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9 - 부제 : 민규의 이야기. 1
민규 시점

글쎄, 어디부터였을까. 어디서부터 잘못된거지?
처음 그와 만났던 것은 대학교 입학하고 반년 정도 지난 뒤였다. 고등학교를 같이 나와 친했던 정국이, 나와 같은 학과이고 몸이 약하니 좀 잘 챙겨달라며 그를 소개해 줬다. 형은 소심하고 자주 아팠지만, 또 밝았다. 전화번호를 교환하고는 같이 수업을 듣고 따로 만나며 급속히 친해졌다. 언제부터 호감이 있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처음 만난 지 1년 반 정도 지났을 때 그에게 내 마음을 고백했다. 혼란스러워하며 대답을 피하는 형에게 며칠 동안 계속해서 쫓아다니며 싫다고 해도 좋으니 제발 대답해달라 빌었다. 결국 좋다는 대답을 받아내고 사귀고 나서는 정국이한테 욕도 듣고 잔소리도 들었다. 여린 사람이니, 상처 주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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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는 그냥 흘러들었다. 내가 그에게 상처 줄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사귀게 되고 1년 정도 지났을 때, 형이 졸업을 하면서 같이 살기 시작했다. 형이 프리랜서로 일했기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고, 난 아직 학생이었기에 밖에 나가는 일이 더 많았다. 집에 돌아오면 반갑게 맞아주는 그에게, 난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학교를 졸업하고, 그러니까 반년 전부터, 무언가 표현이 잘 없는 형에게 지치기 시작했다. 단순한 변덕일까 싶어 일단은 티 내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또 2개월 뒤, 은서를 만났다. 그녀는, 음.. 글쎄, 갑자기 끌렸던 것 같다. 자연스레 그녀와 사귀게 되었고 4개월 정도 뒤에 일이 터졌다. 오랜만에 동기들과 술을 마셨기에 조절을 못했고, 너무 많이 취해버렸다. 동기 중 하나가 형을 부른 건지, 아니면 걱정된 형이 연락해서 장소를 알아낸 것인지, 모임 장소에 원우형이 나타났다. 살짝 짜증이 나 인상을 찌푸리자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옆에 와 앉았다. 잠시 동기들과 무슨 대화를 나눈 형이 이내 나를 일으켰다. 그다음부터는... 기억이 없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은, 울고 있는 형의 모습.
그래, 그것만 너무 확실히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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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일어났을 때는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해 그저 꿈인줄만 알았다. 그가 왜 울었는지, 어찌해서 우는 장면만 머릿속에 박힌 것인지 몰랐으니까. 상황 파악을 위해 주위를 한번 둘러보다 이불을 뒤집어쓴채로 자면서도 앓고 있는 그를 보고 나서야 내가 전날 밤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몰아붙혔구나, 를 대강 짐작했다.
부엌으로 나와 냉수를 한잔 들이키면수 생각을 정리했다. 내가 전날 밤 너무 심하게 굴었을까 미안한 마음에 진통제와 해열제를 물과 같이 가지고 방에 들어갔다. 약이라도 먹고 자는게 좋을 것 같아 그를 살짝 깨우는데,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그가 끙끙거리면서도 눈을 피해 돌아누웠다. 처음엔 화나거나 삐져서 그러는건가, 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하며 그를 달랬다.
"형, 원우야. 미안해. 약 먹고 자, 응?"
계속해서 달래다가, 이상한 것을 느꼈다. 반복해서 그를 부를 때 마다 떠는 것이, 화나거나 삐진게 아닌, 겁을 먹은 듯 보였다. 그걸 깨닫자 마자 확 짜증이 밀려왔다.
"전원우. 내가 무서워?"
굳은 목소리로 말하자마자 잡고 있던 이불을 손에 핏줄이 보일 정도로 더욱 세게 부여잡고는 아예 이불을 머리 끝까지 올려버렸다. 그에 또다시 짜증이 치밀어올랐다.
"하아, 뭔데, 또? 왜그러는데?"
다시 한번 움찔거리는 몸에, 나도 모르게 물컵을 탁자 위에 쾅 내려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모르겠다. 형 알아서 해"
까득 이를 갈고 일어나며 말을 건네고는 그대로 방을 빠져나왔다. 늘 들고다니던 백팩에서 휴대폰을 꺼내 키자마자 무수히 많은 알람이 쏟아졌다. 친구들과 은서. 친구들에게는 대강 문자를 보내놓고 은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왜 전화를 안 받았냐는 말에 술을 너무 많이 마셨다며 사과를 하자 속은 괜찮냐며 묻는 목소리에 걱정이 묻어나왔다. 해장은 해야되지 않겠냐며, 본인이 사주겠다는 말에 금방 나가겠단 말을 하곤 옷을 갈아입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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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이후로 원우형은 눈에 띄게 날 피했다. 그에 심통이 나, 나 역시도 그를 일부러 피했다. 2주 정도가 지났을 때, 친구들을 만나고 집에 들어가는 길에 집에서 나오는 형과 마주쳤다. 몸이 안좋은지 안색이 하얗게 질려있었다. 어딜 가냐고 묻는 질문에 병원에 간다는 그의 몸이 눈에 띄게 떨려왔다. 어차피 곧 약속이 있었기에, 잘 다녀오라는 말만 하곤 잠시 쉬러 방에 들어갔다.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는걸 보니, 은서와 또다시 술을 많이 마셨던 것 같다. 다음날 아침 은서가 말하길, 집에 도착해서 원우형이 나를 받았다고 했다. 같이 먹고 형도 좀 주자며 과일을 사들고 온 은서에게 아직 그가 잔다고 전해주자, 자는 사람 방해하지 말자며 쪽지 하나를 남겨놓고는 내 손을 이끌었다. 공원에서 30분 정도 있다 들어오니 형이 tv쪽 서랍을 뒤지며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민규야, 왔..아, 은서씨 오셨어요..."
다녀왔어, 그렇게 말하며 본 그의 얼굴이, 왠지 모르게 슬퍼보였다. 일부러 은서를 보며 과일을 먹자며 웃으며 말했다. 밝게 웃으며 과도를 찾아 과일을 깎아가던 그녀가, 방에 들어가려는 형을 불렀다.
"원우씨? 원우 오빠라고 불러도 돼요?"
"아, 네.. 마음대로.."
같이 먹자며 그를 부르는 은서에게, 형이 낯을 많이 가린다며 일부러 싸늘하게 그를 쳐다봤다. 결국 방에 들어가려는 형을 보던 은서가 놀라 그를 다시 한번 불렀다.
"원우오빠, 손에 피..."
우리가 오기 전, 은서가 남긴 쪽지를 보고 과일을 먹으려다 손을 베었다고 했다. 내가 구급상자를 옮기고 말을 해주는 것을 잊었는지, 예전에 구급상자가 있던 곳에서 그것을 찾고 있었던 것 같다. 위치를 말해주자, 형이 신발장쪽으로 찾으러 갔고, 은서는 그의 손을 치료해주겠다며 그를 쇼파에 앉혔다. 꽤나 집중해서 치료하는 은서를 보며 안절부절 못하던 형이 다 된 것 같다고, 몸이 안좋다며 방에 들어갔다. 그가 방에 들어가고 나서도 계속해서 그를 걱정하는 은서에 약간 질투가 나, 약간 투정을 부리니 그녀가 웃으며 나에게 안겨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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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편은 민원이 처음 만났을 때 부터 2화정도까지의 일을 민규 시점으로 나타냈습니다-!
다음화부터는 다시 8화에 이어가게 됩니다. 준휘가 문자를 보낸 사람은 누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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