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집

우리의 페이지를 책에 새기다 後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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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쓸쓸한 가을 바람에 그의 눈물이 일렁인다.


말랑공 씀.




*본 글의 소재는 영광스럽게도 츄러슙 님께서 주신 소재입니다.




  따스함이 한 스푼 담겨 있었던 어제와 달리 오늘은 가을 바람에 쓸쓸함만이 담겨 있다. 주황빛 낙엽은 어제 다 떨어져 나뭇가지에 듬성듬성 낙엽이 남아 있다. 그러나 내게 듬성듬성 있는 낙엽 따위 중요하지 않다. 어제 분명 오겠다고 했던, 항상 이 시간대면 왔던 남준 씨. 남준 씨 생각만이 내 머릿속에 가득하다. 그도 그럴 것이 항상 왔던 시간대에 그의 흩날리는 베이지색 코트도, 시린 가을 바람과 함께 뚜벅였던 그의 발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나는 오늘도 주황빛 낙엽을 쓸며 그를 기다린다. 언제 올까, 두리번거리며. 그러다가 사장님께서 나오시며 빨리 쓸기나 하라고, 딴짓하지 말라고 나를 꾸짖으신다. 나는 그런 사장님의 말씀에 고개만 꾸벅 숙이며 죄송하단 말을 연신 내뱉는다. 그러면서도 드는 생각. 남준 씨는 언제 오실까.


  마감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도 남준 씨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그저 손님 없는 서점에 앉아있을 뿐이다. 카운터 앞, 창문 바로 옆에 의자를 놓고서. 창문을 바라보며 남준 씨를 기다린다. 흩날리는 주황빛 낙엽조차도 그의 베이지색 코트인 줄 알고 나가려다가 사장님께서 오시며 이제 그만 가도 된다고 말씀하신다. 오늘은 손님도 없고, 마감 시간도 다 되어 가니. 나는 조금만 더 있다가 가도 되냐고 물어 본다. 그러자 사장님께서는 그 대신 문만 잘 잠그고 가라고 말씀하신 후 퇴근하신다. 나는 그렇게 서점에 홀로 남겨져 남준 씨를 기다린다.


  마감 시간이 지났는데도 남준 씨는 보이지 않는다. 오늘은 안 올 건가 보네, 아쉽다, 거리며 갈 준비를 하려는데 멀리서 베이지색 코트가 흩날리는 것이 보인다. 이번에도 낙엽이려나, 싶은 마음에 큰 희망은 갖지 않는다. 그러나 가까이서 보니 남준 씨다. 그토록이나 기다리던 남준 씨. 나는 밖에서 우뚝 서 있는 남준 씨에게 반가워하며 다가간다.


  “남준 씨!”


  내가 그에게 다다를 때즈음 그는 나를 발견하더니 참고 있었던 것 같은 눈물을 또르르, 하고 흘린다. 그의 입술은 눈물을 참느라 많이 깨물었는지 피가 고여 있고, 그의 눈은 눈물을 머금고서 한없이 충혈되어 있다. 나는 너무 놀라 그의 눈물을 손수건으로 닦아 주며 우선 서점 안으로 들어오라고 말한다.


  창문 너머에는 시린 가을 바람이 지나간다. 서점 안에는 그의 흐느끼는 소리만이 울려퍼진다. 항상 내게 다정한 웃음만을 지어 줬던, 보조개를 품고서 따뜻했던 그의 얼굴이 오늘은 쓸쓸해 보인다. 마치 오늘의 시린 가을 바람같다. 가을 바람은 그의 마음을 대변해 주듯 더욱 시리게 불어온다.


  “……무슨 일 있었냐고 안 물어 봐요?”


  “남준 씨가 먼저 말하기 전에는 물어 보고 싶지 않아서요. 그리고 혹여 그 질문이 남준 씨의 상처를 덧나게 할까 봐.”


  “…정말 다정한 것 같아요, 다희 씨는.”


  “제가요? 저는 남준 씨가 훨씬 더 다정하다고 생각하는데.”


  “……있잖아요, 다희 씨.”


  “네. 남준 씨.”


  “잠시 제 이야기를 해도 될까요? 어디에 할 곳이 없어서…”


  “그럼요. 얼마든지 해도 돼요.”


  “음… 어디서부터 말을 해야 하나…”


“…”


  그를 위한 깊은 침묵. 그는 내 침묵에 잠시 생각할 시간을 갖더니 말을 하기 시작한다.


  “저는 그저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었어요. 잘못하면 혼나고, 잘하면 칭찬 받고. 어떨 때는 다정하시고 어떨 때는 엄격하신 어머니와 아버지의 밑에서 자랐었죠.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께서 사업이 망하시면서 알코올에 중독이 되기 시작하셨어요. 그러면서 가정에도 소홀하시고 그러다가 어머니와 제게 폭력까지 휘두르셨어요. 그 다음 날에는 아버지께서 술에 너무 취해서 그러셨다며 울면서 사과하셨지만요… 이게 참… 이상한 게 분명 화가 나고 그 사과를 믿을 수가 없는데도 저를 보니까 아버지를 용서하고 있더라구요. 한 번은 실수할 수도 있지, 라면서요. 왜 그랬는지… 저도 모르겠어요. 그러면서 아버지의 폭력은 갈수록 심해지시고 어머니께서는……”


  그는 말을 하다 말더니 울먹인다. 그래도 말은 해야겠는지 새어나오는 슬픔을, 눈물을 머금고서 말한다.


  “투병 중이시다가 어젯밤에 돌아가셨어요…”


  “…남준 씨한테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


  남준 씨는 그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푹 숙이고는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낀다.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눈물을 흘려보낸다. 그러면서도 그는 남을 배려하겠다고, 나를 배려하겠다고 죄송하단 말을 연신 내뱉는다. 죄송하다고, 괜히 이런 감정을 호소해서 죄송하다고. 나는 그런 그를 그저 토닥여 주며 괜찮다고 말할 뿐이다.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떤 말을 하든 그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고 그의 귀에 잘 안 들어올 수도 있고 무엇보다도 지금 그에게 필요한 건 위로의 말들이 아닌 괜찮다는 말 한마디, 그리고 따뜻한 토닥임인 것 같기에.


우리의 페이지를 책에 새기다_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