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려진
말랑공 씀.
*본 글의 소재는 영광스럽게도 LOYA-S 님께서 주신 소재입니다.
*본 글은 폭력적인 장면을 포함하고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이번에 들어온 아이는 쓸만한가?”
어느 부유층 남성이 내게 물어왔다. 나는 그 질문에 대답해야만 했다. 그것이 나의 직업이자 나의 생존 방식이었으니깐.
“네. A급입니다.”
“겨우 A급밖에 안 돼? S급은 없어?”
“어제 다 팔리고 없습니다.”
그 남성은 손을 높게 치켜들어 내 뺨을 내리쳤다.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한 놈 팔리면 한 놈을 데리고 와야지. 그 남성은 내 신발에 가래침을 찍, 뱉고는 나가버렸다. 나는 그 상황에서도 아무런 몸부림을 칠 수가 없었다. 나는 부유층도 아니며 그저 일개 알바생일 뿐이니깐.
사장님 또한 내 뺨을 세게 내리치셨다. 아까 맞은 곳에 또 맞으니 뺨이 얼얼했다. 입술은 또 터져 피가 새어나오는 것 같았다. 사장님은 내게 뭐라고 꾸짖으셨지만 내 귀엔 아무것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냥, 이 세상이 멈춘 것만 같았다. 아니, 내 세상은 원래부터 멈춰 있었다. 나는 그저 죄송하단 말 한마디와 고개를 숙인 뒤 내 자리로 돌아갔다. 그곳엔 여전히 아까 팔릴 뻔했지만 팔리지 못 한 아이가 앉아 있었다. 그 아이는 다른 아이들처럼 13살도 채 되지 않는 나이에 모든 공부를 완벽히 해냈다. 그러나 그 아이가 S급이 아닌 A급인 이유는, 그래서 버려진 이유는 겨우 체육 하나만 못 한다는 것이었다.
그 아이도 다른 아이들처럼 체념한 듯 보였다. 벌써부터 마음속에, 그 아이의 세상에 가뭄이 찾아온 듯 보였다. 이런 아이들은 지금껏 많이 봐 왔었는데, 유독 그 아이에게만 관심이 쏠렸던 건 그 아이가 팔려간 내 동생과 닮았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그 아이에게 다가가 쭈그려 앉은 뒤 눈높이를 맞췄다. 가까이서 본 그 아이의 눈은 여전히 가뭄을 담고 있었다.
“내 이름은 정호석이야. 넌 이름이 뭐니, 꼬마야?”
“…”
역시나 그 아이는 마른 침묵을 지켜갔다. 예상했던 반응임에도 어쩐지 어색해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러자 그 아이가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여전히 아이의 눈에는 가뭄이 가득했다.
“……아저씨는, 지금 이 상황이 이해가 돼요?”
“…”
예상치 못 한 대답에 나는 급작스런 침묵을 이어갔다.
“아저씨도 지금 이 상황이 즐겁잖아요. 공부는 우리만 하면 되는 거잖아요. 우리가 미래라면서 떠넘기면 그만이니깐. 그러면 책임 따위 안 져도 되니깐. 안 그래요, 아저씨?”
“…꼬마야.”
“됐어요. 아저씨도 저들과 똑같잖아요. 똑같으니깐 저들 밑에서 일하고 있는 거겠지. 어른들은 다 이기적이야.”
저들과 똑같다. 나는 그 말에 반박할 수도, 억울해할 수도 없었다. 그 말이 맞았으니깐. 허나 나는 저들에게 공명하는 건 아니었다. 그저 내 생존 방식이었을 뿐.
어느 날부터인가 대통령이 바뀌면서 아이들을 사고 파는 기괴한 제도가 생겨버렸다. 우리 아이는 공부를 너무 못 해요, 라는 말만 한다면 그 사람의 자식은 바로 감옥으로 끌려가 공부에 집중해야 했다. 그 어떠한 처벌이 가해져도 부모는 좋아했다. 그것을 말리는 사람 따위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그 처벌을 받는 당사자들만이, 학생들만이 저항했다. 그러나 그 저항이 영향이 갈리가 없었다. 힘없는 학생들의 저항일 뿐인데, 그 누가 들어주랴. 그때부터였다. 학생들이 체념하기 시작한 건. 그리고 점점 자신의 목숨을 끊어가는 학생들이 전보다 더 많아지기 시작한 건.
“아저씨, 아저씨는 어렸을 때 뭐 했어요?”
“…”
“아저씨는 태어날 때부터 어른이었어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한참을 침묵하고 있던 때에 동료 알바생이 다가와 말했다.
“A-1809번. 폐기 처분이다.”
“그게 무슨 소리야. 사람한테 어떻게 폐기 처분이란 말을 쓸 수가 있어? 그리고 저 아이한테는 이름이 있다고.”
평소에는 그저 흘려보냈던 말이었는데, 오늘따라 그 말에 억눌렀던 감정이 표출되었다.
동료 알바생은 내 말을 들은 척도 안 하며 다른 이들을 시켜 그 아이를 어디론가로 데려갔다. 아까까지만 해도 메말랐던 그 아이의 눈빛에 두려움이 서리기 시작했다. 그 아이는 가기 싫다고 발버둥을 쳤다. 그러나 그들은 냉정하게도 그 아이의 복부를 주먹으로 세게 내리쳐 고통을 호소하면서 발버둥치지 못 하도록 만들었다. 그 아이는 먹은 게 없어 위액을 토해냈다.
“이게 뭐 하는 거야…… 당장 그만두지 못 해??”
내 외침에 동료 알바생은 이상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왜 그래. 새삼스럽게.”
새삼스럽게. 그 순간 내 가슴은 쿵, 하고 내려앉았다. 그 아이는 끌려가면서도 내게 시선을 떼지 않았다. 도와달라는 몸부림이었다. 그러나 나는 외면했다. 내가 살아야 하니깐. 이것이 내 생존 방식이니깐.
“그만해.”
생존 방식. 무엇을 위한 생존 방식이란 말인가? 미래도 없는 이런 나라에서 과연 생존해 봤자 의미가 있을까.
나는 그들에게서 아이를 떼어냈다. 아이는 복부를 심하게 맞은 탓에 연신 기침을 해댔다.
“뭐 하는 거냐, 정호석.”
“그러게.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근데, 이건 아닌 것 같아. 아직 어린애잖아. 보호를 받아야 하잖아. 책임은 우리같은 어른이 지는 거잖아. 이들에게 떠넘기면 안 되는 거잖아.”
동료 알바생은 내 말에도 끄떡없었다. 그저 귀찮다는 듯 귀를 후벼팠다. 그러곤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하고 싶은 말은 다 했어?”
정말… 이 나라는 글러먹었구나. 그제서야 나는 망각했던 사실을 깨닫고야 말았다. 조국은 이미 애초부터 가뭄이었다는 걸.
황폐_마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