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대한 독립 만세 ]
"정녕..저를 버리시는 겁니까?"
당신이 아프게 인상을 찡그리며 말합니다.
"..맞습니다."
"..."
나의 대답에 작은 빗방울처럼
당신의 하얀 얼굴 위로 물방울이 흘러내립니다.
"...잔인합니다, 그대는."
"그 또한 인정하지요."
나는 천천히 두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습니다.
그대는 견디기 힘든 듯 차는 숨을 내쉬고 떨리는 두 눈으로
저를 쳐다봅니다.
"왜인지 연유를 여쭈면, 대답해 주 실렵니까?"
"..다른 정인이 생겼습니다."
"지금..뭐라..?"
"다른 정인이, 생겼다고 했습니다."
혹여나 그대가 못 들었을까 봐, 한자 한자 힘주어 말하였습니다.
"나의 연인,
나의 정인,
나의 약혼자,
나의 여인.
그 모든 수식어를 넘겨받을 또 다른 사람이,
저에게 생겼습니다."
이 말을 끝으로 그대를 뒤로하고 돌아섰습니다.
한 걸음, 두 걸음, 몇 걸음을 옮겼을까요.
얼마 가지 않아
그대의 눈물 지운 목소리가 내 발걸음을 붙들어버렸습니다.
"...저는 그대를 모두 지울 겁니다."
"..."
"우리의 봄, 덥지만 아련하였던 여름과 가을, 춥지 않았던 겨울.
우리의 호숫가와 배꽃 나무 아래에서의 기억."
"..."
"나에게 들꽃을 주던 소년,
얼굴을 붉히던 청년,
혼인하자 하던 사내,
연모를 속삭이던 나의 정인,
그리고 내 품속 아이의 아버지
그 모두를!"
"!"
나는 애써 떨리는 손을 감추고 돌아가려는 고개를 막았습니다.
"내 삶의 의미들을, 당신이라는 그 존재 자체를 잊을 겁니다.
지울 것입니다!
혹여 아이의 아비가 누구냐 물어도, 나는 모른다 할 것이란
말입니다...!"
"..잊으시지요. 더 이상은 상관없으니."
"그대를 원망합니다.
결국 모든 게 거짓뿐이었던 당신의 사랑놀이도,
그에 기꺼이 속아 넘어간 바보 같은 저도.
사랑한다 연모한다 말하면 나도 매한가지요,
하던 당신의 웃음기 넘치던 그릇된 속삭임도.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을 사랑한 저를,"
"저를 증오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그대는 비척비척 떠나갔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펑펑 쏟아져 내리는 눈이 그대의 흔적을 덮어가는 것을 보며, 나는 우두커니 멍하니 허공만 보았습니다.
"..이만 가자."
어느 순간 등 뒤에서 나타난 동료의 말에 퍼뜩 정신이 들었습니다.
-
있지요, 이건 비밀이지만 저는 오늘 죽으러 갑니다.
당신과 나의 아이에게 좀 더 좋은 세상을 가져다주고 싶은 마음에,
이기적인 욕심을 채우러 갑니다.
남편 없이 홀로 그대가 살아가면 얼마나 힘들지 알면서도
아비 없는 우리의 아이가 얼마나 아플지 알면서도
차마 포기할 수가 없는 저의 사명이 지금은 조금 원망스러워집니다.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세상이 휘청이는 것만 같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그대 아까 몸이 좋지 않아 보이셨는데
이젠 홀몸도 아니신데
내가 옆에서 잡아드려야지 넘어지지 않으실 텐데
추위도 많이 타시는데
목도리를 하셨었나
장옷을 걸치셨나
그대와 이별해버린 이 상황에 맞지 않게
너무나 평범한 걱정이 떠오릅니다.
만일 이 일이 끝나고 살아 돌아가게 된다면
가서 무릎을 꿇어야겠다.
짓궂은, 너무 심술 맞은 농이었다 하며
엉엉 울 당신을 달래드려야겠다.
아이가 태어나면,
이름을 지어주고 너무 고맙다 말해야지
그대에겐 본 순간부터 사랑했다 다시 한번 고백하고
아이에게도 그대를 완전히 뺏기진 말아야지.
절대 가능할 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속으로 실없이 상상해봅니다.
어떡하지요.
너무나 그립습니다.
제가 가지지 못할 미래가 너무나 아쉽습니다.
우리의 아이에게 모든 세상을 주겠다 허풍 떠는
다정한 그늘이 되어주고 싶고
그대의 작은 어깨에 기대어 무서웠다 어리광도 피우고 싶습니다.
장성한 아이와 공놀이도 하고
좋은 정인을 만나게 해주어 새 보금자리를 찾아 아이가 떠나가면
당신과 조곤조곤 오순도순 함께 하사
그대 먼저 떠나면 가시는 길 배웅하여 외롭지 않게 하고 싶고
당신을 추억하며 안온한 여생을 보내고 싶습니다.
세상이 밉습니다, 미워요.
평범한 일상을 주지 못하는 이 세상이 너무 밉고
이 지경으로 끌고 온 우리의 조국도 밉습니다.
잘못된 선택으로 고통받는 것은 우리라는 사실도 너무
원망스럽습니다.
아까 저를 잊어도 된다 하였지만
사실 저를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아이에게 어리석지만 용감한 선택을 한 아비가 있었다고
너를 직접 기르지는 못하였지만 너의 존재를 안 순간부터 끊임없이
너를 사랑해 준 사내가 있었다고
장날에 가면 항상 너의 물건을 하나씩 골라오던 아비가
너와 만들어갈 있지도 않은 추억에 가슴 설레어 하던 아비가
그대와 아이를 위해 너무 맹목적인 바람에 조금 먼 길 먼저
떠나가 버린 남편이 있었다고 기억해 주었으면 합니다.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해버렸습니다.
이리 그대를 그릴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아버렸습니다.
눈물이 멈추질 않습니다.
연모합니다
사랑합니다
두렵습니다
무서워요, 너무 보고 싶어요...
집에 가면,
방 한가운데에 서신과 여윳돈이 있을 겁니다.
그 옆에는 내가 직접 수놓은 아이의 저고리가 있을 겁니다.
아이에게 주려고 챙겨놓은 신은 깜빡하고 제가 가져와 버렸습니다.
나는 끝까지, 제대로 하는 것 하나 없는 못난이군요.
이리 못난 사내가 남편이어서 미안해요.
이기적이어서 미안해요.
사랑합니다,영원히
부디 다음 생에는...
"..다음 생에는 걱정할 것 없는 시대에 또다시 진귀한 인연으로
찾아와주길..."
대한독립 만세-!
탕-
.
.
.
1943년, 어느 한 추운 겨울
한 산어귀에서 일본군 500여 명과 조선인 70여 명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일본인 사상자 중에는 고위 관직자 14명이 포함되어 있었고,
조선인 70여 명 모두 품속에 태극기와 독립선언문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김가 태형, 대한 제국의 독립군이자
한 집안의 자손
한 여인의 남편이고
한 아이의 아버지이고
그 모든 것을 사랑한 사내가 되어
먼 길 떠나다.
괜찮은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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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잇호잇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