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후엔 승자와 패자가 나뉜다. 먼저 끊은 사람이 승자, 계속 붙잡고있던 사람이 패자다. 너와의 마지막에서 난 패자였고, 그래서 더더욱 너와 나눠잡던 끊어진 끈을 놓을 수 없었다. 툭하고 떨어진 끈은 혼자 들고 있기에 너무 무거웠다. 내 손바닥엔 굳은살만 가득했다. 살과 피로 물든 끈은 가슴 한 구석에 넣어둔 채 하루하루를 그리워하며 지냈다.
그냥…그리움으로만.
어제 많이 아팠다면 애써 억누르려하지 않고 눈물로 흘려보냈다. 잘 듣지도 않던 너의 플리를 들으며 그리움을 그리움대로 씹어 삼켰다. 그런 날들이 하루 하루 늘어나니까, 그리움도 감정이라는 보물함 속에서 하나 둘 썪어가기 시작했다.
박지민
‘요즘 어때?’
갑작스럽게 온 연락에 다시금 심장이 움직였다. 다 토해낸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그냥 그저 그런 회피였던걸까, 온 갖 잡생각에 그의 연락을 쉽게 볼 수 없었다. 난 휴대폰을 덮고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다시금 꺼내 본 추억은 금세 내 기억을 미화시켰다. 불안정했던 기억은 어디에 두었는지조차 모르게 함께 웃고 떠들던 사소한 기억들이 푸릇하게 자리잡는다. 얼마나 지났을까, 폰을 꺼내들어 지민의 연락을 확인했다.

‘그래, 맞아, 내가 졌어, 내가 그 날 했던 말 기억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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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사랑한걸 후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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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쯤이면 그 말이 잊어질까, 수없이 생각했다. 후회가 어떤 뜻을 담아내는지도 찾아보고 그 말을 곱씹고 곱씹어서 씹어 삼켰다. 상한건지, 내가 부정하는건지 항상 난 그 말을 삼키고선 체했다. 매일 속은 타들어가기만 했다.
‘겁이 났어, 언젠가 너가 떠나갈까봐. 지금 우리가 우리인게 나중에는 독이될까, 해가될까. 너랑 웃으면서 행복할때면 속으론 그런 생각을 했어. 행복했던 기억이 더 많아서.. 그래서 도망쳤어. 널 두고..’
우린 매번 뒤틀렸다. 낮과 밤이 달랐고
‘아직 회사야?‘
21:46
지민
’응. 먼저 자. 오늘 회식있어‘
22:37
내가 한참 좋을때면 넌 힘들었다.
”지민아, 이거 먹고 어디갈까?“
”시간도 벌써 7시네. 그만 집으로 헤어질까?“
조금 났던 상처가 어느덧 아물지도 못 하고 크게 베어있었다. 그 만큼을 새살이 돋지도 못 하고 더 커지기만 하고 있는데, 난 억지로 밴드만 덕지덕지 붙여가며 스스로 다독였다. 내가 알던 지민은 이런 사람이 아니였다는걸 알기에 더욱이 그의 손을 놓을 수 없었다. 상처는 커져만갔다.

‘나 이제 그거 못 해. 아니 안 해. 너가 떠날까봐 내가 먼저 떠났는데, 그거 못 할 짓이더라. 사랑을 덜 주면 마음이라도 편할 줄 알았는데 덜 준 만큼 불행하더라. 나 못 하겠어. 내가 미안해.. 미안해.. 여주야..’
그렇게 먼저 떠난 사람이 울었다. 처음 볼 땐 듬직한 어깨를 하고 나보다 큰 사람인 줄 알았는데, 지금은 그도 그냥 한 인간에 불과했다. 그저 그런 사람이였다.
쾅-쾅-
현관문에서 소리가 났다.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게 조심스러운 소리였다. 난 왠지모를 기대감에 문을 조심스럽게 열어 밖을 들여다보았다.

“이여주, 나 좀.. 나 좀 봐줘”
그의 얼굴이 내 어깨에 툭 하고 떨어졌다. 코를 훌쩍이며 그의 숨은 가빠져왔고 이내 곧 일어나 자신의 얼굴을 비비적 거렸다.
“..갑자기 와서 이게 뭐 하는거야“
”연락을..연락을 안 보잖아..입으로, 말로 전하면 들어주기라도 할까..“
분명 그의 입술을 떨리고 있었다. 내 눈을 바라보는 그의 눈은 내 시선에 따라 맞춰 따라오고있었다. 어딘가 불안한 강아지마냥 아무것도 못 하고 손만 꼼지락거렸다.
”나 못 해..미안해..다 변명처럼 들릴 거 알아, 갑자기 연락하고, 찾아오고, 이렇게 울어버리고..못 난거 알아.”
“근데 나 못 난거 알고..알고도 봐줘..한 번만..봐줘”
모든게 끝난 축제처럼 허무했다. 주변은 정리를 하고 있지만 난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간 광장에 홀로 남겨진 기분이였다. 조용하고 고요한 나 하나 남겨진 광장은..금방 아침이 오면 다시 사람들이 찾아온다. 다시금 금방 뜨거워진다.
“보고싶었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