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어..고마워.

나 먼저 가볼게. 준비 잘하고. 나 불러주고
당연히 부르지 ㅋㅋㅋ 청첩장 주러 갈게. 여친이랑 한 번 보자.
스몰토크 후 내 얼굴은 다시 일그러졌고 채형원이 등장하자마자 더 일그러졌지. 지겹게 본 이 얼굴하고 한집에 사는 건 너무 지옥 아닐까. 근데 어떡해. 집이 있어야 독립을 하지.
그리고 문득 스쳐지나가는 대화
(근데 너 은근 나 싫어하는 것 같다.)
(너가 좋았던 적이 있을까?과연)
(그러면서 나랑 왜 사는 건데 ㅋㅋㅋ 다른 남자는 찾아보지도 않는 거야?)
(안전하잖냐. 너랑 살면 생활 패턴 달라서 마주칠 이유도 없고 그야말로 완벽하고 편안한 쇼윈도 아니겠니.)
(사랑도 없는데 집 때문에 결혼이라. 근데 이 제안을 받아들인 내 생각은 어땠는지 안 궁금해?)
(너도 괜찮으니까 같이 사는 거 아니야? 왜 아니야? 너 설마 좋아하는 애 있는데 돈 아끼려고 결혼하는 겨?)
(아니. ㅋㅋㅋ 없어서 너랑 사는 거지. 근데 난 널 싫어하지는 않아. 넌 날 너무 싫어하는데 같이 살고 있고)
(좋았던 적이 없는거지 싫어한 적은 없을텐데 아마.)
사실 싫어한다. 꽤나 많이..ㅎ 채형원은 맨날 느끼고 있을테고
(근데 너 좋아하는 애 있잖아.)
(아. 임창균? 걔 여친있잖아. 무려 7년인데. 이젠 포기했어.)
(진짜? 너가 15년이나 좋아했잖아.)
(중1부터 서른.. 그렇네. 여친 있는데 좋아하기나 하고 시간 참 그지같이 썼네.)
예쁘네.순간 머리가 띵하더라. 나 진짜 얘랑 결혼하는구나 싶었어.
웃어보이는데 잡생각이 싹 사라지고 일그러진 얼굴이 풀어지더라. 진심이 담긴 웃음과 말은 아니겠지만 진짜 신랑처럼 보였어. 근데 약간 3인칭 시선으로 내 신랑 말고 남 신랑.
뭐지 왜 웃어.
그냥 예쁘니까 웃음이 나지.
빈말도 정성스럽게 한다.
어머 얘 예쁘네. 형원이가 드레스 보는 눈이 있구나~
엄마 드레스말고 내가 예쁘다고 해줄 순 없어?
뭐래니.
딸 결혼하면 운다던데 엄만 왜 좋아하지?! 응?!
딸아 엄마는 울어도 형원이 때문에 울거야.
결혼말고 채형원을 아들로 삼지 그래?
형원이 부모님이 허락을 해주시겠니~ 암튼 너네 혼인신고도 했으니까 잘 지내 알겠어? 결혼식을 안 하긴 뭘 안 해.
엄마한테 우리 집 때문에 결혼하는 건 비밀이다. 그러니 결혼식 같은 거 안 하려고 한 건데.

불편하지? 갈아입고 나와.
입꼬리 올리지마. 진짜 싫으디.
너는 형원이 얼굴가지고 그러냐? 그게 남편을 대하는 태도니.. 형원아 나도 너희 결혼시키기 싫은데~
엄마가 제일 신났어요. 암튼 갈아입고 나올게요.
그렇게 드레스 고르는 건 끝나고 엄마 데려다드린 후 채형원하고 난 집에 돌아옴. 채형원하고 나랑 생활패턴이 완전 다른데 오늘은 날 맞춰준 날.
얼른 쉬어야겠다 너. 거실 말고 들어가서 쉬어.

오늘만 잠 안 자면 되겠지.
뭐래. 얼른 들어가서 자고 나와. 조금이라도 자야지.
알았어.
채소 좀 먹고. 내가 백날 채소주스 만들어다주면 뭐해 어?
으 싫어 채소. 아니 참견 안 한다며.
영양제 평생 달고 살거냐.
그 나한테 마음없으면 신경쓰지마. 부모님들 앞에서만 '척'하기로 했잖아.
갑자기 왜 또 예민해졌어? 알겠어. 신경 안 써요. 우리 청첩장 때문에 임창균 좀 만나려고 하는데 밥 같이 안 먹어?
어 난 안 먹을래.
알았어.
그렇게 시간이 지나 청첩장이 나오고 제일 먼저 임창균한테 연락을 함.

