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Slowly)

제 1화 : 빠른 걸음

띠리링,

달칵,



“ 여보세요 .. ”

“ 야 !!!! 너 어디야 ?!! ”

“ .. 저 지금 ”



스윽 -



” 시골이요. “

” 뭐 ?!! 너 지금 그게 말이 되는 ..!! “



그렇다. 나는 말이 안되는 이 타이밍에 참 거짓말처럼 네비게이션에도 잘 찍히지 않는 시골에 있다. 그냥 ..

너무 빠르기만 해서, 그곳이 버거웠다.



며칠 전,



“ 하 .. 대체 이거를 어떻게 수습해 .. “

” 왜 ? 무슨 일 있어 ? “

” .. 밑에 막내 하나가 로케 스케쥴 조정 잘못해놓고 잠수 탔어 “

” 미친 거 아니야 ..? 아무리 막내라지만 .. “

” 아니 어차피 걔 실수는 다 내 잘못이고 그럼 당연히 내가 수습할건데 왜 얘가 잠수를 타냐고 .. “

” ㅋㅋㅋㅋ 그러게. 잠수는 네가 타야지 “

” 하 .. “



시골로 내려오기 전, 나는 꽤나 유명한 프로그램의 조연출이었다. 주연출 피디님 바로 옆 오른팔을 차지하고 있던 자리랄까 ..?

나도 경력이 꽤 있기에 당연히 막내도 있었는데 .. 아니 글쎄 이 자식이 실수를 하고 잠수를 타버렸다. 그것도 아주 초대박 실수를 ..

난 그 실수 수습 건으로 일주일 간 퇴근을 하지 못했고 매일 주연출님께 불려가 3시간씩 훈수를 들었다. 좋게 말해서 훈수지 그냥 ..



“ 니가 그 모양이니까. ”

“ .. 죄송합니다 ”

“ 그 조연출에 그 막내지 뭘 ”

“ .. 죄송합니다 ”



’죄송합니다‘ 라는 말만 기계처럼 반복하며 다시는 새로 돋아날 수 없을 것만 같은 상처들에 익숙해져 아픔조차 못 느낄 그런 상태가 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이미 무뎌져 괜찮았다. 내가 결정적으로 이 시골로 오게 된 건 ..



“ 하 .. 거의 끝났다 ”

“ 오 ~ 역시 워커홀릭인가 ? ”

“ .. 타의적인 홀릭은 병이다 ”

“ 수고했어 ”



스윽 -



“ ? 너 손에 반지 뭐야 ? ”

“ 어 ? 아 이거 .. 그 남자친구 ”

“ 헐 ! 남자친구 누구 ? 같은 업계 ? ”

“ 아 ㅎ 그런 게 있다 ~ ”

“ 뭐야 ~ 연애도 하고 일도 하고 아주 ”

“ 그러는 자기는 ~ ”



카톡 -



“ 우린 뭐 가족이지 ”



난 몰랐다. 그 반지의 출처가 내 카톡의 출처와 같은 놈이라는 것을.



“ 오늘은 무슨 커피를 마시.. ㅈ ”

“ 그거 알아요 ? 요즘 최CP랑 권작가님 연애하시는 거 ? “

..!!

” 어머 그럼 최CP님이 김PD님 두고 바람 피는 거에요 ..? “

” 그래요 .. 김PD 알면 뒤집어질 걸. 5년을 만났잖아 “

“…”



그렇다. 내가 5년을 만났던 그 놈은 4개월 전부터 내가 8년을 함께 일해온 내 절친과 바람이 났고 난 그 사실을 4개월이 지난 뒤, 100일이 넘어 반지까지 맞춘 이제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렇게 남아있던 내 멘탈은 모두 부서져버리고 말았다.



마지막 금요일 밤 모두가 퇴근한 시각, 또 홀로 남아 노트북을 두드리던 나는 멍하니 회사 창문을 바라보았다.

서울의 야경은 마치 별처럼 잘 꺼지지 않는다고 하는데 어째서 지금 나 빼고 다 꺼져있는지.

분명 같은 시간을 살고 있는데 나만 빼고 모두 하루가 끝난 것 같았다. 

