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짤 조심
피탈 씀.
“꺼져, 이 살인자들아.”
‘살인자···.’ 그녀에게 세 번째 듣는 단어였다. 정국은 동요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우리는 네가 그렇게 말하는 살인자니까 괴생명체들 다 죽여서라도 너 살리면 되잖아.” 아득하고 차분한 음성으로 말을 내뱉었다. 살인자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는 숨이 막힐 정도로 무거웠지만, 그 타이틀을 갖게 된 이상 더는 내빼지 않기로 마음 먹은 정국이다.
그녀의 심장에 이미 두 번이나 칼을 박아넣은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기에 내뱉은 말이었다. 정국은 그녀의 목숨을 구해준 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되려 살인자라는 대목을 얻은 것에 대한 모순을 품지 않았다. 헛웃음이 날 정도로 단순하기 짝이 없는 그다.

“우린 이제 2관의 3층으로 갈 거야. 주연이랑 다른 애들을 데리고 학교를 탈출하자. 너, 살고 싶으면 따라와. 혼자 있어서 좋을 거 없어.”
한참을 망설이던 그녀는 눈꺼풀 밑으로 뜨겁게 차오르는 무언가를 훔치고는 정국의 뒤로 발걸음을 옮겼다. 살기 위해 역겨움을 잠시 견뎌내겠다는 의지가 담긴 발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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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국과 태형, 그리고 여학생은 2관의 3층에 도착하자마자 9반 여학생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우린 학교를 나갈 거야. 같이 나갈 사람 있니?” 1/3이 손을 들었다. 손을 들지 않은 나머지는 밖의 상황을 모르는 판에 무작정 나가는 건 무모하다고 말했다. 정국과 태형을 포함하여 약 열다섯 명 정도의 인원이 학교에서 발을 떼기로 결심한 것이다.
열다섯이라는 숫자는 결코 적지 않았다. 셋씩 짝을 지어 앞옆뒤의 망을 살폈다. 아까 1관에 남아있던 괴생명체처럼 또 다른 그들이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예상할 수 없는 터라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학교를 나왔음에도 그놈의 불안감은 사라질 줄 몰랐다. 학교와 가까운 우유 공장을 담장 너머로 슬쩍 보니 이미 마비가 되어버려 온갖 곳에 피가 흩뿌려져 있었다. 새하얀 우유 더미에 비릿한 빨간 색소가 첨가되어 진한 딸기빛을 내는 것이 참으로 역겨웠다.
“ㅈ···저, 저기에…”
함께 나온 여학생 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 고작 500m도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목이 꺾인 채 비틀거리는 한 괴생명체가 있었다. OO우유 기업명이 박힌 조끼를 입은 걸로 보아 바로 옆 우유 공장 직원이었음이 확실했다.

아뿔싸, 한 놈이 아니었다. 꼴에 우유 공장에서 일했던 걸 잔뜩 티를 내는 건지, 총 세 명의 새빨간 우유를 뒤집어 쓴 괴생명체들이 그들을 향해 달려왔다. 500m 거리를 미친듯한 속도로 뛰어 금세 거리를 좁혔다. 아까 학교에서 들고온 뾰족한 걸레의 봉을 앞세워 정국 또한 달려들었다. 세 명의 괴력을 가진 생명체들을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역시나 무리였다.
이빨을 드러내고 무식하게 들이미는 괴생명체들이 정국을 아스팔트 바닥에 꼴아박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등이 바닥에 박힌 채, 날카로운 봉으로 아무리 찔러봤자 전혀 타격을 받지 않는 그들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한 명을 상대하는 것조차 미친듯한 체력을 필요로 하는데 두 명을 상대로 버티고 있는 정국은 실로 대단했다.

“이 미친 괴물들아!!!"
정국에게 붙은 두 놈을 제외한 다른 한 놈은 태형에게 달려들었다. 태형은 주변에 있던 돌을 하나 집어 그 괴생명체의 얼굴에 박아넣었다. 정말 죽을 거란 생각이 드니 못할 것도 없었다. 지금은 무조건 살아야 했다. 이 놈들을 죽이지 못한다면 자신과 정국을 포함하여 여학생들까지 모조리 죽을 것이 분명했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소리를 지르던 여학생들 중 한 명은 학교를 나올 때 챙겨왔던 비상용 망치를 꺼내들었다.
눈깔이 뒤집혀 분별을 못하고 마구자비로 달려드는 그 미친 것들의 정수리에 망치를 찍어박았다. “야 이 새끼야 나 살린다며. 아까처럼 목구멍에 찔러버리라고!!!” 망치를 들고 정국에게 달려온 사람은 바로 3학년 6반의 마지막 생존자, 그녀였다.
그녀는 정국에게 붙어있던 한 명의 괴생명체의 등에 수차례 망치질을 해댔다. 척추가 드러나고, 약 네 개의 갈비뼈를 조각질 했지만 여전히 미쳐 날뛰었다. 입 안에서 떨어지는 핏방울이 그녀의 얼굴에 범벅이 되어 눈을 뜨는 것마저 힘들어지자 속수무책으로 밀리기 시작했다.
“제,발 조금만 더 버텨!!”
정국은 필사적으로 봉을 꽂아댔다. 전체적인 수적으로 밀릴 수가 없는 구도이지만 두려움에 사로잡힌 나머지 여학생들은 그저 짐덩이에 불과했다. 그나마 함께 따라와줬던 그녀가 망치를 손에 들고 달려들었기에 약간의 가능성이 생겼지만, 그마저도 밀리고 있으니 최대한 빨리 목숨을 끊어야 했다.
한쪽 손으론 자신의 머리에 이마를 가져다대는 그 괴생명체의 눈을 쥐어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목젖을 휘어잡아 발로 심장뼈를 강타했다. 자신의 몸을 짖누르던 것이 떨어지자 재빨리 봉을 목에 찔러박는 정국이었다.
완전히 숨이 꺼진 것을 확인한 정국은 그녀에게 달려갔다. 하지만 그녀의 목부근에 괴생명체의 입이 닿기 일보 직전이었다. 봉을 그 자리에서 즉시 날렸지만 아깝게 빗나가고야 말았다. 당장 죽을 힘을 다해 달려도 괴생명체의 이빨이 박히는 것을 막기는 힘들어 보였다.
“아아-악, ㅈ제발···.”
“야 민하늘, 숙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