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 생물학 교실은 늘 뭔가 습했다. 바닥을 덮은 이끼 때문인지, 아니면 책상 밑 어딘가에 늘 기어 다니는 무언가 때문인지 모를 일이었다. 나는 아침부터 두 번째 수업인 이 과목을 반쯤 졸린 얼굴로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 교실에선 늘, 어떤 이유로든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침에 교수가 칠판에 쓴 주제는 ‘바위등껍질도마뱀의 탈피 주기 실측’. 실측이라니, 싫은 예감이 들었다. 이름부터 요란한 바위등껍질도마뱀은 탈피 직전엔 기분이 예민하고, 예민할 땐 상대를 구분하지 않는다. 피를 빨지는 않지만, 손가락을 물고 놓지 않는 습성이 있었다. 퀴디치 장갑을 끼고 측정하라는 이유도 다 거기에 있었다.
나는 수업 전에 손가락을 몇 번이나 펼쳤다 오무렸다. 왠지 오늘따라 내 손이 물릴 것 같은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실습 파트너라도 마음 편한 애였다면 괜찮았을 텐데, 설마설마했던 불길한 느낌은 금방 현실이 되었다.
“2인 1조로 도마뱀을 실측합니다. 파트너는 고정 명단으로.”
교수가 종이를 들고 호명했다. 그리핀도르 애들과 슬리데린 애들이 한 줄로 서서 서로에게 기대거나, 괜히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마음속으로 아는 친구 이름을 외우며 긴장했다. 제발… 최소한 말 섞을 수 있는 애여야 하는데.
“채봉구. 김여주.”
말도 안 돼. 나는 고개를 들어 교수를 봤다. 확실히 내 이름이 불렸다. 그리고 내 옆에 앉던 후배가 나를 돌아보며 동정 어린 눈빛을 보냈다. 고개를 돌리니 채봉구가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아까와 똑같은 얼굴이었다. 무표정. 아주 익숙한 듯 걸어오는 발걸음에, 왜인지 내가 먼저 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내 옆 의자에 앉았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약간 몸을 돌렸다. 표정에선 최대한 반응을 지워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입이 가만있지 않았다.
“…선배, 마법 생물학 잘해요?”
그는 고개를 들었다. 짧고 간결하게 대답했다.
“보통.”
아, 정말 재미없는 대답이다. 내가 왜 물어봤을까. 내가 민망해서 고개를 돌리는 사이, 채봉구는 장갑을 끼고 도마뱀 우리 쪽으로 다가갔다. 나는 따라가며 내 장갑도 껴야 했다. 곧 실측이 시작될 것이다. 서로 손을 맞대지는 않아도, 정확히 동시에 머리부터 꼬리까지 길이를 재야 하는 실험이었다.
“3초 간격으로 맞춰요. 제가 시작할게요.”
말하면서 나는 줄자를 준비했다. 채봉구는 고개만 끄덕였다. 말이 없는 사람이라 생각했지만, 일까지 대충 할 사람은 아닌 듯했다. 정확히 3초 뒤, 나는 줄자를 펼치며 도마뱀의 머리 위를 살짝 눌렀다. 그런데—
“악!”
놈이 움직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 장갑 낀 손가락을 물었다. 정말 세게. 나는 줄자를 놓쳤고, 도마뱀은 펄쩍 뛰며 통 안을 휘젓기 시작했다. 옆자리 학생들이 웅성거렸다. 채봉구는 그제야 내 손을 봤다. 다친 건 아니지만, 아팠다. 꽤 아팠다.
“네가 늦었잖아.”
툭, 그 말이 떨어졌다. 나는 어이가 없어 입을 열었다가 다물었다. 도마뱀은 교수의 지시에 따라 다시 진정되었지만, 내 손끝은 여전히 얼얼했다. 내가 늦었다고? 3초는 정확히 셌는데?
“제가 늦은 거예요?”
“타이밍 안 맞았잖아.”
대단하다. 이 상황에서 사과는커녕 내 탓이란 말이 나온다니. 오늘도 슬리데린에 대한 편견 또 하나 추가 적립. 나는 말없이 줄자를 다시 집어 들었다. 다시 시도할 생각은 없었지만, 뭔가 들고 있지 않으면 자존심이 더 상할 것 같았다.
“한 번 더 할래요?”
내가 물었다. 괜히 따지듯 묻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채봉구는 조용히 장갑을 벗고 책상 위에 올렸다. 그는 곧바로 리포트 양식을 꺼내 펜을 들었다. 실습은 포기한 모양이었다.
“왜요, 안 해요?”
“넌 감각이 느려.”
