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 여주야..너... 이게 무슨...."
철컹..!
석진이 손을 흔들자 손목에 차가운 것이 가로막힌다.
당황한 듯한 석진이 재차 손을 흔들었다.
"대한제국의 경찰이 이래도 되?"
"김석진. 그래서 너, 나한테 잡히지 말랬잖아. "
내가 호가롭게 김석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 날을 얼마나 기다려왔던가.
이 새끼는 빈틈이 하나 없어서 잡는 것도 쉽지 않았다.
미인계를 써도, 술을 먹여봐도... 친하기 지내려고 접근해봐도 아무것도 잘 되질 않았는데...
그렇다가 알게 된 것이 이 인간이 늑대인간이라는 것이었다.
집안의 순혈을 유지하기 위해 아무나와 결혼은 물론 연애하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으며, 공부는 오질나게 잘해허 학창시절부터 나의 자존감을 밑바닥부터 박박 긁어놨다.
그라서 접근하고 미행하고 알아낸 것이 결국은 그가 늑대인간이어서 그렇다는 거였다.
평상시에는 제법 어리숙하고 순진한 모습으로 잘 숨기고 다녔지만, 이제 나의 집착은 광기가 되어 이 인간을 잡고야 말겠다는 집념이 되어버렸다.
근방에 애들도 쫙 깔아놨으니 설령 저 차가운 수갑이 풀린 다 한들 놓치진 않을 것이다.
곧 달이 떠오른다.
창살 사이로 내리 쬐는 달빛을 맞으며 김석진은 늑대로 바뀌겠지..

지금 현행법 상 늑대인간을 잡는 것은 합법.
최상급 늑대인간으로 추정되는 이 인간이 늑대인간이아는 것만 증명할 수 있다면 저 수많은 지하 감방에 당장 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수만 있다면, 넌 이제 내 것이 되겠지. 지하감방에 가둘 수만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 되었던 생사는 내 손 안에 있으니까...
그만큼 나는 널 어떻게든 갖고 싶었어.
이건 정말 나답지 않은 행동이었지만, 널 가질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못 할까...?
군부에 같이 근무하던 시절 부터 수많은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넌 나의 마음엔 전혀 공감하지 못하겠지. 나는 얼마나 죽기 살기로 공부해서 또 훈련해서 이 자리까지 온 건지 너는 모르겠지.
그렇다가 홀연히 간부시험을 앞두고 니가 사라지고 나니, 어찌나 참담하던지...
그때야 깨달았던 것 같다.
김석진이 내 인생이 어떤 의미였는지.
아름답고 똑똑하고 군인답지 않게 상냥하기까지한 김석진.
군부 제국에서 간부가 되는 것은 절대적인 권력을 쥐게 된다는 것. 강력한 라이벌이 사라지면서 생각보다 너무 쉽게 이 자리에 올라버렸지만, 그렇게 원하던 자리였음에도 그가 사라지고 나니 의미가 없게 느껴졌다.
"그래서 눈에 띄지 않게 사라져줬잖아.
그런데 뭣하러 이런 짓을 벌려?"
여전히 어리숙한 척하며 손을 흔들던 그가 말한다.
언제 본색을 드러내려나.... 나는 석진에게 천천히 다가가서 다리한쪽을 위압스럽게 그의 다리 위에 올려 살며시 짓밟았다.
"생각해보니까, 난 너 없으면 안되겠더라고..."
석진이 살짝 미간을 찌푸리는 것이 보였지만 뭐 상관 없다. 그는 사실 이런 것 쯤에는 아무렇지 않은 늑대인간이라고...!
. . .
기다리던 시간이 되고,
드디어 쇠창살 사이로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리숙한 표정으로 잡혀와서는 어설프게 수갑을 철컹거리던 녀석의 행동도 잠잠해졌다.
그런데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하울링은? 털은? 아니 왜, 몸이 변하지 않아....?
"어라..?"
"중장님! 어떻게 할까요...?"
"잠깐만, 뭔가 착오가....! 다들 나가있어봐..!"
부하들을 모두 물렸다. 모두 나가게 한 뒤 나는 털썩 주저앉았다.
아 이거... 체면이 말이 아닌데...
그게 문제가 아니고 김석진! 늑대로 왜 안 변하는 거냐고오!
부하들이 나가고... 잠시의 정막..
투투툭...!
수갑이 끊어져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의자가 움직인다.
달빛을 따라 하얗게 빛나는 석진...

"너 바보 아니야....?"
"응....?"
"말했잖아, 나 최상급이라고..."
"어...그, 그랬지..? "
"나 모습 안 변해... 안 변한다고."
"아...."
"휴우..."
걸어서 다가온 김석진이 깊은 한숨을 쉰다.
"내가 어떻게 널 피해 도망다녔는데, 이렇게 또 나타나냐..."
김석진이 내 머릴 쓰다듬는다.
..... 왜..?
"간부까지 만들어줬으면 알아서 살아야지,
왜 다시 나타나서 사람 마음을 들쑤시냐고"
"응..?"
"하여간 아무것도 모르지..?
내가 원래 가야했던 자리였는데...
이번에 너 데리고 도망 가면 나 진짜 우리 집 안에서 쫒겨나는데,
그래도 같이 갈래?"
찬란하게 빛나는 달빛 아래의 그 모습이 너무 좋아서,
사실 내가 너에게 집착하던 게, 너를 가두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냥 보고 싶어서였구나 싶어서,
나는 네가 내민 그 손을 덥썩 잡아버렸다.
"너 진짜 이거 다 버리고 나 따라 올 수 있어..?"
석진이 내 가슴에 달린 수많은 계급장과 훈장들을 가리켰다.
"어. 난 너만 있으면 되"
이번엔 내가 어리숙하게 빙구처럼 웃는다.
그런데 진짜다. 난 너만 있으면 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