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싶었어, 여주야"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너 맞잖아 여주야. 보고싶었다고"
“너가 뭔데 날 그리워해?나 남편 있어. 그리고 넌 단순히 중학교 때의 철부지 없는 남자애로만 내 기억에 남겨져있어. 근데 왜 너가 날 왜 보고싶어하는데"
“내가 너 못 잊으니까. 너 기억에 남는 그 철부지 없던 남자애가 이젠 너무나도 커버린 너를, 임자 있는 너를 나 따위가 널너무 그리워했어"
"...일단 들어와"
남편이 한 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집에 들어오지 않아 혼자 사는 집이라 청소도 안한 거실과 방들이 습하고 정신없었지만너는 뭐가 그리 좋은지 보잘 것 없는 집을 둘러보더니 투명하게 웃으며 작은 소파에 앉았다.
“여주 너 못 본 새에 되게 성숙해졌다. 항상 분홍색이나 보라색만 고집하던 애가 인테리어를 화이트 톤으로 하네"
“나이 서른 먹고 공주 벽지에 분홍색 떡칠하는게 그리 정상적이지는 않잖아"
“뭐 너가 좋으면 된거지"
소파 보풀을 뜯으며 시덥잖은 얘기를 나누던 너는 갑자기 표정을 굳히며 나에게 물었다.
“남편분 어디가셨어?보니까 짐도 다 뺀 것 같던데"
“아... 남편이 바빠서 회사에서 생활하는 중이야..."
이번에도 거짓말을 해버렸다. 너에게 남편이 바람핀다는 얘기는 왠지 모르게 하면 안될 것 같아서.
"...나한테는 적어도 솔직하게 얘기해도 돼"
"...티 많이 났어?”
"...바람이야?”
“응..."
“…”
“…”
아, 그냥 끝까지 부정할걸이라는 후회가 밀려올 만큼 너무나도 조용해 소름끼칠 정도로 우리 사이에 오고간 대화란 없었다. 차라리 소리를 지르고 욕해주는게 더 무섭지 않을텐데.
“여주야"
“으응…?”
“너, 정말 행복해?”
이상했다. 분명 난 결혼한지 얼마 안 됐는데, 난 그를 분명히 사랑하는데 왜 행복하다는 말이 입에서 나오지 않을까. 나는풀로 붙인 듯 떨어지지 않는 입을 애써 열어 긍정의 대답을 내놓으려 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아니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너 안 행복하잖아. 너 그거 당연스레 여기지도 말고 참지도 마"
"...그치만 내 반평생을 사랑해왔던 사람이야. 그런데 그깟 신뢰 없어서 어떻게 사랑해?”
“너 그거 신뢰 아니야"
“뭐?”
“그거 그냥 너가 졌던 빚을 갚으려고 애써 사랑이라고 너 혼자 합리화시킨거라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