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상상은 해도 괜찮잖아

[연준] 내 인생을 망칠 구원자 1






비에 젖은 난간과 
아래 흐르는 짙은 강물이 나란히 움직인다.



비가 끊임없이 몸을 밀어붙이듯 쏟아지지만,
피할 생각도 들지 않는다.



목적지는 떠오르지않고, 
발걸음은 그냥 앞으로 굴러갈 뿐이다.



찬바람에 실어 나르는 비가 얼굴을 가차없이 때렸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빗물인지, 아니면 어떤 감정의 잔해인지
알 수 없는 물기가 눈가에 고였다가
뺨을 타고 흐르며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누군가 날 보고있겠지?



옆으로 쏜살같이 스쳐 지나가는 차들은
모두 덩치를 부풀린 봉고차처럼 흔들리며 지나가고,
헤드라이트가 뿜어낸 빛은 빗 속에서 잠시
흩어졌다가 금세 검은 공허로 스며든다.



그 빛과 소음조차 마음 속을 스치지 못하고,
몸 안에는 이미 어떤 감정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미 오래 전부터 생이라는 것이
몸에서 조금씩 빠져나가버린 듯한 느낌만이 남아있었다




이제 죽을 때가 된걸까...




몸을 옆으로 돌려 난간을 잡는다.
차가운 금속이 손바닥을 파고들지만, 
여전히 떨리거나 두렵지 않다.



발아래로 끝없는 어둠이, 
오히려 마음을 담담하게 만들었다.



실수로라도 손이
 난간에서 미끄러질 것 같지 않다.



참 야속하다.
나에게 죽음을 맡기다니




바람이 옷자락을 흔들고, 빗물이 얼굴을 스치지만
그 모든 감각이 이미 먼 곳으로 흘러가버린 듯 하다.




숨이 차오르는 대신, 마음 한켠에는
 오히려 이상한 평온이 자리잡는다.



강태현,,,
너만 아니었어도



죽음이 다가오는 순간조차, 
세상은 여전히 비에 흔들리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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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도망친 곳이 여긴가보네?"




빗물에 젖은 길을
우산도 없이 천천히 걸어오는 그의 목소리




세련된 외제차를 끌고, 고급진 정장까지 차려입었다.
마치 처음 본 그날처럼.



"왜? 죽게?"



그는 천천히 다가오며, 
마치 내 처지가 한심하다는 듯한 눈빛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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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 내려와"



아무 소용 없다는 듯 귀찮게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서늘하게 빗속을 가른다.




그의 차가운 시선 속에는 잔혹한 장난기가 숨쉬고,
숨조차 고르게 쉴 수 없는 공기가 온몸을 감싼다.



없던 용기까지 만들어주네...



실수로라도 죽길 바랐던 마음이,
이제는 내 의지로 떨어지길 바라고 있었다.



빗물과 바람 속에서 그의 차가운 시선은
여전히 내 몸을 가르지만, 마음 한켠에는
마지막으로 전해야 할 말이 조용히 맴돈다.















"...사랑했어 진심으로"









그 순간, 빗 속의 모든 소음이 멀어지고,
끝 없는 어둠 속으로 스며드는 동안, 
남은 것은 서늘한 공기와 
마지막으로 흘린 한 마디의 여운 뿐이었다.



수면을 통과하며 들려오던 
도시의 소음은 서서히 사라지고,
투명하게 울리는 물소리만이 내 귓가에 퍼졌다.



차가운 물이 피부를 감싸고 
작은 기포들이 어깨를 스쳐간다.



수면 위에서 반짝이던 불빛들은
 물속으로 내려오며 길게 늘어지고, 
그 빛 조각들은 마치 잔잔한 숨결처럼 흔들렸다.



온몸이 조용한 어둠 속에 잠기자 
천천히 눈을 감았다.




































"죽고싶어? 미안하지만 아직 안 끝났는데?"



















어디선가 희미한 목소리가 눈을 뜨게 했다.




구원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