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3_13명의 가족과 함께인 고아, 장마음입니다

#51_친구, 들

혼란스러운 시간이었다.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상황들의 연속이었다.


연기 역시 한 번도 배워본 적 없으면서 하겠다고 나섰다가 괜히 시간만 잡아먹었고, 지수 오빠의 고백을 순수하게 자신의 마음을 알아달라는 뜻만이 아닌 것 같아 미칠 것 같았다.


원래 심란하고 혼란스러울 때 몸을 움직이는 편이 아닌데 물밀듯 쏟아지는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몸을 움직이는 것으로 정신을 조금 달랬다.




연예가중계 인터뷰 영상이 나가고, 경찰서에서는 어떻게 알았는지 명예 경찰관을 제의해왔다. 무려 ‘아동 성폭력 예방 홍보대사’로. 들어오는 스케줄은 거부하지 않는 편이지만 이번만큼은 많이 조심스러웠다.




“…어떡해야할지 진짜 모르겠네.”




세븐틴과 얘기하면 100% 걱정할 게 뻔해 우선 카카오톡 단체 보이스톡으로 친구들에게 먼저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러자 바로 대답하는 승식이.




“내가 봤을 땐 네 성격에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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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쌉인정…”




이어 승우까지. 정확히 무슨 뜻이냐고 설명을 요구하자 승식이는 망설임 없이 술술 풀기 시작했다.




“만약 한다고 쳐. 그러면 네 목적은 뭐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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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시간 침묵을 지키던 승식이가 말을 이었다.




“그런 일이 줄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일거야.”




“그건 맞는 말 같아…”



내 대답에 이번엔 승식이도 아니고 승우도 아닌 수빈이가 말했다. 승식이나 승우처럼 오랜 시간 나를 본 건 아니라 어떤 말을 할까 궁금했다.




“그리고 너 안 하면 게속 마음에 걸릴 걸?
혹시 알아. 실제로 그런 일이 줄어들지. 그냥 해.
고민할 바에는 그냥 하고 후회하는 게 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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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수빈이의 말에 씨익 웃었다. 어쩌면 그냥 하라는 말을 듣고 싶어서 이들에게 털어놓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너 요즘 엄청 잘 나가더라? 다음 작품은 뭐야?”




“≪힘쎈여자 도봉순≫ 대본리딩 했어.
모레 첫 촬영이야.”




“알려지지 않은 스케줄인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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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우의 장난스런 질문에 피식 웃으며 그렇다고 대답해주었다.




“무슨 역이야?”




“말해주면 너네가 아냐?”




“이름으로 말하지 말고
주인공이랑 어떤 관계인지 말해주면
대충은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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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우의 말에 납득당해 내가 맡은 ‘조희지’ 역에 대해 소개해주었다.




“여자 주인공 짝남의 현여친?
그리고 여자 주인공의 남동생의 미래 여친?”





“개 복잡하겠군…”




승식이의 낮은 읇조림에 피식 웃었다. 그래도 내 일에 관심 가져주는 게 좋았다.




“너 완전 워커홀릭인 것 같던데, 다른 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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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미국 영화 나가. ≪미녀와 야수≫ 실사화 버전.”




세븐틴과 일 얘기는 거의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기로 한 이유는 서로의 선택을 존중하고, 눈치 볼 것 없이 하고 싶은 거 다 하라는 그들의 깊은 뜻이 담겨있었다.


물론 나도 세븐틴과 일 관련해서 싸우고 싶지 않았기에 동의했지만, 그래도 자랑하고 싶은데 할 곳이 없어 조금 심심했는데 오랜만에 통화하는 친구들에게서 그런 욕구가 전부 채워졌다.




“대박. 역시 영어는 배워둬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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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빈이가 감탄했다.




“영어는 뭐, 그냥 대본 외우면 되는 건데.”




“그래도 너 발음 진짜 좋아.
외우기만 하는 걸 넘을 거야, 넌 분명.”




캐릭터 분석이 어려운 배역도 아니라 그냥 잠깐 얼굴을 비추고 대사 딱 한 마디 하고 오면 되는 건데 친구들 입장에서는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뭐, 나도 데뷔하기 전까지 연예인은 정말 먼 존재로 보였고, 그냥 다른 세계 사람 같았으니.


어차피 말해봤자 경험하기 전까지는 모를거고, 다들 연예계로 진출할 거면 알게 될테니 굳이 지금 말할 필요는 없었다.




“강승식 너는 한국 와서 지금 뭐하고 있냐?
학교도 졸업했겠다, 할 거 없을텐데.”




“오디션 보러 다니고 있는 중.
아직 연락 오지는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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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오디션 보러 다니는데?
아이돌 연습생은 아닐거고.”




