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어딘가로 던져지고 옮겨지고 , 그러다가 정신을 잃었던 것도 같다. .나는 부스스한 머리를 만지작 거리다 졸린 눈을 뜨며 앞을 바라봤다. .흐릿한 시선에 익숙한 네가 들어왔다. .
너는 빈 방 한가운데에서 쪽지를 들고 서있었다. .한손에는 권총을 쥔채로 .
“ 뭐야 ..? “
졸림에 멋대로 쉬어버린 목소리가 숨소리와 함께 흘러나왔다. .너는 얼굴이 조금 굳은 채로 나에게 다가와 들고있던 쪽지를 건냈다 .
‘ 뭐야 , 답지않게 심각한 표정이나 하고. ‘
나는 별생각 없이 팔랑이는 얇은 종잇조각을 읽어내려갔다.귀찮은지 날려쓴 필기체로 적힌 말도 안되는 내용 .
만약 여러분 중 한 명이 죽으면, 여기서 나갈 수 있습니다.
?
씨발 , 이게 뭔 말도 안되는 소리지 .
“ …야, 괜찮아 ? “
“ 미친새끼, 넌 이상황에서도 웃으면서 말할 수 있어? 이딴 말도 안되는… “
….납치를 당했는데 이보다 더 말도 안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법은 없지만. .그래도 , 그래도 이건 아니지 ..
생각이 채 다 정리되기도 전에 네가 입을 열었다 .
“ 내가 생각을 좀 해봤는데. “
그 상냥한 미소로 눈을 맞추면서 .
“ 아무래도 내가 나가는게 맞지 ? 내 목숨을 바칠 만큼 사랑한건 아니었잖아 우리. “
“ ….뭐 ? “
‘ 지금 저게 할말이야 ? ‘
나는 너무 어이가 없고 당황스러워서 말문이 막혀버렸다 .
“ …… “
우린 아무말도 없이 몇분을 보냈다. .아니, 그저 몇초 일지도 모른다. .짧은 찰나 , 그 시간마다 침이 바싹바싹 말라왔다. .서로 안죽는다고 바로 둘 다 죽여버리는건 아니겠지 , 애초에 우릴 왜 데려온거지 ? 누군가의 심심풀이 ? 아니면 누군가의 원한일까 ? 아무것도 생각해낼 수 없었다 .
그렇게 또 시간이 지났다. .나는 힘겹게 입술을 열었다. .몇번이나 입술을 달싹거리며 생각했지만 , 그래도 .
“ 그래 , 잘살아 “
내가 이딴 새끼를 위해서 이렇게 살아왔나. .살고싶다. .처음부터 이런 결정이 필요없었으면 좋았을걸. .표정관리가 잘 되지않았다. .수백가지의 생각들이 머릿속에 떠다녔다. .그래도 씁쓸히 웃었다. .슬픔에 젖어서 네 앞에서 추하게 울고 싶지않았다. .
바닥에 놓인 권총을 들어 네 손 하나하나 손 마디까지 쥐여주었다. .차가운 그 감촉이 날 소름끼치도록 서글프게 만들었다 .
“ 응 , 사랑해 “
낮은 울림이 심장에서부터 퍼지는 듯했다. .뇌수부터 발끝까지 울려대는 그 말에 나는 눈을 감으려 했는데 , 그 전에 보고말았다. .울 것 같은 얼굴로 일그러지는 눈가를 억지로 참아내고 내게 사랑을 속삭일 때의 그 눈빛으로 눈물을 뚝뚝 흘리며 내 얼굴을 그 손으로 가리는 너. .
탕 .
짧고도 허무한 한 방이 생명의 끈을 부러뜨리고 내 손 끝을 스쳐 지나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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