그 한 마디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어쩐지, 기분이 더 나빠졌다. 아니, 분명히 그쪽이 먼저 움직였고, 나는 정확히 3초를 셌다. 그런데 왜 내가 감각이 느리단 말인가. 억울함과 어이없음이 동시에 밀려왔고, 그제야 내가 왜 이 사람을 싫어하는지 알 것 같았다. 재수 없는 뱀 같으니.
-
실습은 포기한 것처럼 보였지만, 채봉구는 생각보다 빠르게 손을 움직였다. 관찰도 제대로 못 했으면서 뭘 쓰나 싶었는데, 그의 리포트 양식은 어느새 반이나 채워져 있었다. 나는 줄자를 쥔 채 어정쩡하게 서 있다가 자리로 돌아왔다. 장갑을 벗어 책상 위에 내려놓고, 살짝 손가락을 움켜쥐었다. 아직도 좀 아팠다.
괜히 투덜거리고 싶었다. 애초에 3초 세자는 말은 내가 꺼냈는데, 뭘 어떻게 하든 결국 내 탓이 되는 분위기였다. 나는 억울해서라도 입을 열고 싶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종이에 깔끔하게 줄 맞춰 쓰인 필체를 보자 괜히 더 자존심이 상했다. 잘난 척도 무표정으로 하면 진짜 얄밉다.
“실측 안 했는데 그거 그냥 대충 쓰는 거예요?”
내가 묻자, 채봉구는 고개도 안 들고 대답했다.
“봤잖아. 기본 길이는 비슷해.”
“안 봤는데요. 물리느라 바빠서.”
“내가 봤어.”
기어이 그렇게 나온다. 나는 손끝을 한번 쿡 눌렀다. 도마뱀의 이빨 자국은 없지만, 뻐근한 느낌이 남아 있었다. 교수가 돌아다니며 실습 상황을 점검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속으로 교수님이 우리 조 쪽에만 안 오기를 바랐다.
“그래도 관찰 안 했으면 나중에 걸릴 수도 있잖아요.”
“그럼 네가 따로 써.”
그는 말끝을 또박또박 끊어 말했다. 듣는 내가 더 무안했다. 나는 괜히 깃펜을 꺼내다 말았다. 내 리포트는 아직 하얬고, 뭘 적어야 할지 모르겠는데, 자존심은 또 왜 이리 끓어오르는지. 채봉구가 나 때문에 피해 보는 건 아닌가, 그런 건 생각도 하기 싫었다. 그래도, 아까 그 한 마디가 자꾸 떠올랐다.
‘넌 감각이 느려.’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제가 되게 무능한 사람 같잖아요.”
그제야 채봉구가 고개를 들었다. 눈은 여전히 무표정했고, 미간도 찌푸리지 않았다. 그는 조용히 내 얼굴을 보다가, 아주 조금 고개를 기울였다.
“…아니야.”
그 말투가 얄밉게 담백했다. 대답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속이 더 답답해졌다. 별말 아닌 것처럼 툭 던지고선, 다시 시선을 종이로 내리는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다. 그렇게 얄밉게 착하면 더 얄밉다.
“저도 쓸게요.”
말하고 나서 펜을 들었다. 억지로 뭔가를 적는 손이 종이 위를 뚝뚝 끊었다. 채봉구가 무슨 근거로 길이를 측정한 건지 궁금했지만, 물어보는 것도 지는 것 같아서 입을 다물었다. 그냥 비슷하게 적고 말자는 생각뿐이었다.
수업이 끝나기 전, 교수는 책상 사이를 천천히 돌았다. 채봉구는 완성된 리포트를 조용히 제출함과 동시에, 내 것까지 들고 일어났다. 나는 깜짝 놀라 그를 바라봤다.
“그건 제가 낼게요.”
그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같이 했잖아.”
아니거든. 아니에요, 선배가 혼자 다 썼잖아요. 나 아무것도 안 했다고요. 입에 맴도는 말들을 꾹 삼켰다. 채봉구의 걸음은 성큼성큼 앞서갔다. 교수에게 종이를 건네고 돌아오는 그의 뒷모습이 자꾸 눈에 밟혔다. 말없이 다 해놓고,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러고는 끝이다. 나는 괜히 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
기숙사로 돌아오는 길, 나는 손끝을 또다시 움켜쥐었다. 아픈 것도 아닌데 자꾸 만지작거리게 됐다. 도마뱀 때문인지, 채봉구 때문인지 헷갈렸다. 그도 아까 물린 걸 봤을 텐데, 아무 말도 안 했다. 그게 오히려 마음에 남았다.
“…진짜, 자기 멋대로야.”
혼잣말이었다. 명백한 혼잣말. 그게 누구를 향한 말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