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동—댕—
"우리가 함께라면 때로는 힘들더라도 꼭 이겨낼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게 우리가 함께 하고 있는 청춘이지 않을까요?"

"야야 밥 먹으러 가자"
"나 다른 애랑 먹기로 함 ㅋㅋ
이따 봐"
"오케이 맛있게 먹어라"
급식실로 향하는 연준에게 손을 흔들어 준 후
텅 빈 복도를 지나 1층 방송실로 향했다.
.
.
.
"오! 여주 언니! 어쩐일로??"
"어 ㅎㅎ 그냥 놀러온거 ㅎㅎ
얼렁 밥 먹으러 가"
"웅!!"
방송부 애들이 다 빠져나간걸 살핀 뒤
조심스럽게 방송실 문을 닫았다
"채수비인~~"

"여주야앙"
"너 잘하더라 ㅎㅎ 멘트도 완젼 감동적이어써"
"히히 내가 쓴 문구거든~"
"ㅎㅎ 잘했네ㅔ 배고프지??"
"우웅...쪼금?"
나에게 달려와 안긴 수빈이의 품속에서
꼼지락 대며 몰래 챙겨온 빵을 들어보였다.

"오오 머야???"
"너 급식줄 놓쳤다고 안 먹을게 뻔해서 ㅋㅋ"
"고마워ㅓㅓ 근데 너는...?"
"안 먹어도 돼 ㅋㅋ"
빵을 반으로 나눠
어떻게든 내 입에 넣으려는 수빈을 피하려
그 작은 방송실을 헤집고 다녔다.
"..찮다니깐"
"머거바ㅏ~~"
"아니ㅣ 진짜 갠찬타니까앙"
"아야 뭔소리야?"
"몰라 스피커에서 나오는거 같은데?"
"여주선배 목소리 아냐??"
"남자는 누군데???"
"최연준 선배인가??"
"아까 연준 선배는 급식줄 서있던데??"
"뭐야 누구야...?"
.
.
.
5교시 시작 10분 전
방송실에서 나와 조용히 교실로 향했다.
교실에 도착하자마자 담임선생님께서
날 교무실로 끌고 가셨다.
5분 정도 앉아있으니
수빈이도 교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얘들아...아까 방송 너희니?"
"...네?"
"아까 방송이 잘못 송출됐는데
너희 목소리 같길래"

"...얼마나 송출됐는데요...?"
"...5초정도?"
"...."
망했다...
수빈의 표정을 보니 멍해보인다.
...아 공개연애할 생각은 없었는데
워낙 관심 받는걸 싫어하는 수빈이었기에
더욱 걱정되었다.
"일단 곧 수업 시작하니 여주는 들어가고
수빈이는 잠시 남아"
"네"
어쩔 수 없이 입을 삐죽 내민 채
나 혼자 교실로 향했다.
교실문을 여니 수근거리던 아이들이
모두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최대한 아무렇지않은 척하며
내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어휴 조심좀 하지 그랬냐"
"...무슨 소리 들렸는데..?"
"에휴...꽁냥꽁냥 하는거 다 들렸거든?
누가 들어도 너랑 최수ㅂ.."
수빈이 이름까지 말하려하는
연준의 입을 잽싸게 틀어막았다.
...아무도 못 들었겠지?
"미쳤냐?"
"...ㅋㅋ"
"됐고 다음 교시 뭔데"
"수학"
"아 씨.."
서랍에서 교과서를 꺼내는 나의 이마에
주먹을 콩 박으며
진짜 걱정일지 모를 조롱을 한다.
5교시가 끝나기 10분 전
수빈이 조용히 뒷문으로 들어왔다.
많이 의기소침해진 모습이네...
많이 혼났나?
.
.
.

"야 집가자"
"응"
평소처럼 연준과 함께 하굣길을 올랐다.
평소와 다르게 다른 학생들의
시선이 느껴질 수 밖에 없었다.
그 목소린 누가봐도 나였으니깐...
"야..아까 연준선배 목소리 맞는거 아니야?"
"그니깐..저 둘이 같이 다니잖아"
"근데 둘이 왜 방송실에 있어?
연준 선배는 방송부 아니잖아"
"아 그렇네..."
"최수빈 선배 아냐? 그 선배 방송부잖아"
"야 그 선배겠냐
수빈 선배는 조용해서 여주 선배랑 어울릴리가 없지"
"아 그렇네"
"난 저 두 명이 대화하는것도 본 적이 없다"
다 들리거든..?
그래도 남자 목소리가 수빈이라고
특정이 되지 않아 다행인걸까
나와 집 방향이 같은 수빈도
우리 둘 뒤에서 다 들은 모양이다.
"암튼 저 둘 잘 어울리지 않냐?"
"연준선배랑 여주선배?"
"야...들리겠다 좀 조용히 얘기해"
"왜~ 맞으니까 둘이 같이 다니겠지"
순간 너무 연준이와 다녔나 싶은 기분에
괜히 몸이 움찔했다.
슬쩍 수빈이 쪽을 보니 수빈이도
많이 신경쓰이는 듯 보였다.
*****

"언제까지 숨길거냐"
"몰라...공개연애는 죽도록 싫어하는데
어떻게 밝히냐"
"에휴...
너네 사이에 끼어서 이용당하는것도 싫거든?"
"무슨 이용이야..."
"빨리 정리해 이거 어떻게든"
"..무슨 뜻이야"
"너 정리 안하면 그냥 내가 밝힌다고
너네 둘 사귀는거"
"하...미쳤냐"

"미친게 누군데
너랑 같이 다니지 말라고 하면서
자기는 아무것도 못하는 최수빈?"
"뭐?"
"하...나도 지치거든?
그니까 정리하라고"
답답해 미쳐버릴거 같다.
그때 골목의 끝자락에서
수빈이 오는게 보였다.

