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천사와의 비밀스런 동거
불량천사와의 비밀스런 동거 (01)

석진이의Moon
2021.09.30조회수 16
눈을 번쩍 뜬 세하는 하아, 깊은 한숨을 들여 마셨다가 내뱉었다. 오늘이 한 달째. 수수께끼의 그를 만나게 된 지 한 달째 되는 아침인 것이다. 부스스해진 머리를 마구 헤집은 세하의 표정에는 혼란스러움이 잔뜩 묻어나고 있었다. 그때였다. 부스럭거리는 인기척이 방 밖에서 들려왔다. 세하의 표정이 하얗게 질렸다. 분명, 이 집 안에는 나 혼자밖에 없을 텐데. 여자 혼자 사는 집에서 인기척이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잖아. 세하는 자신의 몸을 덮고 있던 하얀 이불을 꼬옥 여며 쥐면서 긴장감에 눈을 크게 떴다. 발자국 소리가 다가오고 있었다. 이 방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누군가가 분명하게 느껴졌다.
“안 돼!!”
눈을 질끈 감으면서 비명 같은 소리를 입 밖으로 빼액하고 내지른 세하. 그 비명과 더불어 문을 열고 들어온 그 사람의 미간 역시 짙게 찌푸려져 있었다. 겁에 잔뜩 질려, 눈물까지 그렁그렁해진 채로, 세하는 조심스레 눈을 떠 앞에 서 있는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한 남자가 시야 속으로 선명하게 들어오는 순간, 세하의 눈동자가 하염없이 떨리더니 크게 떠졌다.
“아아앗!! 다, 당신은?!!”
“...네가 강세하라는 녀석이냐?”
“...허...허억...어, 어떻게...이, 이런 일이...”
“앞으로 한 달 간 여기 있게 됐다. 잘 부탁한다.”
“누...누구세요...?”
“난 천사야.”
“네에...?”
상상하지도 못한 그의 대답에 세하의 표정이 더 멍해졌다. 꿈에서 매일 보던 그 남자의 얼굴이 눈앞에 있는 것도 믿기 어려운 상황에, 자기 자신을 천사라고 소개하다니. 난 아직도 꿈속에 있는 건가. 믿을 수가 없는 현실에 세하는 자신의 볼을 아프게 꼬집어보았고, 눈물이 질끔 나올 만큼 아팠던지라 더 혼란스러워졌다. 그가 미친 건가 하기엔 꿈속의 그 남자와 너무나도 똑같이 생겼고, 내가 미친 건가 하기엔 그가 너무나도 선명한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귀신도 아니다. 그는 분명 존재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천사라니. 세하는 남자를 밀치고는 부랴부랴 달려나가 우선 찬물부터 벌컥거리며 들이켰다. 정신이라도 차려야지, 안 그랬다간 나 자신이 미친 건지도 모른단 생각을 하게 될 것 같아, 그리 생각하며 세하는 눈을 몇 번이고 부빈 다음 다시 돌아섰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팔짱을 끼고서, 성이 잔뜩 난 팔 근육 때문에 우람하다 싶을 만큼 건장한 상체를 벽에 기댄 채 서 있을 뿐이었다.
“안 믿기는 모양인데 사실이야.”
“...진...짜라구요? 천사라는 게...진짜 있는 거였어요?”
“그래. 보통 인간들 눈엔 내가 안 보여야 하겠지만, 지금의 나는 천사 자격을 박탈당한 상태라 네 눈에도 보이는 거지.”
“자...자격 박탈요? 어, 어쩌다가...”
“왜긴 왜야? 자격이 없으니까지. 씨X.”