“맞는데?”




“아니, 그 중국까지 유학을 다녀오셨으면
학자로서 이름 떨쳐야하는 거 아닙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수빈이가 정확하게 짚어 말했고, 승식이는 무척이나 당황해하며 대답했다.




“가서 공부가 안 되더라!
졸업도 겨우 했는데 학자는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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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식이의 호통에 다들 꺄르르 웃었고, 나는 그 시간마저 너무 소중하게 느껴졌다.




“아, 나 오늘 대학 강의 수강 신청 있어.”




“그럼 PC방으로 올래?
와서 게임도 하고 그러자.”




승우의 말에 나는 콧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나 게임 진짜 못하는 거 알잖아.
그리고 PC방에 가는 건 너네 얼굴 보러 가는 거고.”




“게임을 안 해봐서 그러는 거겠지.
우선 와. 우리가 가르쳐주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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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우의 말에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해본 게 맞았기 때문에.




“알았어. 외출 준비하고,
세븐틴 오빠들한테 허락 받고 나갈게.
어디서 만날까?”




“주소는 우리가 정해서 보내줄게.
근데, 너 세븐틴한테 메여 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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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빈이의 말에 나는 싱긋 기분 좋게 웃었다. 메여 사는 것은 아니었지만 만약 그렇대도 그 메임마저 행복할 것 같아서.


세븐틴, 생각보다 훨씬 내가 많이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아니야. 내 성격이 어디 가서 그러진 않잖냐.”




“그치, 차라리 네가 올가미를 던지는 건 또 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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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빈이는 만난 지 승식이와 승우에 비해 조금 덜 됐지만 충분히 나에 대해 잘 알았고, 잘 배려해주었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다시금 인복이 넘치는 사람이라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정연이도 데리고 갈까?”




“정연이? 네 친구? 정한이 형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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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가장 관심이 많은, 그러니까 어쩌면 세븐틴에 제일 관심이 많고 제일 아는 게 많은 승우가 물었다. 정연이의 존재도 승우밖에 모르고 있었으니.




“우리랑 동갑이야?”




“응. 99년생. 데리고 가도 될까?”




안 될 것 없다는 대답에 나는 빙그레 웃었다. 정연이에게도, 내 남사친들에게도 좋은 인연을 하나 만들어줄 것 같았다.




“나중에 봐,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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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 모두 성의없는 대답으로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그런 모습마저 내겐 없었던 현실 친구의 느낌이 잔뜩 묻어나 괜히 애틋해졌다.



누구나 다 누리는 것들을 누려야할 시기에는 누리지 못했으나 지금이라도 누릴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게서 빼앗간 그 시간을 보상해주려는 것 같아서 참 좋았다.




괜한 생각을 털어버리고 정연이에게 전화했다.




“너 또 무슨 일이실까?
우리 방탄 오빠들 만나게 해주겠다는 말도
안 지키고, 연극 보러 가자는 말도 안 지키고!
나 아주 삐졌어”




전화를 받자마자 내뱉는 투정이라니. 참 정연이다운 일이라고 생각하며 옅게 미소지었다.




“미안, 진짜 바빠서.
그러니까 나도 바빴는데,
방탄 선배들은 더 바빴다는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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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 밥 한 번 사주시겠다고 한 것도
못 지키셔서 엄청 미안해하고 계시는 중~”





“아니, 그렇게 말하면 또 괜히 미안해지는데…”




“나중에 밥 먹을 때 만나면 되겠다.
방탄 선배들이 나 밥 사주려는 거에는
마음이 100%있는 것 같으니까, 그 때 너도 부를게”




그녀는 내 말이 잠시간 말이 없었다. 혹시나 감정이 다쳤을까 걱정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냥 나 방탄 안 만날래”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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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말에 나는 진심으로 깜짝 놀랐다. 정연이가 그럴 성격은 아닌데, 갑자기 말을 번복하며 목소리 음역대마저 늘 그런 것과 반대로 낮아졌다.





“방탄은 너한테 해주고 싶은 거지,
나한테 해주고 싶은 게 아니잖아.”




“아니 그래도 이해는 해주실텐데…”




“이해야 당연히 해주겠지.
근데 조금 거리낄 수도 있는 거 아니겠어?
그리고 친구가 연예인이라고
특혜 조금씩 받다보면 그게 권리인 줄 알게 돼.
나 그거 싫어.”





정연이의 깊은 생각에 아무 말도 잇지 못하고 가만히 그러고 있었다. 늘 밝고 해맑던 아이라 이런 생각을 할 줄 안다고는 생각도 못했다. 나, 은근 고정관념과 편견에 막혀 사는 사람이었나보다.





