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의 평범한 연애의 끝으로 시작된 나의 네 번째 연애는 온몸에 전율이 흐르는 듯이 짜릿했다. 평범한 메이크업 아티스트인 내가 멋진 남친을 만나게 된 곳은 바로 스튜디오였다. 물론 당연히 남친은 유명한 모델이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빛이 나는 남친의 첫인상은 매우 좋은 사람이었다. 내가 봐왔던 대로라면 얼굴이 잘생기거나, 이쁘면 항상 성격은 지랄 맞던데, 내 남친은 전혀 그러지 않았다. 조각처럼 잘생긴 얼굴에 예의 바르고, 모두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는 그런 사람이었다.
잘생겼어, 성격 좋아, 예의 바르지. 진짜 드라마에서만 보던 사기캐였는데, 김태형이라는 이름까지 멋졌다.
물론 모든 여자들이 다 반할 만큼 멋진 사람이었지만, 난 그냥 연예인을 본다는 느낌뿐이었다.
그런 내 생각을 180도 바꾼 건, 스튜디오의 뒷정리를 진심으로 도와주는 그의 모습이었다.
모두에게 친절하고 다정한 그가 나에게는 조금 다르다는 걸 느끼게 된 계기는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었다.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주는 눈빛. 딱 그런 눈빛이었다. 처음에 내가 착각하는 건 아닐까 싶어서 그가 다른 여자를 바라보는 눈빛을 유심하게 봤지만, 특별한 점 없이 평범했다.
그 눈빛 이후로,

"여주 씨, 저 메이크업 좀 수정해 주실래요?"
아무리 봐도 괜찮은 메이크업을 자꾸 수정해 달라고 하지 않나.

"저 입술이 자꾸 마르는데, 립밤 좀 발라주실 수 있으실까요?"
전혀 마르지 않은 입술에 자꾸 립밤을 덧칠해 달라고 하지 않나.

"이거 마실래요? 저 이거 안 좋아하는데, 새로 들어온 매니저가 자꾸 이걸 사 오네요"
내가 좋아하는 카라멜 라떼를 매번 나에게 넘기질 않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점이 한 두개가 아니었다.
결국에 나는 솔직하게 물어보기로 했다.
"저한테 자꾸 왜 이러세요? 제가 뭐 잘못했나요?"
노빠꾸 없이 당신 나 좋아해요? 라고 묻기 전 밑밥을 깔아두는 거지.
"네? 여주 씨는 잘못한 거 없어요. 왜 그렇게 생각하신 건지"
"그럼 왜 자꾸 저 귀찮게 해요? 저 부려먹는 게 재밌으세요?"

"전 여주 씨 부려 먹은 적 없어요. 장난식으로 대한 적도 없구요"
"그럼 혹시 저 좋아하세요?"
".............."
침묵은 긍정이라는 건가...

"네. 저 여주 씨 좋아해요"
"그래서 여주 씨 자꾸 가까이 보고싶어서 그랬어요"
"제가 남친이 있으면 어떡하시려고요?"
"다른 분이랑 얘기 나누시는 거 들었어요. 남친 없으시다고"
"그거 듣고 제가 얼마나 좋아했는지, 여주 씨는 모르시겠죠"
아... 이 남자 진짜 선수구나... 아니 완전 fox야. 하마터면 쌍코피가 터질 뻔했다.
"여주 씨는 저 어때요? 저 별로예요?"
태형 씨는 별로예요. 내 마음속에 별로☆
이 얼굴에 홀려서 내가 마음속으로 이런 주접까지 하다니...
"별로... 아니에요..."
"그럼 제 고백 받아주시는 거죠?"
저 얼굴로 고백하는 걸 안 받아주면 제대로 돌은 거다.
네 번째 연애의 시작은 이렇게 되었다.
...
연애를 해보니, 전에는 태형에게서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냥 사기캐처럼 완벽해보여도 사람 같은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촬영하다가 뜬금없이 웃기, 엉뚱한 포즈 짓기, 개구진 표정 짓기 등등.
그렇게 우리는 별 탈 없이 비밀연애를 이어갔는데, 나의 심기를 건드리는 일이 터진 것이다.
그건 다름이 아니라, 초절정 미모의 여자 외국인 모델이랑 찍는 CF 촬영이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가깝고 다정한 모습으로 찍는 것이었다.
이 남자가 내 남자다, 라고 확 엎어버릴 수도 없고. 이건 그냥 촬영일 뿐이다라고 내 마음을 추슬렸지만. 촬영 후, 귓속말과 나한테만 보여주는 사랑스러운 눈빛을 그 여자한테 보여주는 태형에 내 인내심이 폭발했다.
그날 저녁 우리 집에 찾아온 태형에게 나는 삐졌다는 걸 제대로 보여줬다. 물어보는 대답에도 설렁설렁 답하고, 눈도 마주치지 않고, 하는 스킨쉽들을 피했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느낀 태형은 조심스럽게 내게 물어왔다.
"여주야, 내가 뭐 잘못했어?"
"아니. 그런 거 없는데"
"그럼 왜 아까부터 내 눈도 안 마주치고, 내 말에 답도 설렁설렁하게 하고, 스킨쉽도 피해?"
"몰라. 그냥 피곤해"
"내가 잘못한 게 있으면 말해줘. 내가 고칠게"
"그래. 그냥 시원하게 털어낼게. 오늘 촬영 끝나고 외국인 모델분이랑 귓속말도 하고 완전 사랑스럽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더라? 그렇게 좋았어?"
"그것 때문에 마음 상했다면 미안해. 다시는 그런 눈빛으로 다른 여자 보지 않을게"
"아니야. 솔직히 말하면 내가 봐도 그 여자분 사랑스럽고 이쁘더라. 나랑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참 유치하지. 그런 거로 질투나 하고.
나 원래 이렇게 유치하지 않았는데, 누구 때문에 이렇게 유치해지네.

"무슨 소리야. 내 눈에는 네가 세상에서 제일 예뻐"
"그 누구랑 비교할 수도 없고, 그 누구랑도 바꿀 수도 없어"
"처음이었거든, 나를 이렇게 유치하게 만드는 사람은"
그 후로 들은 얘기로는 나에게 자꾸 시선이 갔고, 내가 다른 남자랑 얘기하는 것만 봐도 화가 나고, 싫었다고. 내 옆에 자신만 있고 싶었다고 했다.
너도 마찬가지야.
너는 날 유치하게 만들어. 이상하게도.
비하인드_
CF 촬영 중에 태형이 여자 모델분한테 귓속말로 한 말은,

"보라색 셔츠 입은 여자 보여요? 제 여자친구예요. 정말 예쁘죠?"
(저기 보라색 셔츠를 입은 여자분 보이시죠? 제 여자친구예요. 정말 많이 이쁘죠?)
여주를 발견한 여자 모델분이 웃으면서 작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네, 그녀는 정말 예뻐요."
(네. 너무 예뻐요.)
긍정적인 대답을 받은 태형의 얼굴에는 찐 행복한 미소가 띠었다.
여주가 본 그 눈빛은 모델분에게 아닌 자신에게 향한 것이었는데,
그 눈빛을 받는 주인공이 자신이라는 걸 몰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