"뭘 정리해"
성큼성큼 걸어와 내 손을 확 잡아챘다.

"하..나 먼저 간다"
그렇게 연준이 떠나고
그 조용한 골목길엔 정적만이 흘렀다.
"...수빈아"
"..."
"나 손 아파..."
온 힘을 다해 꽉 지고 있는 수빈의 손이
아프게만 느껴졌다.

"...미안해"
"...응?"
"답답하게 해서..미안해"
"...나 괜찮아"
"..진짜로?"
"응 ㅎ 오랜만에 놀러갈까?"
"...웅"
.
.
.
평소엔 다른 애들이 알아볼까 같이 걷지도 못했던
거리를 둘이서 손잡고 오순도순 걸었다.
"야 쟤 최수빈 아냐?
"맞네~ 야 내가 뭐랬냐
그 목소리 최수빈 맞다고 했잖아 ㅋㅋㅋ"
"그럼 왜 이여주는 최연준이랑 다니는거임?"
"몰라 바람인가 ㅋㅋ"
모른척 하고 지나가려했지만
내 손에서 수빈의 손이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나 먼저 갈게"
"..야...야!"
날 거리에 내버려두고
혼자서 둘이 왔던 길을 빠르게 걸어간다.
하...
.
.
.

"...어젠 잘 해결했냐?"
"...아니"
"...에휴"
"...진짜로 헤어질까?"
"...난 뭐라 안했다? 너 맘대로 해"
"...진짜 답답해..."
정말로 지쳐 정리하려고 마음을 다 잡았다.
애써 수빈의 시선을 무시하면서..

"..여주야"
"..."
"어젠 진짜 미안..."
"됐어"
도저히 우리 사이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읺았다.
예전부터 쌓이고 쌓이던게 폭발한걸까
계속되는 싸움에 결국 마주칠 때마다
무시를 하고있다.
.
.
.
"언니! 언니 수요일 방송이지?"
"응 왜??"
"아니 사연 신청 그거...너무 많이 들어와서
당일에야 대본 뽑을거같은데??"
"아..그래?? 괜찮아 내 짬빠가 얼만데~"
"미안..ㅜ 최대한 빨리 해볼게!"
무시한지 일주일 정도 지났나..
여전히 방송부 활동을 하러 같이 방송실에 있을때면
눈이 마주칠까 두렵고 괜히 숨이 턱턱 막히기만 한다.
.
.
.
"언니 화이팅!!"
"응 ㅋㅋ"
점심시간 종이 치기 1분전
모든 방송부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부스로 들어가
마음을 가다듬었다.
"보내주신 사연입니다.
제가 몇주 전부터 좋아하는 사람이랑
사이가 안 좋아 고민입니다...
영원한 건 없는데… 영원한 게 없어서,
같이 있고…함께...
.
.
.
함...함께 하는 순간이…
더 소중하지 않을까…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더 늦기전에 좋아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표현해보는게 어떨까요?"
딱 누군가가 떠오르는 말이다.
영원한게 없어서 함께하는 순간이 행복하다니...
함께해서 좋았던건지 답답해서 썼던건지
아련한 기억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언니! 중간에 더듬은거죠...?"
"..응"
"에이 괜찮아요~ 잘 넘어갔어요 ㅎㅎ
저 밥 먹으러갈게요!"
하 왜이리 기분이 이상하냐...
한껏 대본을 꾸기며 방송부스를 나왔다.
평소에 밥을 안 먹으러 간 수빈이
아직 방송실에 남아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숨이 턱 막히는 기분에
다급히 방송실을 나와 교실로 향했다.
...너구나
.
.
.
하...비오네
예상치 못한 소나기에 얇은 후드를 쓰고 가려했지만
도저히 저 거센 비를 뚫고 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오늘 나랑 같이 방송실 청소였던
최수빈은 우산을 들고서 가만히 빗줄기를 보고있었다.
이대론 진짜 답답해 미쳐버릴것 같았다.
결국 난 후드를 뒤집어 쓴 채 한발한발 걸음을 내딛었다.
거센 빗방울이 내 머리를 적시기도 잠시
누군가에 의해 막아지고 말았다.

"..쓰고가"
"..."
계속해서 땅만 바라보던
내가 답답했던 건지 내 손을 잡아 우산을 쥐어줬다.

"갈게"
"...그거 무슨 의미야"
"..."
"아까 그 사연, 무슨 의미냐고"
내 눈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또 돌아서 가려고 한다.
결국 손목을 비틀어 우산을 땅에 내팽겨쳤다.
수빈이가 준 우산은 뒤집힌 채
빗물 위에서 허망하게 굴렀다.
"무슨 의미냐고 그거...!"
생각조차 못할 정도로 빠르게
수빈에게 다가가 가슴팍을 내리쳤다.
처음엔 약하게,
그러나 곧 감정이 터진 듯 퍽퍽 내리쳤다.
수빈이는 젖어가는 내 머리칼을 보며
아무말도 못하고 그저 내 주먹질을 받고만 있었다.
수빈의 가슴팍을 치던 내 주먹이
허공에서 덜덜 떨리며 움직이지도 못했다.
"난...난 진짜 너 좋아하는데..."
말의 끝도 잇지 못하고 주저않을 듯 무너져
수빈의 가슴에 이마를 묻었다.
그제서야 옅은 숨을 내쉬며 포기한듯
내 등을 감싸 쥐었다.
애써 수빈을 밀어냈다.
흘러내린 빗물이
턱선과 목덜미를 타고 떨어졌다.
비 때문에 흐릿해진 시야 너머로 보지않아도
알 수 있었다.
우리가 끝이라는걸
"우리...이제 그만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