짝 퍼덕여보였다. 큰 옷에 푹 묻혀 있어서 꼭 아빠 옷을 꺼내 입은 아이 같았다.



“오빠 옷 진짜 크다…”



“덕분에 우리 마음이는 더 쪼그매 보이네요, 꼬맹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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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꼬맹이 아니거든요…”



“나보다 작으시잖아요?”



그렇게 대답하고 나니 그제서야 아직 우산을 마음이가 들고 있다는 걸 알았다.



“아니… 그걸 오빠랑 비교하면 안 되지.
남녀 평균 키가 다른데.”



그녀의 칭얼거림이 듣기 좋았다. 늘 어른 같던 그녀가 자신다워지는 유일한 순간 같아서.


피식 웃은 뒤에 그녀의 손에 들려있던 우산을 부드럽게 다시 쥐었다.

그러는 순간, 마음이와 내 손이 살짝 스쳤다. 그러자 그저 행복한 아이의 얼굴을 유지하고 있던 마음이의 얼굴이 화르륵 불타올랐다.



“뭐야, 마음아. 너 얼굴 엄청 빨개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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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라는 무언가의 산물일까,하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그녀의 답을 기다렸다.

괜한 희망고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연애는 단순 유희가 아닌 자신이 성장하는 발판이 되거나, 혹은 평생 함께할 누군가를 찾아다니는 일이었으니까.




“아무것도 아니야…”



“…응, 빨리 집에 가자”



내가 끌고 온 차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리 멀리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동안 좁은 우산 때문에 어깨에 비를 맞을 그녀가 걱정됐다.


나도 모르는 새에 어떠한 감정도 없이, 어떤 사심도 없이 그녀의 어깨를 잡아 안쪽, 그러니까 내쪽으로 끌어당겼다.


솔직히 말하면 나조차도 놀랐다. 좋아하는 감정과 별개로 그녀가 비 맞는 게 싫다는 사실로 보아 이성으로 보기 이전 그저 사람 장마음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 같아서.


마음이의 얼굴을 역시나 붉어졌다. 그녀가 연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 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녀는 이제 막 19살이 된 소녀였다.


연애 감정과 별개로 그저 자신에게 잘해주거나 다정하게 해주는 행동 하나하나에 설레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감정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그대로 얼굴에 다 들어났고.




“우산이… 하나였어?”



그녀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불편해, 마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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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니. 그런 건 아닌데… 기분이 좀 몽글몽글하다”



“몽글몽글하다는 말은, 설렜다는 말인가요?”



장난 반, 진심 반. 맞다고 대답해주면 좋은 일이고, 아니래도 상관 없다는 듯 던진 질문. 그녀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무척이나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