그 순간, 마치 온 몸이 마비라도 된 것처럼 움직여지지 않았고 금방이라도 속에 있는 것을 모두 토해낼 것처럼 울음이 목구멍까지 꽉 차올라 숨이 턱턱 막혔다.

그리고 난 알았다.


지금 이 속도는 나에게 많이 버겁다는 것을.


그래서 난 바로 노트북을 덮고 그대로 메모지에 한 문장만 남겨두고 집으로 가 짐을 쌌다.


‘ 아무도 나를 찾지 말아주세요 ’


그렇게 난 무작정 잿빛인 그곳에서 도망쳐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













[천천히]















현재,



“ 저 맘 편히 자르시라고 제가 뛰쳐나왔잖아요 ”

“ 뭐 ?!! ”

“ .. 제발 그냥 잘라주세요. ”

“ 허 .. 이게 대체 ”

“ 마지막으로 .. “

"..?"

” 저 두고 바람 핀 년,놈 둘 다 기사 1면 나게 해줄거라고 전해주세요. “

” 너 !!! 이씨 야 !!!! “



뚝 -



” .. 아 귀 아파 “



털썩 -



“ .. 좋네. 조용하고 ”



난 무작정 내가 갖고 있는 돈으로 구할 수 있는 집을 샀다. 그래도 나름 흥행작들이 있었어서 작은 논 옆 주택을 하나 살 수 있었다. 그것도 나름 풀옵션으로

원래는 월세나 전세로 집을 내주지만 이 집 주인 분이 몇 년전 사고로 돌아가시면서 유언장에 이 집은 그냥 돈만 된다면 땅이던 다 팔아도 좋다고 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딱 운명 같고 좋아서 이 집을 구매했다.


짐은 딱히 들고 온 게 없어서 기존에 덮던 이불과 베개, 그리고 노트북 충전기와 새로 산 폴더폰 충전기,돈 이렇게만 챙겨 나왔다. 아 기초 화장품들까지

틴트나 피부 같은 것들은 너무 무거워 다 버리고 나왔다. 딱 선크림에 컬러립밤 하나 이렇게 들고왔다.



“ .. 배고픈데 ”



아까 말을 좀 해서 그런지 출출해졌다. 아직 먹을 것은 사두지 않았는데 일도 좀 구할 겸 시내로 나가볼까

사실 시내라고 할 것도 없긴 하다. 그냥 슈퍼에 시장이 있는 정도 ..?

그렇게 난 미리 끌고 온 자전거를 타고 아래 시내로 내려갔다.



“ 우와 .. 맛있겠다 ”

“ ? 아가씨는 누구여 ? 처음 보네 “

” 아 ..! 저는 저기 핑크색 지붕으로 이번에 이사 왔어요 “

” 아 ~ 민석이네 ? “

” 민석이 ..? “

” 거기가 민석이네 할망구 살던 곳이여 ~ “

” 아 .. “

“ 근데 거기 터 안 좋다고 소문이 다 났는데 왜 거기로 갔어 ? ”

“ ㅌ.. 터가 안 좋다구요 ..? ”

“ 그래. 거기가 그 민석이네 할아버..ㅈ ”



그때 -

따르릉 -



하늘색 자전거를 탄 남자가 내가 있던 떡볶이 집 앞으로 왔고 멈췄다.



“..?? ”

“ 아니 또 외지인 붙잡고 이상한 소문 퍼트리는 거에요 ? “

” 이상한 소문은 이놈아. 사실이지 “

“ 나 참.. 자꾸 그러니까 우리 마을 사람들이 사라지지 ..! ”

“ 허허 이 자식이 .. ”

“ .. 뭐야 ”



갑자기 등장한 남자 때문에 주인분의 시선을 뺏겨 떡볶이는 포기한 채 돌아 다른 곳으로 가려는데,



탁 -



“..?!! ”

“ ..? 설마 ”

“ 네 ..? ”

“ 아니 .. 내가 아는 사람인가 싶어서요 ”

“ 저를요 ..? ”



내가 공인이기는 하나 아직 막 얼굴까지 알려지고 그런 사람은 아닌데 ..?



