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 피아노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정적을 깨고 들어온 건 오롯이 한 사람 몫의 박수 소리뿐이었다. 피아노를 친 당사자였다. 한 음 한 음 정성을 담아 건반을 누른 것도, 박수 소리로 연습실을 울리게 만든 사람도 그 남자였다. 마냥 좁지만은 않은 연습실은 어쩐지 아주 넓어보였다. 있어야 할 사람이, 당장 눈앞에 보여야 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어디로 간 건지는 아무도 모른다. 처음에는 너무 힘들어서 그만둔 거다,라는 말이 오갔고 연락이 아예 두절됐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는 도망을 간 거다,라는 소문이 생겼다. 시간이 좀 더 지난 후에는 자살했을 거라는, ···됐다. 이 이상 더 생각을 했다가는 저가 미칠 지경이니까.
"승철아, 곧 12시인데 몇 시에 들어가려고 아직까지 연습실이야."
"..아, 지금 정리하려고 했습니다."
실장님 말씀에 전자 피아노 코드를 뽑고, 선을 정리하고, 어중간하게 누워있는 기타도 도로 세웠다. 연습실 불을 끄고 문을 닫기 전 피아노를 한 번 더 돌아봤다. 이게 3번 연습실만 사용하는 이유였다. 건반 하나가 소리가 잘 나지 않는다며 웃던 너도 유독 이 피아노만 사용했었지. 언제 턱 끝까지 올라온 건지 모를 한숨을 참았다. 이제 놓아줄 때가 됐는데. 1년 하고도 4개월이나 지났는데도 연락 하나 없는 너는 사실 어딘가로 증발해버린 건 아닐까, 아주 가끔 답지 않은 생각을 하곤 한다. 자살이 아니라, 증발해버린 거라고.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너를 이런 식으로 사라져버린 것이라 믿고 싶었다. 신이 어쩔 수 없이 데려간 것이라, 너도 나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고.
"승철이 형 오늘 청소 당번이래~"
"벌써 일주일이나 지났다고?"
빗자루를 들고 다가오는 권순영의 말에 또 시간이 흘렀음을 실감했다. 곧 생일인데. 고민했다. 네가 어떤 케이크를 좋아했더라. 무슨 선물이 갖고 싶다고 했었더라. 손으로 턱을 짚으며 머리를 굴렸다. 네가 없는 네 생일 파티를 준하기 위해서. 초라하기 그지없어도, 기뻐해 주리라.
"..생일 축하해."
볼품없게도 조각 케이크 하나에 초 하나. 마음속으로 노래를 부르고 작게 후 불어 초를 꺼트렸다. 합숙하는 다른 친구들이 모두 잠든 뒤였다. 네가 없는 동안 나는 또 성장했고, 드디어 데뷔 멤버가 정해졌다. 네가 그토록 바라던 데뷔였는데, 여기 너는 없다. 생각하다 보니 헛웃음이 터질 뻔했다. 그토록 간절하던 건 분명 너 아니었나? 그런데 왜 너만 빼고 다 있는 거지. 그러다 보니 소원을 빌게 되었다. 너 없으니까 내가 대신 빌어주는 거야, ..날 위해서.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났으면 좋겠어. 당장이 아니라도 좋아.'
'···보고 싶어.'
오랜만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정말로 그날 꿈에 네가 나왔기 때문이겠지. 화려한 금발에 적당히 꾸민 듯한 차림에 잔잔한 사랑 노래를 읊조리는 너는 예전에 네가 말해줬던 자신이 되고 싶은 모습 그대로였다. 매일 똑같은 검은 머리가 칙칙하다며, 하루 종일 입는 운동복의 땀 냄새가 지겹다며. 그래, 그랬었다.
그런데 내가 바랐던 건 꿈같은 게 아니라,
"···그냥 너였어. 정한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