어 여기야 홍조
어? 여자친구랑 같이 오라니깐. 그래야 너 여친이 얼른 결혼하고 싶어하지 않겠냐고~ㅋㅋ
나 헤어졌어. 몰랐어?
헐 진짜? 몰랐네. 미안하다.
밥은 같이 못 먹겠다. 나 오늘 형원이하고 작업있거든.
아 채형원? 그래그래 여기 청첩장. 잘가고~

결혼 축하해. 결혼식날 보자.
응. 그래.
집에 돌아오고 보니 있는 채형원.
채형원 자?
응..방금 일어났어.
깬 채형원하고 테라스 나가서 채소주스 두 잔 두고 앉아서 얘길 시작했음.
오늘 임창균하고 작업있는 날이라며.
어. 청첩장은 줬어? 아 또 채소..
줬어. 너껀 채소 달랑 하나 넣었다. 당근. 맛있을테니까 먹어. 근데 임창균 여친하고 헤어졌다더라. 넌 알았어?
어. 알았는데.
언제?
한 2년 전쯤..?
헐 왜 말 안 해줬냐..?!
말 하려고 했지. 근데 너가 나한테 결혼하자고 해서.
응? 단순 그 이유라고?

너 임창균 그때도 좋아하고 있었잖아. 나한테 같이 살자고 한 그때도.
말했으면 달라질 줄 알았어? 내가 너랑 같이 안 살고 임창균 붙잡고 좋아한다고 같이 살자고 그러게?
어. 바보같이 행동할 것 같았거든.
이건 뭐 바보같지 않은 행동이고?ㅋㅋ
바보 같지. 근데 우리 이혼 할거야?
아마도. 너랑 나랑 좋아하는 것도 아니잖아. 돈 좀 모이면 그 때 이혼해야지. 얼마 안 걸리겠다.
나는 널 매일 봐도 신기하다.
자 너 이제 작업하러 가야지. 밤이 왔습니다~ 야행성 인간아.
아 다음주 부모님하고 저녁약속 있어.
헐 괜찮겠어? 저녁시간에 너 자잖아.
우리 부모님인데 어쩌겠어.
이 대화를 끝으로 우리 둘은 집에서 마주치는 일이 거의 없기 시작했음. 둘다 바빠지는 타이밍이라 결혼식 직전에도 못 만남.
저녁약속도 뒤로 밀려서 결혼식 끝나고 만나기로 했음. 이유는 채형원 작업이 길어지는 바람에 해외도 깄다와야하는 상황이 되버림.
그렇게 결혼식 당일. 유일하게 결혼식 당사자들인 둘만 얼굴이 경직됨. 오랜만에 보는 얼굴에다 둘다 꾸민 얼굴이라 어색함이 최고조에 이른 상태
...아 배고파.
마음도 없는 결혼이지만 다이어트를 한 나였음. 친구들은 신부 대기실에 들어오자마자 우리 둘이 결혼할 줄 알았다며 하하호호 떠들었지만 내 속은 타들어가는 중. 임창균도 왔는데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예쁘다고말하고 금방 또 나가버림. 북적북적한 신부 대기실 같은 건 친구없는 나한테는 꿈 자체. 내 신부 대기실은 그냥 찬밥신세였음.

안 불편해?
신랑님 곧 나가셔야 해요.
아 네.
지금 내 심정은 드레스 찢어버리고 탈출하고 싶은 심정. 혼인신고만 하면 되는 걸 엄마 때문에 판이 커져버린 건 아직도 화가 덜 풀린 거지. 지금 내 얼굴 분노에 가득 찬 표정이라 채형원은 나 놀리려고 찾아온 거고.

결혼식 끝나고 얘기하자.
결혼식은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고 끝나고 사람들에게 인사도 다 돌리고 모든 사람들이 나가고서야 양가 부모님하고 식장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화장만 4겹..아니 5겹이야..

수고했다.
아주 요즘 여자생겼나봐. 나랑 사는 게 골치아파하는 것 같네.
사위~
우리 아빠의 부름에 채형원은 신혼부부 눈빛을 장착하곤 나를 바라봤고 곧 세상에서 제일 듣기 싫은 말을 듣고 만다.

자기야 오늘 수고 많았어.
아하하하하 아빠 우리 이만 가볼게요. 피곤해요.
그래그래 오늘 준비하느라 고생했어. 푹쉬고.
어. 엄마한테는 피곤해서 먼저 간다고 전해주세요. 갈게요.
잘 살아.
..알았어요.
잘 살아라는 말에 아픈 게 아니고 얼른 이 쇼윈도나 끝내고 싶은데. 당장 돈이 없으니 3,4년은 요래 살아야지 라는 생각을 하니 아픈 거다. 난 채형원이 싫고 집은 사야하는데 남자는 없으니 할 일 없어보이는 채형원을 쓴 거고. 근데 너무 꼬였고.
그럼 저희 먼저 가보겠습니다. 장인어른.
그래. 딸하고 잘 지내.
갈게요. 아빠.
근데말야 잠잠하던 채형원이 갑자기 이상해진 거임. 무슨 바람이 불었길래 저럴까.
야! 채형원!!!

이 쓰레기는 외박을 한다. 거하게. 고분고분 적당히 받아치기나 하시지 왜 또 심술이실까. 도대체 작업하면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