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모음집

[ 2. 초승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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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승달 ]




기어코 내가 왔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 당신을 만나러. 








마당이 너른 집 안에서, 창에 비춰 보이는 그녀를 보았다.








봄바람에 산들거리는 물망초가 내 손안에 꽃다발이 되어 양옆으로 
흔들렸다. 








반가움에 한달음에 달려가고자 하는 내 발을 묶어둔 것은 그녀가 
흘리고 있는 눈물이었다. 








창문을 뚫고서도 들리는 그녀의 서러운







울음소리가, 








그는 낮은 담벼락을 앞에 두고 그녀를 보던 눈길을 돌렸다.








그녀를 보고 반가움에 환하게 웃던 그의 미소는 다시금 무표정으로 
변해 괴로움으로 얼굴을 잔뜩 구길 때까지, 







그 담벼락 앞에 주저앉어 날갯짓하며 지나가는 호랑나비를 지켜보다




 저 앞 강에서 흔들리는 






버드나무 잎을 지켜보았던 것 같다. 






당신을 어찌하면 좋을까. 






내가 어찌하면 좋을 듯합니까. 






서럽게 우는 그대의 울음을 밖에서 들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잠시 동안 주변 풍경을 돌아보다 문득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녀가 붉어진 눈가를 비비며 마당으로 나오고 있었다. 



비추는 햇살에 눈가를 잠깐 찌푸리다 젖어있는 빨랫감을 손가락으로 툭툭 두어 번 치다 덥석 들어 물기를 털어냈다. 






그러고는 작은 입술을 이로 잘근잘근 씹더니 한숨을 내뱉는 
모습이었다. 







.




.









10년. 




그녀의 얼굴은 10년 동안 닳은 부분도, 덧붙여진 부분도 있어 내가 
아는 사람과는 조금 달라 쉽사리 다가갈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아마 그녀도 나를 잊었으리라, 나 편한 대로 그리 생각했다. 










[나를 그냥...정혼자로 두시오] 








[돌아오겠소, 그대가 지치지 않을 시간 내에] 






지쳤을 것이다. 






하물며 그녀를 그리던 그 세월 동안 나도 지쳤으니까.






그녀에게 했던 말들은 아마 지금에 와서는 입에 바른말들이 되었겠지.






그게 내 진심이었던 아니었든 중요치 않다. 






적을 향해 총구를 들이밀고 불을 집어던지고 내 나라를 위해 
노력해왔던 그 시간 동안 그녀는 방 한편에서 어떻게 지냈을까. 







저 눈물은 나를 향한 눈물일까, 






지난날 동안 날 기다리다 허송세월로 보낸 후회의 그리움인가. 








"...난 이제 어떻게 하면 좋겠소." 






그저 가만히 봄날의 냄새를 맡으며 앉아서 시간을 보냈다. 







그녀가 하던 행동들이 결국에야 전부 멈추고 나서 어둑어둑해지는 
밤이 올 때까지. 








난 결국에는 그 해답을 찾지 못했다. 














"차라리..차라리 왔어야지. 나한테 욕을 듣더라도 왔어야지. 
내가..설령 당신에게 차갑게 굴었더라도.." 







"...미움을 받기에는 익숙하지가 않아서 말이오." 






그의 입가에 핏물이 자꾸만 그의 머리를 받치고 있는 그녀의 손에 
흘러내렸다. 







손수건으로 어떻게라도 닦아보려는 노력이 무색하게 
그의 숨은 헐떡거리다 기침을 하고, 






나아질 기미 없이 이것들을 반복했다. 






"어떻게 미워할 틈을 주지 않소...내가 그렇게 기다린 만큼 왜 늘 한 
걸음 물러서냐는 말이야..." 






"...난 늘 그대를 울리는 구려. 아마도 내가..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니라 그러는 듯해." 










"..그게 지금..." 







화낼 수도 없이 만든다 이 남자는, 내가 그를 그토록 기다린 연유가 
무엇이었을까. 









"..그러게, 난 그대를 매일 울리기만...하는 것 같아." 









이 남자의 이 장난스러운 표정을 보고 싶었던 것 같다. 




나에게 웃어주는 따스한 미소도, 서툴던 행동 하나하나, 스치는 손짓.





나에게 닿지 못했던 그 무엇 하나도. 





당신을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들어. 








"..보고자 하면 매번 떠나는 사람을..또 기다리게 할 셈이지.." 






"더 이상..기다리는 건..하지 맙시다..." 







그가 심하게 기침했다. 



흙바닥 사방으로 튀는 붉은 피가 가슴을 옥죄었다. 



그를 서둘러 끌어안고 힘이 빠져가는 그의 팔을 어떻게든 
부여잡았다. 







"싫어, 당신이 나한테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어디 있느냔 말이야.." 








"...내가 해보니 기다림 그것이, 꽤나 서글프고 외롭고 그리운 것
이더라고.." 






"...알면서..그리 잘 알면서.." 






그는 웃었다. 




