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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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탈 씀.









태형은 괴생명체를 피해 달려올 때 복도 벽을 손으로 짚었다고 했다. 아무래도 그때 피가 손에 묻은 모양이다. 벽을 그리 오래 짚은 것이 아닌데도 태형의 손을 빨갛게 물들인 정도라면 꽤 엄청난 양의 피가 흩뿌려져 있다는 말이다. 정국은 태형의 말을 듣는 내내 이빨을 바드득 갈았다. “태형아 가자. 지체할 시간이 없어.” 정국은 살기 위해 닫았던 문을 다시 열었다.


숨을 죽이고 발소리를 최대한 줄이며 복도를 걸었다. 계단과 가장 가까이에 있던 3학년 6반은 아까 태형과 정국을 쫓아왔던 괴생명체에게 처참히 찢겨 있었다. 태형과 정국이 계단쪽 문으로 가지 않았더라면 지금 살아있었을지도 모르는 학생들이었다. 정국은 아까 문을 닫고 잠궈버렸을 때, 바로 코 앞에서 들려왔던 비명의 주인공들이란 걸 눈치챘다. 




“정국아, 6반 여자애들은 다 죽은 것 같지..?
설마··· 아까 우리가 이쪽으로 도망쳐서 
그 괴생명체들이 6반 애들을 발견한 건 아니겠지…"

“그런 거 아니니까 헛소리하지 말고 김주연이나 찾아."


정국은 자신들 때문이란 사실을 이미 짐작하고 있었기에 심장이 평소의 네 배로 뛰는 것 같았다. 하지만 괜히 마음 여린 태형에게 솔직하게 말해버린다면 저기 죽어있는 6반 애들 한명 한명 모두에게 무릎을 꿇고 사죄할 김태형의 미래가 그려져 굳이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6반을 지나쳐 7반 쪽으로 이동하고 있을 때쯤, 갑자기 학교와 4km 정도 떨어진 우유 공장에서 폭발음이 들려왔다. 태형과 정국은 놀란 마음에 다시 6반으로 돌아가 교탁 밑에 몸을 숨겼다. 시체가 널부러져있는 공간이긴 하지만 어쨌든 괴생명체가 없다는 걸 눈으로 확인한 공간이기도 하니 이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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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생명체들이 어디선가 잔뜩 몰려와서는 학교의 창틀을 깨고 쏟아져 내려갔다. 아무래도 방금 우유 공장에서 들려온 굉음을 따라간 것 같았다. 만약 6반에 몸을 숨기지 않았다면 저들에게 여기저기 뜯겼을 게 분명했다. 

교탁 밑에서 한숨을 돌리던 정국이 벌떡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운동장을 살펴보니 괴생명체들이 우르르 공장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보였다. 족히 백은 넘어보이는 숫자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저 백 이상의 생명체들 중 에는 교복을 입고있는 다수의 학생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태형에게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몸을 돌린 순간,


"거기 제발··· 나 좀 도와줘."

창문 밖에서 한 여학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순간적으로 소름이 쫙 끼친 정국은 털썩 주저앉았다. “여기 난간에… 누가 있는 것 같은···." 태형은 창문에 비춰진 흐릿한 그림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블라인드를 완전히 젖히자 난간에 가까스로 매달려있는 한 여학생이 있었다. 태형은 손을 뻗어 여학생을 무사히 반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도왔다.



“언제부터 거기에 있었던 거야? 그리고 이름은 ㅁ,”

“도와준 건 고마운데, 말은 걸지 마.”


도와준 사람의 말을 싹둑 잘라먹은 것도 모자라 말도 걸지 말라니···. 싸가지가 보통이 아닌 듯해 보이는 여학생은 심기가 매우 뒤틀려 있었다. 전정국과 김태형을 매섭게 야리며 ‘살인자’라고 읊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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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방금 뭐라고 했냐. 도와준 사람한테 뭐, 살인자?”

“왜? 아니야? 너희가 우리반 애들 죽인 거 맞잖아.
니네 둘이 도망치면서 우리반 쪽으로 그 이상한 것들 데려와서 다 죽은 거잖아. 조용히 숨 죽이면서 바들바들 떨던 애들을 너희 대신해서 기여코 걔네 제물로 준 게 너희라고. 그게 살인자가 아니면 뭔데?"



눈 하나 깜빡않고 핏줄까지 세워가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여학생은 결국 눈물을 보였다. 괴생명체 둘이 갑자기 자신의 반으로 들이닥쳐 반 아이들의 목을 모조리 뜯고 찢어대던 그 모습을 회상하니 절로 눈물이 났던 것이었다. 피로 흥건해진 소매로 빨개진 눈을 비비더니 정국과 태형을 다시 한 번 째린 후, 반을 나갔다.


태형은 그 여학생의 말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족히 서른 구는 되어 보이는 시체들이 전부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태형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시체로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 아까 예측했던 미래와 정확하게 일치하는 상황에 정국은 헛웃음을 흘렸다.



"태형아, 그만 일어나. 주연이 찾으러 가야지.
너 이러다 주연이까지 잃을래?"



태형은 ‘주연’이라는 단어에 즉각 반응하여 광대를 타고 흐르는 눈물을 스윽 문질러 닦았다. ‘미안해, 정말로 미안해. 내가 너무 미안해.’ 교실 문을 나서는 순간까지도 중얼거림은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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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국과 태형은 주연의 교실인 9반으로 향했다. 다행히 아까 그 공장의 굉음 때문인지 괴생명체들은 전혀 보이지 않았기에 순조로이 9반에 도착할 수 있었다. 9반과 10반은 아예 건물이 달라서 괴생명체들이 들어오지 않은 건지 교실 문이 멀쩡했다. 

"주연아!!!!!!"


문을 열자 입을 막고 불안함에 몸을 떠는 여학생들이 보였다. 3학년 남학생들과 3학년 여학생 일부, 그리고 2학년 학생들이 사용하는 1관에만 괴생명체가 들어왔던 것이었다. 애초에 학교 자체에는 괴생명체가 소수만 들어왔었고, 2관을 출입하는 문이 꽤나 으슥한 데에 있었기에 찾지 못했나보다.

외관상 너무나도 괜찮아 보이는 주연을 보자마자 태형은 달려가 껴안았다. 눈물 자국이 볼따귀에 가득한 걸로 보아 꽤 오랫동안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던 모양이다. 







“김태형, 김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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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서로 부둥켜 안고 있을 때가 아니야. 언제 다시 올지 몰라. 우리··· 학교를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