“ 그럴리가 .. ”

“ 그 아가씨 이번에 이사왔다는데 뭔 그 헛소리야 ”

” 저 이번에 이사와서 .. ”

“ 그럼 .. 지금 어디 살아요 ? “

“ 저기 저 핑크..ㅅ ”

“ 아 민석이네 집 !! 거기로 이사갔대 ”

“ ..!! 뭐라고요 ..? ”

“ 네.. 그 핑크색 지붕집으로 이사왔어요 ”

“…”



나의 말에 그 남자는 매우 충격을 받은 듯 아무말도 하지 않은 채 내 팔만 잡고 있었다. 아니 근데 뭐하는 사람이길래 남의 팔을 막 잡아 ?

순간 짜증이 난 나는 팔을 힘껏 내팽겨쳤지만 힘이 얼마나 센지 불가능했다.



“ .. 이것 좀 놔주세요. ”

“ 네 ..? ”

“ 초면에 남의 팔 잡고 취조하듯 대하시는 거 얼마나 기분 나쁜지 알고 계세요 ? ”

“…”

“ 경찰이라도 되시나 ? 진짜 경찰이라고 하셔도 영장 하나 없이 이러시면 곤란하죠 “

” 아 .. 미안합니다 “



스윽 -



“ .. 다음부터는 조심해주세요 ”



난 그 말을 뒤로 기분이 안 좋아져 결국 과자 2봉지와 맥주 3캔만 사고 집으로 돌아왔다. 편하게 살고 싶어서 여기로 온 건데 .. 처음부터 화가 난다.

그날 밤 나는 사온 과자와 맥주를 까 옥상에서 마셨고 역시 시골이라 그런지 밤하늘은 참 예뻤다.

나도 저렇게 높은 곳에서 빛날 줄만 알았는데 올라가면 올라갈 수록 사실은 가장 낮은 곳으로 역주행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니 지금 마음이 이렇게 진흙 속에 묻혀있는 거겠지



그때,

쿵쿵쿵,



“ ..? 이 시간에 누구지 ”



옆집 사람인가 싶어 난 마시던 맥주를 내려놓고 아래 대문으로 내려갔다. 살짝 취한 상태로 .. 아니 살짝 많이?



끼익 -



“ 누구세.. ㅇ ”

“ 저 그 낮에 만났던 .. ”

“ 아 ..! 그 싸가지 .. ”



아까 낮에 만났던 남자가 아까보다 괜찮은 몰골로 옷도 갈아입고 우리 집을 찾아왔다. 왜 ..?



“ 싸가지요 ..? ”

“ 그 ..! 죄송해요 .. 제가 지금 좀 술을 마셔서 ”



내 술버릇이 생각하는대로 내뱉는거라 .. 이건 다음날 정신을 차린 후 사과했다.



“ 술 ..! 마시고 계셨구나 ~ ”

“ 그나저나 저희 집엔 왜 .. ”

“ 그 .. 이거 때문에 ”



스윽 -



” 떡볶이 ..? “

” 낮에 저 때문에 그냥 안 드시고 가신 것 같아서요 .. “

” 아 ..! 맞아요 “

” 맞구나 .. 나 때문이었구나 .. “

” 푸흐 .. 장난이에요. 장난 “

” ..!! 아 ㅎ 장난 .. “

” 고마워요. 감사히 먹을게요 ”

” 네 ! 꼭 맛있게 드세요 “

” 네 그럼 안녕히 들어가 .. ㅅ “



그 순간,



” 저기 ..!! “



탁 -



“ ..?!! 네 ..? ”

“ 이름 혹시 물어봐도 되나요 ..? ”

“ 아 .. 왜요 ? ”

“ 이 지역에 제 또래는 몇 없어서 ..! 친구 하고 싶어서요 ”

“ 친구 .. 뭐 그래요. “



다 놓고 온 마당에 친구라도 한 명 있으면 덜 외롭겠지


스윽 -



” 내 이름은 김여주라고 합니다 ”

“ 여주.. 여주씨구나 ”

“ 그쪽은요 ? ”

“ 아 ..! 제 이름은 ”

“…”



꼬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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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순영입니다 “



그렇게 시골에 들어간 첫날, 나는 천천히 친구를 한 명 사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