“…미안해, 정연아. 나는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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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할 필요 없어. 나도 얼마전에 바뀐 생각이니까.
대신 같이 밥 먹고 후기 정도는 꼭?”





왜인지 지금 그녀의 기분은 별로일 것 같았다. 자신의 가치관에 맞게 행동하려고 말을 번복했지만 그래도 꽤나 아쉬울 거였다.





“…알았어.”




다음에 팬싸나 콘서트 표, 임직원용으로 나왔다고 하거나 아니면 내가 직접 티켓팅해서 얻었다고 선의의 거짓말을 해서라도 그녀의 손에 쥐어줘야겠다.


특혜 받기 싫다고 했지만 이건 특혜가 아니라 친구에게 잘해주고 싶은 친구의 마음일 뿐이니까.



아, 이게 본론이 아니었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고, 자연스레 말 주제를 바꿨다.





“내 남사친들 만나러 가는데, 같이 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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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사친? 야, 설마 이찬은 아니지?”




나는 어이없다는 듯 웃고 말을 이었다.




“절대 그럴 일 없어.
강승식, 한승우, 정수빈 만나러 갑니다”




“좋아. 다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군.
갈게, 주소보내”




방금은 깊은 생각을 하는 정연이었다는 듯 바로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정연이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애들이 나한테 보내는대로 바로 보낼게.
아, 그냥 단톡에 초대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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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이는 격렬한 긍정을 보였고, 나는 전화를 백그라운드로 깔아둔 뒤 정연이를 단톡에 초대했다. 그렇게 넷이 신나게 떠들동안 외출 준비를 마쳤고, 집에서 나가려는 나를 역시나 세븐틴 오빠들이 잡았다.





“스케줄? 오늘 스케줄 없는 날 아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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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스케줄은 어찌 다 꿰고 있는지 민규 오빠가 물었고, 나는 신기함 반, 징글징글한 마음 반으로 대답했다.




“강의신청”





짧게 대답하자 기다렸다는 듯 원우 오빠가 말했다.




“우리 방 컴퓨터 좋아. 거기서 해도 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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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알아요. 두 분 방이 거의 PC방 급이라는 거.”





그러자 승철이 오빠가 아이처럼 칭얼거렸다. 그럼 왜 가는 거냐고.



“친구들 만나러 갑니다. 정연이랑, 남사친들”




“잠만, 왜 남사친에서 뒤에 복수격이 붙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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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영이 오빠가 급하게 말했고, 나는 이럴 줄 알았다는 듯 대답해주었다




“원래 내 남사친 셋이었어.
오빠들 한승우만 견제하고 있었지?
두 명 원래 더 있었답니다~
이름은 정수빈, 강승식”




그리고 예상했듯 오빠들의 반응은 하나같이 가관이었다. 내가 친한 남자란 남자는 다 쥐어패버릴 듯한 눈빛에다 할 수만 있다면 참여하고 싶어하는 저 행동들.


바로 전화번호라도 물어볼 것 같이 내게 다가오는 오빠들. 정말 하여간 변한 게 없어요, 변한 게.




“야, 나도 99인데, 끼면 안 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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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이가 물었고, 나는 웃는 표정으로 철벽을 쳤다




“눈치가 있다면 끼지 마셔요~”




“아아, 마음아…”




피식 웃으며 찬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아아, 마음아. 그 한승우라는 애 나 완전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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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이가 왜 싫어하는지 알기에, 그 이유의 밑바닥에 연적으로서의 질투심이 있다는 걸 알기에 그저 미안한 마음 뿐이었다.





“승우 진짜 친구야, 찬아.
승우 너무 뭐라 그러지 마.
승우는 승우 나름대로 세븐틴한테
잘 보이고 싶어하는 것 같던데”





“그거 다 구라임. 진심 아님.
네가 바보라서 모르는 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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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말을 해도 좀 예쁘게 해라.”




찬이는 혀를 아주 예술적으로 굴리며 에베베베 같은 이상한 소리를 내며 나를 놀렸다. 물론 화가 나거나 약이 오르거나 그런 건 아니었는데, 그냥 좀 나댄다 싶었다.




“야, 넌 나 놀리려고 살지”




“아니? 나 너 설레게 하려고 사는데?
너 행복하게 해주려고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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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이라고 던진 말에 새삼 진지하게 돌아오는 그의 묵직한 한 방. 순간 그에게 다시 심장이 쿵쾅대기 시작했으나 일시적이었다




“고맙긴 한데,
그런 말은 이렇게 하는 게 아니란다, 찬아.”




피식 웃어보이곤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