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상황들의 연속이었다.
연기 역시 한 번도 배워본 적 없으면서 하겠다고 나섰다가 괜히 시간만 잡아먹었고, 지수 오빠의 고백을 순수하게 자신의 마음을 알아달라는 뜻만이 아닌 것 같아 미칠 것 같았다.
원래 심란하고 혼란스러울 때 몸을 움직이는 편이 아닌데 물밀듯 쏟아지는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몸을 움직이는 것으로 정신을 조금 달랬다.
연예가중계 인터뷰 영상이 나가고, 경찰서에서는 어떻게 알았는지 명예 경찰관을 제의해왔다. 무려 ‘아동 성폭력 예방 홍보대사’로. 들어오는 스케줄은 거부하지 않는 편이지만 이번만큼은 많이 조심스러웠다.
“…어떡해야할지 진짜 모르겠네.”
“내가 봤을 땐 네 성격에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쌉인정…”
“만약 한다고 쳐. 그러면 네 목적은 뭐냐면,”

“그런 일이 줄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일거야.”
“그건 맞는 말 같아…”
“그리고 너 안 하면 게속 마음에 걸릴 걸?
혹시 알아. 실제로 그런 일이 줄어들지. 그냥 해.
고민할 바에는 그냥 하고 후회하는 게 나아.”

“아, 너 요즘 엄청 잘 나가더라? 다음 작품은 뭐야?”
“≪힘쎈여자 도봉순≫ 대본리딩 했어.
모레 첫 촬영이야.”
“알려지지 않은 스케줄인거지?”

“무슨 역이야?”
“말해주면 너네가 아냐?”
“이름으로 말하지 말고
주인공이랑 어떤 관계인지 말해주면
대충은 알겠지”

“여자 주인공 짝남의 현여친?
그리고 여자 주인공의 남동생의 미래 여친?”
“개 복잡하겠군…”
“너 완전 워커홀릭인 것 같던데, 다른 건 없어?”

“나 미국 영화 나가. ≪미녀와 야수≫ 실사화 버전.”
물론 나도 세븐틴과 일 관련해서 싸우고 싶지 않았기에 동의했지만, 그래도 자랑하고 싶은데 할 곳이 없어 조금 심심했는데 오랜만에 통화하는 친구들에게서 그런 욕구가 전부 채워졌다.
“대박. 역시 영어는 배워둬야 돼.”

“영어는 뭐, 그냥 대본 외우면 되는 건데.”
“그래도 너 발음 진짜 좋아.
외우기만 하는 걸 넘을 거야, 넌 분명.”
뭐, 나도 데뷔하기 전까지 연예인은 정말 먼 존재로 보였고, 그냥 다른 세계 사람 같았으니.
어차피 말해봤자 경험하기 전까지는 모를거고, 다들 연예계로 진출할 거면 알게 될테니 굳이 지금 말할 필요는 없었다.
“강승식 너는 한국 와서 지금 뭐하고 있냐?
학교도 졸업했겠다, 할 거 없을텐데.”
“오디션 보러 다니고 있는 중.
아직 연락 오지는 않았어.”

“무슨 오디션 보러 다니는데?
아이돌 연습생은 아닐거고.”
“맞는데?”
“아니, 그 중국까지 유학을 다녀오셨으면
학자로서 이름 떨쳐야하는 거 아닙니까.”
“가서 공부가 안 되더라!
졸업도 겨우 했는데 학자는 무슨…”

“아, 나 오늘 대학 강의 수강 신청 있어.”
“그럼 PC방으로 올래?
와서 게임도 하고 그러자.”
“나 게임 진짜 못하는 거 알잖아.
그리고 PC방에 가는 건 너네 얼굴 보러 가는 거고.”
“게임을 안 해봐서 그러는 거겠지.
우선 와. 우리가 가르쳐주면 되지?”

“알았어. 외출 준비하고,
세븐틴 오빠들한테 허락 받고 나갈게.
어디서 만날까?”
“주소는 우리가 정해서 보내줄게.
근데, 너 세븐틴한테 메여 사냐.”

