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0o2 작가의 단편선

°그래, 나팔꽃이 필 때 만나 헤어지자 꽃이 질 때.°


아침 글로리

그래, 나팔꽃이 필 때 만나 헤어지자 꽃이 질 때.

W. So0o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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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평범한 하루가 인생 최악의 하루로 바뀌는 것을 경험해 본 적이 있는가.


그날은 평범했다. 아니, 오히려 평소보다 좋았을지도.


언젠가 한 번쯤 들어본 '운수 좋은 날'의 이야기처럼 아침부터 운이 좋았다. 그때 한 번쯤 의심했어야 했는데.


오랫동안 골치 아팠던 회사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끝나고, 성과를 인정받아 보너스가 지급될 것이라는 소리를 전해 듣고, 꽃집에 들려 '기쁜 소식'을 의미한다는 나팔꽃이 들어간 꽃다발을 사들고 너를 만나러 가는 길.


신기하게도 모든 신호등이 초록 불만을 내비칠 때, 그때라도 알아차렸다면 너는 무사했을까?


그날 너는 내 옆을 떠났다. 아무리 네 이름을 외쳐도 그 사실만은 변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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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내가 금방 따라갈게."



너를 부여잡고 곧 따라가겠다며 울부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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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떠난 뒤 나의 모든 하루는 불행한 나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날 이후로 앞으로 안정적인 삶을 보장하던 직장을 그만두고, 외출을 자제했다.


처음 한 달간은 내내 너의 꿈을 꾸고 울고 지쳐 잠드는 하루를 반복했다.


그 다음 달부터는 너와 함께했던 시간을 되돌려봤다. 사진, 영상, 편지, 물건 모든 것이 너와의 관계를 증명해 주는 듯했고, 아직도 네가 내 곁에 있을 것만 같아 또 한참을 울었다. 



"우리 행복하자. 나는 우리 둘 다 행복했으면 좋겠어."



그냥 너를 따라갈까 싶었지만, 갑자기 예전에 네가 했던 그 말이 생각나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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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떠난 지 어느새 364일이 지난날. 그날은 정말 불행한 날이었다.


아침부터 평소보다 더 축 처졌고, 친한 친구가 크게 다쳐 오랜만에 집을 나와 병원에 다녀왔다. 오는 길에는 갑자기 구두 밑창이 뜯어지고 소나기가 내리는 등 무언가 부자연스러운 하루였다.


하루를 마무리하고 잠에 들자, 네가 나를 떠났던 그날, 그 장면을 꿈속에서 오랜만에 다시 봤다.


딱 1년째 되는 날이어서였을까. 다시 봐도 너무나 두려운 광경에 눈을 떴다. 새벽 5시를 가리키는 시계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다음은 창밖의 달에 비춰 보이는 나팔꽃 봉우리였다.


'어? 저기에 나팔꽃이 있었던가? 언제부터?'


의문이 들기도 잠시 무슨 상관인가 싶어 고개를 내렸다. 꽃 따위에 당장 밀려오는 슬픔을 잊기엔 너무나도 큰 슬픔이었다.


한참을 슬픔에 잠겨 있었을까, 내가 보지 않는 사이에도 나팔꽃은 서서히 피어오르고 있었다.



"태형아."



그리고 그때, 거짓말처럼 너를 다시 만났다. 너무 슬픔에 빠져 환청이 들리는 줄 알았다.



"나 안 볼거야? 여기 있는데."



고개를 천천히 들자 있었다. 네가, 내 앞에.



"... ㅇ..여주야..? 진짜야..? 너야...?"


"네 눈에 보인다면, 진짜겠지. 그나저나 왜 이리 초췌해졌어... 일로와. 밥이라도 먹자."



희미하게 웃어 보이는 여주의 미소에 방금까지 나를 꽉 채웠던 슬픔 대신 기쁨이 차올랐다.


어느새 해가 떠서 창밖의 나팔꽃이 아름답게 피어있는 것을 보다가 오랜만에 제대로 된 식사를 했다. 이 많은 의문들을 물어봐야 할까, 싶어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자, 곧 그녀의 입이 열렸다.



"나팔꽃."


"응? 여주야, 뭐라고?"


"나팔꽃이라고. 꽃이 필 동안에는 널 만날 수 있어. 시간으로 따지면... 오전 동안만?"



어제의 일은 오늘의 행복을 위한 불행이었나 보다.
오전뿐이라도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이 그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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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부터 오전엔 그녀를 만나고, 오후에는 차츰 외출시간을 늘리며 알바를 하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부모님과 주변 친구들은 이제 정신을 차린 거냐며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씩을 보탰다. 이제 괜찮으면 복직하지 않겠냐는 전화도 받았다. 하지만 오전의 출근은 내키지 않아 거절했다.


그녀를 오전에만 만나는 기간은 생각보다 빨리 지나갔다. 그리고 그 어느 날 여주가 나에게 말했다.



"이제, 이렇게 만날 수 있는 날도 일주일 남았어."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이게 말이 되나. 애초에 재회의 단맛을 맛보지 않았었더라면 더 나았을까,


상승한 뒤 하락하는 것이 더 가파르다는 말이 맞다. 지금 나의 심리가 그랬다.


남은 일주일, 정말 그녀를 만나는 오전 내내 누구보다 열심히 붙어있었고, 다니던 알바를 그만둔 채 다음날까지 그녀를 만날 날만을 기다리는 일상을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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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지막 날의 아침이 밝았다. 도저히 오늘만 지나면 더 이상 그녀를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가슴 아팠다. 다시 버틸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말했다. 같이 가겠다고. 혼자 남겨지면 또 못 갈 것 같으니 울면서 그녀에게 같이 가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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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나도 같이 갈래. 나 진짜 너 없으면 못 버텨. 그러니까 나도 데려가. 응?"



그녀는 슬픈 표정을 지으며 그러지 말라고 하면서도 끝내 알겠다고 대답했다.


물론 나는 나의 눈물에 가려져, 그녀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것은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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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그날의 나팔꽃이 지고, 나는 그녀를 따라갔다. 이게 내 이야기의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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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형아, 그거 알아? 인간이 죽을 때는 청각이 가장 마지막까지 남는대. 그리고 그게 사실이다?"

"네가, 나 곧 따라오겠다며. 너무 늦는 것 같아서 데리러 왔어."

"원망, 할 거야?"

"아니, 넌 할 수 없을걸. 나를 덧없이 사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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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팔꽃의 꽃말_
기쁜 소식. 덧없는 사랑. 그리고, 결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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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작가입니다!

이미 게시판에서 확인하신 분들께는 한 번 본 내용일 텐데... 맞습니다.

이벵 참여를 위해 작성하게 된 글인데, 좀 망한 것 같긴 하지만 단편선에도 남겨두고 싶어서 가지고 왔습니다.

비하인드를 풀어보자면 꽃... 꽃... 이러다가 매직샵 가사 중 '필 땐 장미꽃처럼, 흩날릴 땐 벚꽃처럼, 질 땐 나팔꽃처럼, 아름다운 그 순간처럼' 이란 가사가 먼저 생각났었는데, 뭐라고 쓸 내용이 없어서 고민하다가 '나팔꽃' 하니까 하루만 가사가 딱 떠오르더라고요. 

나팔꽃의 꽃말을 찾아보니 무려 3개나 있어서 이거다! 싶어서 글을 적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기까지가 제목도 '하루만' 가사에서 따왔다는 이 글의 제작 비하인드였습니다😁




2021년 5월 28일