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모음z:P

너의 전화는,





우린 깊었다.

서로가 서로를 잘 알았으며, 그걸 알아 누구보다 오래 붙어있었다.



.
.
.


우린 달랐다.

서로와 서로가 반대였으며, 그 사실을 누구보다 제일 잘 알고 있다.














8년. 초등학교 장난스레 시작했던 우리의 연애는 1년, 2년을 지나가면 갈수록 서로에 대한 마음이 깊어졌다. 중학교 3학년 때는 다시, 정확히 우리의 사이를 정의했고 우리는, 너와 나는 이 사이를 여전한 연인 사이라 정의했다.


근데 우리,

그때 연인 사이가 아닌 친구라고 정의했다면.

지금 너, 나 둘 다.

안 아프지 않았을까.


대학교. 그 누구보다 빠듯하게 공부하고 일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곳. 너와 나는 같은 대학교지만 서로 다른 과에 들어갔다. 남준이 너는 시끄럽고 정겹다고 유명한 패션디자인 학과에 들어갔고, 난 그저 재미없기로 소문난 영문과에 들어갔다.




20대 초반에는, 서로 바쁘니까. 새로운 환경이 신기하면서도 재미있을 테니까. 서로를 향한 연락이 잠잠했다. 난 그게 맞는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기다리면 네가 다시 연락해 준다고 믿었다.


"준아."

"어."

"우리 요즘 너무 안 만났지 않아?"

"뭐, 갑자기 그래."

"... 어?"

"우리 이러는 거 한두 번 아니었잖아."


이렇게 서로 얼굴 안 본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네가 말한다. 그럼 더 자주 보는 게. 그게 맞는 거잖아. 왜 넌 네가 당연하듯이,


"여주야."

"...."

"나 바빠."

"그건 나도,"

"나 한 번도. 너랑 사귈 때 혼자 놀러 간 적 없잖아."

"...."

"나도, 너도 이제 성인이야."


우리 이제 서로 이해해 줄 나이잖아. 응? 퍽 다정한 그의 투와 말에 멍해졌다. 맞다. 남준이는 날 두고 단 한 번도 혼자 어딜 간 적이 없다. 그럼 이제 어떡하라고. 이제 자주 보지 말자는 얘기인 건지. 나도 놀러 다니라는 거야? 너처럼?


"너도 이제 스스로 할 수 있는 나이까지 먹었어."

"...."

"나 약속 있어서 가볼게. 사랑해. 다음에 보자."


준아. 네가 그렇게 말하는 거.


널 놓아달라고 하는 것 밖에 안 보여.
















생각했다. 난 널 가둔 감옥이었는지. 8년 동안, 그 긴 시간들이 모두 날 위해 존재했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그 시간들은 우릴 위한 시간이었는데,


"나 한 번도. 너랑 사귈 때 혼자 놀러 간 적 없잖아."


그 말만 떠오르면 내 말이 다 틀린 거 같아. 다 내가 이기적이었던 거 같고, 너의 모든 걸 내가 가두고 있었다고 생각돼. 잠시 고민하다 너의 연락처를 눌렀다. 손에 익은 듯이 자연스레 눌리는 너의 번호.

연결음이 길다. 평소와는 다르게 많이, 길다. 제발. 준아. 받아봐. 하지만, 얼마 못 가 꾹 잡고 있던 휴대폰이 손에서부터 추락한다. 딱딱하고 로봇 같은 여자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1초. 그 잠시의 시간에 난 들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친구."


날 친구라 정의한 너의 목소리를. 검은 화면 위로 툭툭 떨어지는 눈물. 밉지만, 싫지만, 증오스럽지만 이젠 인정해야 한다.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사실.

넌 내가 권태롭다.

길고 긴 8년의 연애. 권태롭다. 그 단어가 우리에게 찾아왔다.
















그날 이후로. 난 더 이상 연락하지 않았다. 하지 못했다. 내 연락이 끊키자 하나둘씩 바뀌어가는 우리의 흔적들. 내 사진 대신에 친구가 찍어준 사진에, 우리가 맞춘 커플링이 보이지 않았다.

정말, 내가 널 놓아줘야 하는 순간이 온 걸까.

난 널 놓기 싫은데. 끝까지 매달리면서 울고 싶은데,


우리 이제 서로 이해해 줄 나이잖아. 


... 아니야. 이별이. 이젠 이별이 맞는 거야.

끝나는 게 맞는 거야.

머릿속으로 헤어져야 한다고 몇 번을 되새겼지만, 정작 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 머리만 정리긴 됐으니, 바로 실행으로 옮기는 것도 웃기긴 했다.

정적. 그리고 요란스럽게 울리며 정적을 깨는 벨 소리. 심장이 쿵쾅거린다. 평소와 같은 설렘이 아닌 불안함. 이걸 받으면, 무슨 일이 생길 거 같은. 그런 초조함. 너에게서 온 전화가 반갑지 않은 건 처음이다.


"...."

-"여보세요."

"어, 준아."

-"여주야."

"...."

-"내가, 생각을 해봤는데."