“…”
으응...? 천사가 욕도 할 줄 아는 거였나. 요즘 천사들은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천사하고는 성격이 달라졌나. 세하는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웠다. 천사라는 단어하고는 몇백만 광년 이상은 떨어져 있을 법한 이미지의 남자다. 온몸으로 불량스러움과 거친 성향을 강렬하게 내뿜고 있다. 새까만 머리카락과 새까만 눈동자의 그가 도무지 천사라고는 여겨지지 않았다. 천사는커녕, 길거리를 점령하고 있는 쫌, 아니, 좀 심하게 잘생긴 불량배라고 하는 편이 더 맞을 것 같기도 하고. 차라리 악마라고 했으면 덜 놀랐을 것 같기도 하다. 세하는 차마 그런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하고 그저 먼 산만 바라보고 있어야 했다. 그런 세하를 힐금 쳐다본 그가 머리를 북북 긁어대고는 퉁명스러운 말투로 내쏘는 듯 말했다.
“난 정국이라고 해. 나이 차는 뭐, 몇천 년은 되겠지만 귀찮으니까 말 높이지 말고. 그냥 이름 불러.”
“아, 네, 아, 아니, 으, 으응...”
“다시 천사 자리로 돌아가려면...신이 내린 벌을 완수해내야 돼. 한 달 안으로.”
“하, 한 달?”
“그래.”
“신이 내린...벌이 뭐길래...?”
“사랑...”
“어?”
“사랑을 배워 오랬어. 한 달 안에.”
“...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
“천사 주제에 사랑이 뭔지도 모른다고 존나 까였다고! 한 달 안에 사랑이 뭔지 못 배우면 천사로 복귀는커녕 지옥 구덩이 입구 지키는 문지기로 보내버리겠다잖아! 에이, 씨X! 더럽게 짜증나네!”
화를 벅벅 내면서 우르릉 소리가 나도록 발을 거칠게 굴러대는 정국을 보면서 세하는 기함했다. 눈앞에서 저렇게 거칠게 굴어대는 남자를 대체 어찌 대해야 할지, 세하는 마른 침만 삼켜야 했다. 그건 그렇고 저런 신도 감당 못 할 불량한 천사가 어쩌다 내 집에 기어들어와 있는 것일까. 내 꿈엔 왜 나타난 것일까. 세하는 정국이 조금 많이 무섭긴 했지만 그래도 궁금한 걸 해결해줄 수 있는 것도 정국뿐이란 생각에 조심스럽게 씩씩대고 있는 그에게 다가가 말을 붙였다.
“그, 그런데...저, 저기...왜 하필 우리 집에...있는 거야? 내 꿈엔...왜 니가 계속 나왔던 거야? 혹시...내가 무슨...잘못이라도 한 거야?”
“왜라니. 니가 날 불렀잖아.”
“내, 내가? 어, 언제 불렀단...거야? 난 네가 누군지도 모르는걸...”
“니가 사랑하고 싶은 사람이 필요하다며? 나도 사랑을 한 달 안에 해야 하는 처지라서. 신이란 새끼가 너랑 날 붙인 거야.”
“하, 하아? 뭐라고?”
세하의 표정에서 어이가 사라졌다. 신이시여. 나는 사랑하고 싶은 사람을 보내달라고 했잖아. 운명의 상대를 보내달라고 한 거잖아. 이런 무지막지한 불량배 같은 천사 하나 보내달라고 한 게 아니었다구. 세하는 할 말을 잃은 채, 멍청해진 눈으로 정국을 올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정국은 성큼성큼 걸어서 세하의 냉장고로 다가가더니 아무렇지 않은 듯, 자기 집인 마냥 자연스럽게 열어젖히고는 그 안에 넣어두었던 사과 하나를 꺼내고는 아삭아삭 소리 나도록 깨물어 먹기 시작했다. 냠냠거리면서 맛나게 사과를 먹어치우고 있는 정국을 보면서 세하는 더욱 기가 막혔다.
“천사들이...사과도 먹는구나...”
“지금의 난 천사가 아니니까. 보통 인간과 똑같아.”
신이시여 내게 왜 이런 시련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