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파란 서리가 되어 너에게로(2)
도시 구획이 짜여진 도로만 있는 외곽 지역. 저 멀리서 굉음을 내며 오토바이 한대가 달려가고 있었다.
얼마전 돌연변이 크리쳐들이 나타나면서 이곳은 위기 2단계지역으로 바뀌었고, 그로인해 예정되어있던 신도시 개발이 취소되었다. 신도시 개발의 호재를 맞아 주택지구 근처에 드문드문 상가건물을 세웠던 사람들은 건물을 팔 수도 그렇다고 이 곳에 살 수도 없어서 빈 건물울 남겨두고 떠났고 세워지다 만 빈 건물들이 유령도시처럼 비어있었다. 저 멀리, 직영점으로 일찍이 매장을 냈던 한 패스트푸드점 건물만이 마치 망망대해 가운데 등대처럼 언덕 위에서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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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크리쳐들이 처음 나타나면서, 인류에게도 큰 변화가 있었는데, 그것은 센티널과 가이드의 출현이었다. 초기에는 센티널과 가이드들도 이와 비슷한 돌연변이로 오인받으면서 한때는 박해받기도 했지만,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센티널과 가이드들로 이뤄진 방위대를 구성하고 이들이 도시를 안전하게 지키면서 이제는 삶에서 없어지면 안될 영웅이 되었다. 독특한 공격 이능력을 지닌 센티널들과 이들의 이능력을 회복시켜주는 가이드들은 팀을 이루어 활동했으며, 이들은 능력에 따라 등급을 나누어 팀을 구성하여, 높은 등급일 수록 더 어려운 임무에 투입되었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S등급이상의 강력한 능력과 뛰어난 외모나 독특한 개성을 갖춘 팀들이 나타나면서 이들에 대해 마치 연예인처럼 팬덤이 형성되었으며 국가에서도 이들을 홍보활동 등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특히 반정부 군에서도 자신들의 구역에서 나타난 센티널과 가이드들을 문화적 소재로 활용하면서 경쟁을 하듯 서로의 체제나 사상을 홍보하기 위해 양측 모두 센티널과 가이드를 활용하고 있었다.
석진도 원래는 강력한 팬덤을 가진 가이드 중 한 명이었다. 그 일을 겪기 전까진....
이후 석진의 목표는 하나. 반정부군, 정부군 양측에 속하지 않은 유일한 중립 진영인 라이더스 진영에 소속되는 것. 지하자원이 풍부한 지역을 차지한 반정부 진영과 산업이 발전한 정부 진영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는 것이 라이더스 진영이었다. C, B 등급은 말그대로 그 지역의 배달부와 같은 역할을 했지만 A등급부터는 달랐다. 서로의 필요에 의해 안정적인 물류가 필요했던 양측은 A등급 이상부터는 치외법권을 인정하며 이들이 안정적인 교류를 구축할 수 있도록 도왔다. A급이상의 라이더스가 되면 각 지역에 속한 시민권은 박탈되며 모든 자료도 소각된다. 라이더스라는 새로운 중립국 시민이 되는 것이다.
석진은 정부군이 지긋지긋했다. 정부와는 관계 없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끼이이익...
석진은 거칠게 오토바이를 세웠다. 윤기가 흐르는 검은 가죽바지와 그에 딱 어울리는 검은 가죽자켓, 꽤나 인기가 있었던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까 시커먼 바이크 헬멧 까지 쓴 그의 모습은 마치 어둠과 하나가 된 것 같았다.
도대체 어째서 이 패스트푸드점이 계속 운영되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이곳은 라이더가 아니면 다들 오기 꺼려하는 지역이었고, 이 상자를 배달하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임무에 걸린 점수는 무려 20점이었다.
아싸.. 이 점수만 채우면 이제 A등급이다...
석진은 오토바이에서 상자를 가지고 가면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패스트푸드의 문을 열기 전 이상을 감지한 석진은 잠시 심호흡을 했다. 가만보니 매장안의 분위기가 이상했다. 어쩐지 쉬울 것 같지 않더라니..
