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탈 씀.
"···나는 네 가족 아니야? 왜 내 생각은 안 해!!!"
심장이 멎는 기분이 들었다. 병X같이 죽은 동생들 생각만 하느라 살아남은 동생 생각은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다. 죽은 사람을 향한 미련으로 산 사람 앞에서 개난리를 치고 있었던 건에 대해 약간의 쪽팔림이 더해졌다. 제정신이 아니니 별 잡스런 감정이 이리저리 복합적으로 드러났다 사라졌다 반복한다.
정신을 좀 차리니 얼굴에 땀범벅이 된 채 머리칼을 쓸어넘기는 대학생 둘이 눈에 들어왔다. "미안... 내가 미안해." 민윤기는 아랫 입술을 씹으며 눈을 내리 깔았다. 친구들 앞에서 괜한 추태를 부린 것 같아 미안했다. 미친놈처럼 날뛰던 자신을 말리느라 얼굴이 땀으로 엉망이 된 친구들은 제법 30대라 해도 믿길 수준이었다.

모두가 거실에 둥그렇게 둘러앉아 현 사태에 대한 정리를 시작했다. "좀비, 뭐 그런 건가?" 대학생1이 말했다. 여기서 말하는 대학생1은 민윤기의 친구, 그러니까 함께 동거 중인 두 학생 중 흑발 머리를 가진 사람이다.

"그런 거겠지. 그런데 영화에서 보던 거랑은 좀 다른 거 같아. 물린다고 다 좀비가 되는 건 아니니까."
그렇다. 학교에서만 해도 그랬다. 영화처럼 물리는 순간 전부 괴생명체가 된다면 습격이 있었던 다수의 반에서 시체가 남아있을 리 없었다. 아무도 없었더라면 몰라도. 그렇다는 건 물려도 괴생명체가 될 가능성도, 안 될 가능성도 있다는 거다.
대충 아까 직면했던 상황들을 떠올리며 뱉어낸 것들을 모아 A4용지에 적어보기로 했다. 써내려가다보니 어느새 글씨로 꽉 채워졌다. 뒤죽박죽 써놓은 거라 깔끔하게 정리하면 네 줄도 안 나올 빈약한 분량이었다.
"별거 없네. 아, 인터넷 들어가봐. 뭐라도 주어 들을 순 있겠지."
휴대폰을 손에 꼭 쥐고 있던 주연은 재빨리 초록창에 들어갔다. [인터넷 연결이 불안정합니다.] [인터넷 연결이 불안정합니다.] [인터넷 연결이 불안정합니다.] 이게 무슨···. 와이파이는 물론 데이터 연결이 전부 끊겼다.
"ㅌ..태형아 휴대폰이 이상해."
떨리는 음성이 거실 분위기를 더욱 다운시켰다. "괜,찮아. 티브이 있잖아. 아까까지만 해도 켜···." 타이밍 하나는 기가 막혔다. 순식간에 꺼진 티브이 화면을 바라보며 여기저기서 탄식을 내뱉었다. "ㅈ,전화하자. 119 신고라도 해서 안전한 곳으로 가면 되잖아." "ㄱ...그그렇지." 이 간단한 생각을 집에 온지 1시간만에 떠올린 건 모두가 멍청해서가 아니다.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통화 대기자 수, 351924명.]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통화 대기자 수, 462035명.]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통화 대기자 수, 573146명.]
갈 수록 늘어나는 대기자 수를 알리는 안내 음성이 꽤나 얄밉게 들렸다. 119까지 마비된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건··········없었다.
집 안에 있는 일곱 명 모두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실에 무력감을 느꼈다. 가만히 있으니 괜시레 배까지 더 고파지는 것 같았다. 하늘이 먹을거리를 가져오겠다며 무릎을 필 때였다.
주연이 소리를 꽥 질렀다. 반팔을 입고 있던 탓에 온 팔에 닭살이 돋은 것을 못 본 이는 없었다. 대체 무엇을 봤길래 갑자기 이리 튀는 행동을 한 건지는 모르겠다. "야, 김주연 너 왜 그래." 정국은 몸서리를 치는 주연의 어깨를 바로잡았다.
"김..,김태형···. 빨리 나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