왜, 행복한 걸까. 





그의 눈이 초점을 잃어가고 있었다. 








빠져나가는 그의 정신을 붙잡고 놓듯 그의 뺨을 쓰다듬으며 안았다.







 총알이 꽂혀있을 그의 전신은 마치 고치지 못할 인형 같았다.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은 이 순간 매초가 지나갈 때마다 날 
고통스럽게 했다. 










"내가..당신의 시간들을 뺏어서..그리고 그것을 갚지 못함에..
미안하오..." 







"아니야..이렇게 가지 마시오..아직은 안돼. 난 하고 싶은 말을 
아직 다..." 







"내가 조금만 더 용기가 있었다면..." 







그날 그렇게 돌아가지 않았을 텐데. 






우는 당신의 어깨를 돌려 잡고 토닥거리며, 설령 미움을 
받았을지라도..그렇게 했을 텐데. 







위아래로 뜯어 먹히는 나라의 한 조각으로 태어나 그 조각으로서의 
본분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떠남에 서러웠다. 






동시에 그 조각으로서 살아가는 내 시간에 같아 재로 변해버렸을 
그녀의 지난 시간들도. 







"..."







그는 여전히 웃었다. 




그리고 그의 눈가의 따라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차마 하지 못했다. 








그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죽어가는 내가 할 수 있는 말 중에 가장 






지독하고 그녀를 평생 옭아맬 저주였다. 








차라리...나에게 그런 말을 할 용기가 없어 다행이다. 









그녀가 나를 향해 무엇이라 소리친다. 





잘 들리지 않소, 왜 난 끝까지 당신에게 아픔만 주는 사람일까. 






아아, 난 죽을 때까지 그녀의 눈물이구나. 









그녀 뒤로 보이는 하늘은 어제와 같이 푸르렀고 똑같이 하얀 구름이 떴으며 다시금 미지근한 바람이 한차례 분다. 

















"하..." 







잠에서 깨, 들이 마시지 못한 숨을 급하게 쉬며 헐떡였다. 






동시에 가슴을 강하게 짓누르는 감정이 파도처럼 그녀를 덮쳤다. 






두 손에 이불을 틀어쥐고 아픈 속을 달랬다. 







동시에 그녀의 두 눈에서 눈물을 흘려내렸다. 








자다가 이게 뭐 하는 건가 하는 마음에 어이없이 손으로 대충 문질러 닦았다. 






"왜 또 이래..누군데 이래 진짜..." 








서러웠다. 






그저 아프고 아팠다. 







생활고에 찌들어 사는 그녀에게 추억할 만한 
연애, 사랑 따위는 없었을 텐데도. 






가끔씩 한 달에 두어 번 이렇게 주기적으로 앓았다. 







마치 그래야 하는 것처럼, 이유를 알 수 없는 그녀는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았다. 









"...언제까지..이럴 거냐고.." 







가슴을 애는 고통에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쓰고 눈을 질끈 감았다.







 무슨 꿈을 꾼 것 같다. 항상 깨어나면 생각이 나지 않지만, 







강하게 뇌리에 박혀있는 것처럼.. 







그녀는 고통을 잊으려는 것처럼 억지로 잠을 청했다.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이것뿐이었으니까. 








오랜만에 창밖이 환했다. 








커튼을 달아야지 달아야지 했었는데 시간이 없어 결국 달지 못했다. 









창밖으로는 커다란 초승달이 보였다. 






그녀는 초승달을 보는 것이 좋았다. 






다들 보름달을 좋아하던데, 왜 난 저 달이 좋은 건지는 잘, 






보고 있으면 마음아 편안해지는 것뿐인데. 








다시금 욱신 거리는 마음을 가라앉히려 부단히 노력했다.








 아마도 괜찮아질 거다. 









결국에는 괜찮아질 거야. 












"..저기서..." 







무얼 하는 거야. 







그녀는 집 밖을 힐끗 내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도 그의 뒤통수가 보였다. 이렇게 잘 보이는데 그럼, 








아까 빨래를 널었을 때에도 안 보일 리 없다. 







그저 언제 와줄까 기다리며 엿본 것뿐이다. 






아까는 들어오려는 것 같더니, 







그녀는 부루퉁한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또 초승달이구나." 











그가 오는 날에는 늘 저 달이 뜬다. 








그렇게 생각하고자 하니 초승달이 뜨는 날마다 그가 왔으면 했다. 







한 번 두 번 그를 기다리다 지치는 세월 안에서도 








그래도 그 덕분에 행복했다.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고..." 











어쩌란 거요, 그녀는 웃었다. 







이렇게 떨어져 앉아있지만 그나 그녀나 









결국은 같은 방향을 보고 있는 걸 테니까. 










보고 있으면...언젠가는 닿지 않겠소. 









그렇게 조용히 눈을 감았다. 







오늘은 결국 닿지 못해 아쉬운 그의 멀어지는 발걸음을 들으며. 







또 와주겠지, 기대에 부풀어 웃었다.








괜찮은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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