세븐틴, 생각보다 훨씬 내가 많이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아니야. 내 성격이 어디 가서 그러진 않잖냐.”
“그치, 차라리 네가 올가미를 던지는 건 또 몰라도”

“정연이도 데리고 갈까?”
“정연이? 네 친구? 정한이 형 동생?”

“우리랑 동갑이야?”
“응. 99년생. 데리고 가도 될까?”
“나중에 봐, 친구들”

누구나 다 누리는 것들을 누려야할 시기에는 누리지 못했으나 지금이라도 누릴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게서 빼앗간 그 시간을 보상해주려는 것 같아서 참 좋았다.
괜한 생각을 털어버리고 정연이에게 전화했다.
“너 또 무슨 일이실까?
우리 방탄 오빠들 만나게 해주겠다는 말도
안 지키고, 연극 보러 가자는 말도 안 지키고!
나 아주 삐졌어”
“미안, 진짜 바빠서.
그러니까 나도 바빴는데,
방탄 선배들은 더 바빴다는 말이야.

나한테 밥 한 번 사주시겠다고 한 것도
못 지키셔서 엄청 미안해하고 계시는 중~”
“아니, 그렇게 말하면 또 괜히 미안해지는데…”
“나중에 밥 먹을 때 만나면 되겠다.
방탄 선배들이 나 밥 사주려는 거에는
마음이 100%있는 것 같으니까, 그 때 너도 부를게”
“…그냥 나 방탄 안 만날래”
“응?”

“방탄은 너한테 해주고 싶은 거지,
나한테 해주고 싶은 게 아니잖아.”
“아니 그래도 이해는 해주실텐데…”
“이해야 당연히 해주겠지.
근데 조금 거리낄 수도 있는 거 아니겠어?
그리고 친구가 연예인이라고
특혜 조금씩 받다보면 그게 권리인 줄 알게 돼.
나 그거 싫어.”
“…미안해, 정연아. 나는 그냥…”

“사과할 필요 없어. 나도 얼마전에 바뀐 생각이니까.
대신 같이 밥 먹고 후기 정도는 꼭?”
“…알았어.”
특혜 받기 싫다고 했지만 이건 특혜가 아니라 친구에게 잘해주고 싶은 친구의 마음일 뿐이니까.
아, 이게 본론이 아니었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고, 자연스레 말 주제를 바꿨다.
“내 남사친들 만나러 가는데, 같이 갈래?”

“남사친? 야, 설마 이찬은 아니지?”
“절대 그럴 일 없어.
강승식, 한승우, 정수빈 만나러 갑니다”
“좋아. 다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군.
갈게, 주소보내”
“애들이 나한테 보내는대로 바로 보낼게.
아, 그냥 단톡에 초대해줄까?”

“스케줄? 오늘 스케줄 없는 날 아니었나?”

“강의신청”
“우리 방 컴퓨터 좋아. 거기서 해도 되잖아.”

“나도 알아요. 두 분 방이 거의 PC방 급이라는 거.”
“친구들 만나러 갑니다. 정연이랑, 남사친들”
“잠만, 왜 남사친에서 뒤에 복수격이 붙었어”

“원래 내 남사친 셋이었어.
오빠들 한승우만 견제하고 있었지?
두 명 원래 더 있었답니다~
이름은 정수빈, 강승식”
바로 전화번호라도 물어볼 것 같이 내게 다가오는 오빠들. 정말 하여간 변한 게 없어요, 변한 게.
“야, 나도 99인데, 끼면 안 되냐?”

“눈치가 있다면 끼지 마셔요~”
“아아, 마음아…”
“아아, 마음아. 그 한승우라는 애 나 완전 싫어”

“승우 진짜 친구야, 찬아.
승우 너무 뭐라 그러지 마.
승우는 승우 나름대로 세븐틴한테
잘 보이고 싶어하는 것 같던데”
“그거 다 구라임. 진심 아님.
네가 바보라서 모르는 거임”

“야, 말을 해도 좀 예쁘게 해라.”
“야, 넌 나 놀리려고 살지”
“아니? 나 너 설레게 하려고 사는데?
너 행복하게 해주려고 살아”

“고맙긴 한데,
그런 말은 이렇게 하는 게 아니란다, 찬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