"ㅈ, 잠시만 나 강의 있어서,"

-"없잖아."

"...."

-"... 여주야. 우리 이 정도면 많이 만났어."

"아니야, 난, 난 아직 너랑 하고 싶은 게,"

-"그만하자."

"...."

-"지쳐. 너랑 있는 거 지쳐."


끊을게. 우리 이걸로 끝내자. 그 말에 이성을 겨우 붙잡아 덜덜 떨며 물었다. 난, 널 가뒀어?


"넌 나랑 있어서, 자유롭지 못했어?"

-"응."

"...."

-"자유롭지 못했어."


잘 자. 8년 동안, 고마웠어. 

잠시만, 준아.

뚝. 대답은 되돌아오지 않았고, 또다시 숨 막힌 정적이 찾아왔다. 정말, 숨이 막혔다. 안정적인 숨을 찾으려 해도 눈물만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다시 잡아야 했다. 난 정말 네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니까. 살아갈 의지가 없어지니까.

제발 받아봐. 준아. 미친 사람 한번 살려준다는 셈 치고 전화 좀 받아봐. 






준아.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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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두지 마.
















헤어진 지 일주일.

한마디로 정리하면 괴롭다. 네가 무척이나 보고 싶지만 얼굴을 보면 울어버릴 거 같아서. 문자라도 하고 싶지만 네가 날 더 미워할 거 같아서. 바보같이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 바보 같이 아무것도 못하는 내가 답답해 괴롭다.

처음엔 잊겠다고 몸부림 쳤지만, 내 삶에서 지워버리려고 했지만, 결코 우리가 함께한 시간은 짧지 않았기에.

그 시간이 전화 한 통으로 끝났다는 게 허무하기도 했다. 우린 고작 전화 한 통으로 끝날 사이가 아닐 텐데. 정말, 아닐텐데.


지잉.


"...."


김남준.

심장이 멈추었다. 김남준. 너에게 전화가 왔다. 

새벽 2시. 잘못 누른 걸까. 아니면, 다시 만나자고 연락한 걸까. 이유가 무엇이든 너희 목소리를 듣고 싶지만, 들으면 눈물이 날 거 같아서.

그래. 넌 실수한 거일 거야.

그렇게 말해야. 그렇게 생각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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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제발 여주야..."




내가 살 거 같았다.

내가 죄책감을 가지지 않을 수 있을 거 같았다.
















헤어진 지 한 달.

헤어진 후에 처음 만났다. 너를. 

예전과 그대로인 모습. 나만, 나만 망가진 거 같았다. 저 멀리서 너를 바라볼 때. 나만 무너진 거 같아서. 고개를 떨궜다. 거친 손을 매만지며 생각했고, 정리했다.

남준아.

김남준.

네가 그 모습을 보여서.



"야, 저기 여주 아니야?"

"뭐...?"



멀쩡해서 다행이야.

덕분에 난 비로소 느꼈어.

난 정말.



"여주야,"

"잘 가."

"...."



너의 한 감옥이었구나.

이제,



"우리 다시 만나지 말자."



널 놓을 수 있겠구나.















헤어진 지 한 달하고 열흘.

너를 정리하고, 난 꽤 살고 있다. 열심히 잊으려 살고 있다. 죽어라 일해서, 널 차차 지우고 있다. 정말, 새벽에 그 전화 거 오지 않았다면. 집으로 되돌아가는 길에 오지 않았다면.


[ 발신자 : 김남준 ]


정말, 잊을 수 있었을텐데.

그래도 난 저번처럼 울지 않았다. 담담한 척 버튼을 눌렀고 너의 목소리를 기다렸다.


-"... 여주야."

"응."

-"... 미안해."

"...."

-"넌, 넌 날 가두지 않았어."


내가 널 너무 사랑해서 같이 있었던 건데.

그땐 말이 헛나왔나 봐. 여주야. 너 없으니까.


-"아무것도, 못 하겠어."

"...."

-"제발, 나 좀 도와줘."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어.


너의 흐느낌이 전화 건너편으로부터 들려온다. 아아, 남준아. 왜 이제서야 그래. 왜, 널 끝내려고 할 때 이래.

남준아.

우리 많이 서툴렀어. 이러는 것도, 네가 처음이라 그래. 그니까 우리 서로. 서로가 아팠던 만큼 딱 아프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만큼만 아프고.


"이제, 우리 그만하자."

-"여주, 여주야."

"우리 잠깐만 아프자 남준아."


이제 마지막이야.


"이제 그만 보고, 그만 말하고."

- "...."

"... 그만. 이번 생엔 다 그만하자."


이번 생은 좋지 않았던 너와 나였던 거야.

다음 생에.


"다음 생엔 성숙한 둘로 만나서 꿈꿨던 거 다 이루자."

- "...."

"...."

-"그래.."

"응."

"... 사랑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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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해주는 거야."

"마지막으로 안아도 될까."

"응."


남준아.

우리 정말 다음엔.

12살, 20살의 우리가 아닌.

조금 더 성숙한 우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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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나는 거야.


사랑해 남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