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무궁화 ]
"그대를 기억한다고 약조하진 못 하겠소 내 꼴이 이미 말이 아니라...."
"기억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러니까 말 그만하고..."
피투성이의 남자가 차가운 눈 위에 쓰러져있다.
그의 옆에서 그를 바라보는 여자의 눈에선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다.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던 그가 힘겹게 손을 올린다.
추운 겨울바람이 문제였을까 가늘게 떨리는 그의 손이 간신히
그녀의 얼굴에 닿았다.
"울지 마시오...그거 아오? 내 당신을 처음 봤을 때 경성 거리가
신기하다는 듯 해맑은 그 모습이 얼마나 눈이 부시던지....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대에게 내 마음을 드렸지 뭐요..."
"하...그니까 말하지 말라고 피 나오잖아.."
그녀의 눈물이 그의 손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바닥으로 떨어진다.
"잘 갔소?..."
"뭐?..."
"내가 그대에게 보낸 내 마음이 잘 갔냐 이 말이오...내 나름대로..내가 아는 가장 귀한 것들로 꾸며 보냈는데...그대 마음에 들었는지 모르겠소..."
환하게 웃는 그의 모습에 그녀는 무너지고 말았다.
그의 입꼬리가 떨리는 모습이 너무나도 잘 보여 그녀는 울음을 그치는 법을 잊어버린 듯했다.
"잘 왔어, 잘 받았어 너무나도 예뻐서 매일같이 담고 다녔어......그래서 내가 널 사랑하게 되었어..."
울음이 섞인 그녀의 미소는 그들의 끝을 알리는듯했고,
그의 숨소리는 추운 겨울 속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하....내가 그 말을 얼마나 듣고 싶었는지....그대는 모를 거요....드디어 듣게 되었소..."
행복하다는 듯 웃는 그의 얼굴은 그의 것인지 그녀의 것인지 모를
눈물로 엉망이었다.
"맞아 내가 너무 늦게 말했어...그래서 나 너랑 못 해 본 게 너무 많아. 나 너랑 해야 할게 너무 많아.."
"미안하오 이런 사내라...그대를 사랑하고 보니 이 나라가...내 조국이 꽃을 피우지 못하고 꺾일지 모른다는 것이 너무 원통하지 뭐요...꼭 그대 손잡고 독립한 경성 거리를 걸어보고 싶었는데..."
하늘을 보며 말을 잇는 그의 눈은 점점 빛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그대. 언젠가 그대가 이런 말을 했던 것 같은데..그대는 먼 훗날에서 왔다고...그대가 온 먼 훗날엔...이 나라가 만개하였소...?"
"...어 만개했어 아주 예쁜 분홍색 꽃이 아름답게 피었어...너희 덕분에 이 나라가 자유로운 햇살 아래 살아가고 있어...고마워"
"다행이오...그 어여쁜 꽃을 보고 싶었는데..."
"내 부탁 하나만 들어주겠소?..."
"뭔데..."
"부디 당신이 행복하길 바라오..내 그대를 기억하지 못할지 모르지만...내 반드시..또 한 번 그대에게 마음을 보낼 테니..그때가 되면 다시 한번만 더 나를 연모해 주겠소?..."
".....그래"
그의 힘겨운 질문에 더욱 힘든 답변이 들려온다.
"많...이 연모하였소....."
그의 숨결이 뱉어졌을 때 눈은 덧없이 내리고 있었고,
그녀는 한참을 그의 옆에 머물러 있었다.
때는 1945년 1월 17일이었다.
시간이 흘러 이 나라가 광복을 맞아 꽃이 피어나던 날
그녀는 작은 사진을 보며 웃고 있었다.
"뭐야 남긴 거라곤 사진 한 장뿐이잖아.....나 잘 기다리고 있어 그니까 천천히 와도 괜찮아 사랑해....."
그녀의 고백에 달빛이 작게 흔들렸다.
괜찮은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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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잇호잇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