탕,탕!!!
커다란 굉음이 문을 뚫고나왔다.
총인가.... 혼잣말을 중엉거리며 석진은 문을 열었다.
"꼼, 꼼짝마...!!!"
카운터 쪽에서 커다란 장총을 들고 있던 남성이 쇠된소리를 질렀다.
"아, 저 말인가요...?"
천연덕스럽게 대답한 석진은 라이더 신분증을 보이며 대치중인 사람들 사이를 지나와 카운터까지 걸어왔다. 다행히 아직 부상자는 없는 것을 파악하자 석진의 발걸음에 약간 속도가 붙었다. 일이 커지기 전에 얼른 상자만 두고 떠나자는 심산이었다.
"죄송하지만 이걸 카운터까지 배달해달라는 의뢰여서요, 물건만 두고 바로 떠나겠습니다."
유유히 카운터까지 걸어온 석진은 가만히 상자를 내려놨다. 등 뒤 입구를 중심으로 왼쪽에 4명 오른쪽에 2명, 4명은 어른 두 명에 아이둘 즉 가족인 듯 하고, 오른쪽 두명은 왠지 가족과 관계없는 괴한 두 명... 수많은 전장을 다녀본 석진은 직접적인 전투와는 거리가 먼 가이드였지만, 기척을 느끼고 상황을 파악하는 데에는 재능이 있었다.
카운터에 있는 이 남자와 저 남자 2명이 대치중인 듯 하고, 일가족 네명은 테이블에 식사하던 것들이 있는 걸로 봐서는 운이 없게도 이 일에 말린 사람들인 것 같다. 그리고 카운터 뒤로 보이는 주방에는 누군가가 숨어 있는데, 저 괴한들과 관계 있는 건가..? 혹시 이들 중 센티널이 있는 것이 아닌지 궁금했던 석진은 걸어가며 살며시 방사 가이딩을 풀었다.
"빨리 하고 나가!!!"
사장인 듯한 카운터의 남성은 느릿하게 움직이는 석진을 향해 다급하게 외쳤다.
"네네.. 암요암요... 배달 완료 처리만 하구요.."
느릿하게 사진을 찍으며 석진은 방사 가이드를 계속 풀었다. 일반인들은 느낄 수 없는 가이딩의 기운. 긴장감 속에 모두 조용한 것으로 보아 아마도 홀에 있는 이들은 모두 일반인인 듯 했다.
아랑곳않고 뻔뻔하게 사진을 전송한 후, 임무완료 버튼을 누른 석진이 뒤돌아나왔다. 천천히 걸어나오는 도중 인질 처럼 잡힌 듯한 일가족들이 애절한 눈빛을 보내왔지만 석진은 관여하지 않기로 했다.
이번 임무를 빨리 완수하고 A급으로 올라가야해...!
현장을 무시하고 문을 닫고 나온 석진은 오토바이에 올라타고 심호흡을 했다.
주방에 있던 누군가는 아무리봐도 센티널인 것 같았다. 방사가이딩이 조금씩 흡수되는 것이 느껴졌으니까.. 정부군소속이려나..? 정부군이었다면 느낌이 불길한데? 아니면 이곳에 설마 반정부군이 숨어들었나? 하지만 굳이 먼저 정체를 드러내지 않으니까, 일단 넘어가야겠다고 석진은 생각했다. 더이상 정부군이나 반정부군에 관련된 일에 휩쓸리고 싶진 않았다.
라이더의 의무 중 하나는 자신의 임무 중에 다른 일에는 관여하지 않는 것. 그래서 아까와 같은 상황에서 라이더 신분증을 내민다는 것은 관여하지 않겠다는 의미도 되었다. 그것이 라이더스 진영이 정부군 진영과 반정부 진영을 자유롭게 드나드는 조건이기도 했다.
부아아앙....
다시 깊은 한숨을 쉰 석진은 거칠게 오토바이를 출발시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