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도령님의 서툰 사랑.
말랑공 씀.
*본 글은 그저 망상으로 시작한 글이므로 많이 이상할 수 있으며 곧 있으면 많이 어두운 단편 글이 나올 예정이라 잠시 쉬어가는 의미에서 올리는 글입니다.
“어머, 얘. 설화야. 그거 들었니? 태형 도령님 있잖아… 이번에 또 쓰러지셨대.”
“…태형 도령님께서?”
어렸을 때부터 병약했던 김태형. 그는 옛날부터 자주 쓰러지곤 했다. 아파서 쓰러지는 거라고들 말하지만 몇몇의 사람들은 김태형이 마님의 관심을 받으려고 일부러 쓰러진다는 웬 헛소문을 믿는 듯했다. 어쩌면 헛소문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사실 태형은 집안에서 그리 환영 받지 못 하는 존재이다. 병약한데다가 몸 선은 어찌나 가늘고 예쁘던지. 마님은 그런 김태형을 싫어했다. 겨우 그의 몸 선이 가늘고 예쁘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싫어했다. 그래도 자기 자식이라고 태형이가 쓰러졌다는 말을 들으면 헐레벌떡 뛰어가긴 한다. 정말 알 수 없는 여자이다.
태형이가 쓰러지면 달려가는 또 다른 한 명이 있다. 바로 이설화.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태형의 소중한 벗이었으며 언제부터인지 태형에게 연모라는 감정을 몰래 품기 시작했다. 양반인 태형과 달리 평민이었던 설화는 편하게 대해도 괜찮다는 태형의 말에도 무의식적으로 불편함을 느끼곤 했다. 주변의 시선들과 주변 양반들의 무시하는 듯한 말투에 눈치를 본 것도 있었지만 왠지 자기 자신이 죄인이 된 것만 같아 태형에게 선을 긋고는 했다. 그러나 태형이가 아플 때만큼은, 쓰러질 때만큼은 그녀의 신경은 오로지 태형만을 향했다.
“안 가 봐도 되겠어? 설화 넌 항상 태형 도령님께서 쓰러지셨다고만 하면 하던 일도 다 제쳐놓고 헐레벌떡 뛰어갔었잖아.”
“…응. 나 말고도 도령님을 간호해 주실 분들은 많은데, 뭘. 나같은 평민이 가 봤자 괜히 불편만 하실 거야.”
“…도령님은 네가 오길 기다리시는 것 같던데.”
“응?”
“음, 아무것도 아니야.”

“태형 도령, 괜찮소?”

“아, 자네였군. 정국 도령.”
전정국이 들어오기 전 누구일지 모를 발소리가 들렸을 때에는 그저 한없이 기뻐 보였지만 정국인 것을 확인하고는 잔뜩 실망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김태형, 그는 누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까. 정국은 그런 태형의 마음을 알겠다는 듯이, 이미 다 꿰뚫어 봤다는 듯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앞에 턱을 괴고 앉았다.

“태형 도령, 자네… 설화 낭자가 아니라서 실망한 거요?”
“…그런 거 아니오. 정신 사나우니 나가시오.”
“자네는 너무 무뚝뚝해서 탈이야~ 참, 아파 보이지도 않는데 마실이나 나가는 게 어떻소?”
“…됐소.”
“우연히 설화 낭자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도?”
“아니 글쎄 설화 낭자를 기다린 게 아니라니깐.”
“하하, 그건 그렇다 치고. 안 갈 거요?”
“…갈 거니 정신 사납게 굴지나 마시오.”

꽤나 시끌벅적한 마을. 이번에도 꾀병이긴 했지만 병약했던 건 사실이었기에 고막을 찌르는 소음에 태형은 괴로울 뿐이었다. 괜히 마실을 나왔나,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태형은 혹여 설화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쓰러질 듯이 어지러워도 꾹 참았다. 오직 그녀를 보기 위해. 어제도 봤지만 오늘도 보고 싶은 그녀를 보기 위해. 눈에 담아도 또 담고 싶고 저의 넓은 품에 안아도 또 안고 싶은 그녀, 이설화. 오직 그녀를 보기 위해.
시끌벅적한 많은 인파들 속 가운데, 익숙한 뒷모습이 태형의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많은 인파들에 휩쓸려 허둥대는 정국을 버리고 태형은 그 익숙한 뒷모습에 점점 가까이 다가가기 시작했다.
“……설화 낭자?”
“어, 태형 도령님…!”
태형이가 설화에게 너무 가까이 붙었던 탓일까, 아니면 그저 너무 많은 인파들 탓이었던 것일까, 설화는 앞 사람들에게 밀려 태형의 품에 안기는 듯한 모습이 되고 말았다. 태형은 무의식적으로 그런 설화의 허리를 한 손으로 감싸안았다. 그러자 둘의 얼굴은 훨씬 가까워졌고 금방이라도 입술이 닿을 것만 같았다. 태형은 처음으로 설화의 얼굴을 가까이서 봤고, 자꾸만 입술로 시선이 절로 갔다. 설화 또한 태형의 입술에 시선이 자꾸만 옮겨졌다. 그 무렵 둘의 숨결이 서로의 살갗에 부드럽게 닿았다. 둘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흘러갔다.
미묘한 기류를 깬 건 다름 아닌 설화. 그녀는 잠시 당황하며 놔 달라고 말했다.
“저, 도령님, 놔 주세요…”
“아, 미안하오. 낭자.”
태형은 왠지 아쉬워하며 그녀를 놔 주었다. 설화는 그대로 입을 맞추어버리고 싶었지만 평민인 자신이 양반인 그에게 입을 맞추면 왠지 더 큰 죄를 지어버리는 것만 같아서, 그저 분위기에 휩쓸려 그랬던 것뿐 그도 자신을 좋아한다고 확신하긴 일렀던 게 그녀가 놔 달라고 했던 이유였다. 그러나 설화는 설렜던 마음을 감추지 못 하겠는지 그대로 그에게서 등을 돌려 붉게 달아오른 제 뺨을 숨겼다. 뺨은 숨길 수 있었지만 붉게 달아오른 귀는 숨기지 못 했다. 뒤를 돌았지만 슬며시 보이는 그녀의 붉은 귀. 태형은 그런 그녀를 보며 사랑스럽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한없이 사랑스럽지만 어떻게 감정을 표현을 해야 할지, 아직 너무나도 미숙했던 태형은 그저 자신이 가볍게 걸치고 있던 도포를 벗어 얇은 천만을 입고 있는 설화에게 걸쳐 주었다. 설화는 그 순간 태형의 향기가 제 온몸으로 스며드는 것만 같았다.
“…이건 왜……”

“아직 춥소. 병에라도 걸리면 큰일이니 입으시오.”
그것이 태형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애정 표현이었다. 그러나 설화는 그것이 태형의 애정 표현임을 모르고 그저 태형의 다정함이라는 것으로 오해하며 그가 걸쳐 준 도포를 꼭 쥐었다.
어느 도령님의 서툰 사랑_마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